역대하 27:1-28:15 읽기

[27] 요담에 대한 기록은 27장 단 아홉절로 끝난다. 사관은 요담이 아버지 웃시야가 한 것을 그대로 본받아서,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으나, 아버지와 달리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백성은 계속해서 악한 일을 저질렀다고 한줄평가를 한다. 6절에서는 요담은, 주 자신의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걸으며 살았으므로 점점 강해졌다고 사관은 적는다. 사관의 관심은 나라가 강성해지면 주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걸은 결과요, 그렇지 않으면 범죄한 결과라는 권선징악적 사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요담 때도 남유다 백성은 계속해서 악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관의 기록을 놓쳐서는 안된다. 다윗의 나라를 다스리는 요담이라면, 강성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국방력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성전에 들어가 분향을 하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전에 있는 제사장들을 독려해 백성이 악에서 돌이켜 주님께 돌아오도록 가르쳐야 했다. 왕이라면 자신만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걸으며 사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28:1-7] 요담에 이어 아하스가 왕이 되었다. 요담은 이십오세에 왕이 되어 16년을 다스렸는데, 아하스는 이십세에 왕이 되어 16을 다스렸다. 한 본문으로 읽으니 남유다의 운명이 점점 단축되는 느낌이 든다. 하여간 아하스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지 않았다. 아하스는 그의 조상 다윗이 한 대로 하지 않았다고 사관은 한줄평가를 한다. 드디어 기준이 ‘다윗이 한 대로’로 바뀌었다. 더 이상 선왕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사관이 깨달은 것일까? 하나님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했느냐 안했느냐 보다, 하나님 마음에 합했느냐 아니냐로 기준이 바뀐 것이다. 사관은 아하스가 이스라엘 왕들이 걸어간 길을 걸어갔고, 바알 신상을 만들고 자기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는, 이방 민족들의 역겨운 풍속을 본받았다고 기록한다. 요담이 웃시야 처럼 분향하지 않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아하스는 아예 산당을 따로 지어 이방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분향했다. 그결과는 하나님을 버린 선대의 왕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하스는 시리아에게 침공을 당했고 북이스라엘로부터도 침공을 당해 패했다. 사관은 분명하게 덧붙인다. 아하스 왕 혼자만이 아니라, 유다사람들이 조상의 주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28:8-15]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은) 유다사람들을 무려 이십만명이나 사로 잡아 전리품과 함께 사마리아로 끌고 갔다. 사마리아에 오뎃이라는 주님의 예언자가 있었다. 오뎃은 사마리아로 개선하는 군대를 마중나가 하나님께서 유다에 진노하셔서 북이스라엘이 승전하게 하셨지만 살기가 등등하여 십이만이나 살육하고 이십만이나 노예로 삼을 작정을 하는 것도 주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은 것이라는 것을 알라고 말했다. 그러니 형제자매된 유다 포로들을 풀어주어 돌아가게 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진노하셔서 당장 벌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에브라임 지도자들도 오벳의 말에 순종하여 개선하는 군대를 막아섰다. 에브라임 지도자들도 동족을 살육하고 포로로 잡아 노예삼으려고 한 일로 주님 앞에 죄인이 된 것과 주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개선하는 군인들에게 말했다. 군인들을 에브라임 지도자들에게 포로와 전리품을 넘겼다. 에브라임 지도자들은 전리품을 풀어 포로들중 헐벗은 이를 입히고 맨발로 걸어 온 이들을 신기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고, 상처입은 이들을 치료해 주고, 환자들은 나귀를 태워 여리고까지 데리고 가서, 친척들에게 넘겨주고 다시 사마리아로 되돌아 왔다.

>> 사관의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행한대로 심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