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1 유다왕 아하스가 앗시리아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도움을 청한 사건을 사관은 기록한다. 에돔 사람이 유다를 치고 백성을 사로잡아갔고, 블레셋 사람도 유다의 평지와 남방 성읍들을 침략하여 점령하고 정착했다. 이것은 아하스 왕과 유다 백성들이 주님께 크게 범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하스는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왕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인데, 앗시리아 왕은 아하스를 돕기는 커녕 유다를 곤경에 빠뜨렸다. 아하스는 성전과 왕궁과 대신들의 집에서 보물을 꺼내 앗시리아 왕에게 바쳤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22-26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었어도 아하스 왕은 주님께 더욱 범죄하여 앗시리아 신들에게 제사 지냈다. 자신이 앗시리아 신들에게 제사하면 그 신들이 자신을 돕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일히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다. 심지어 성전 기구들을 거두어서 부수고 성전을 폐쇄했다. 그리고 예루살렘 이곳저곳에 이방 제단을 세우고 유다 각 성읍에도 산당을 세우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여 주 하나님을 진노케 했다.
26-27 아하스가 행한 일은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다. 아하스가 죽었으나 그를 왕실 묘지에 장사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 안에 묻었다.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아하스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 주님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걸으며 살았던 요담에 관한 기록은 27장 단 9절로 마무리 되었는데, 주의 길을 따르다 배신한 왕, 다윗의 길 대신 북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따른 아하스의 기록은 길다. 파란만장한 일생이 주님께 더 가까이 가게 했다면 은혜겠지만 아하스처럼 성전을 폐쇄하기까지 갔다면 저주다. 갑자기 이력서에 한줄이라도 더 적을 것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주의 길을 따르기보다 나의 길을 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쩍든다.
>> 바울은 자랑하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한다고 고린도 성도들에게 편지했는데, 공동번역은 성경은 ‘주님 안에서 자랑’을 ‘주님을 자랑’이라고 해석한다. 곧 주님 안에서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랑은 주님만이 되어야 한다. 이력서에 단 한 줄 쓸 것이 없어도, 주님은 우리가 행한 것을 모두 아신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특별히 자랑할 것이 없다. 그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라고 결산한다. 오히려 악하고 게으른 종이 결산할 때 말이 많다. 하나님이 어떻고, 달란트를 어떻게 했고…
>> 착하고 충성된 종의 자랑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다. 악하고 게으른 종은 스스로 성전을 폐쇄한 자요, 다른 사람들도 성전에 나가는 것을 막는 자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