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1:1-3 읽기


시인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노래한다. 주님께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에게 재난이 닥칠 때에 그를 구해주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그를 보살펴 주신다. 세상 사람들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주님께서 이런 복 있는 사람을 원수의 뜻에 맡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돌보시며, 어떤 병이든 떨치고 일어나게 하신다.


// 시편 41편의 시인은 4절부터 시인 자신, 곧 ‘나’를 노래하기 전에, 1-3절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복 있는 사람을 일반화 시킨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적용한다. 따라서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다. 시편 1편의 시인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라고 노래(정의) 한다. 따라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은 경건한 삶을 살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 시인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 복되다고 노래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예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으며, 천국이 가난한 자들의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렇다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것은 가난한 사람 편에 서는 것이다. 시인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보살피는 것이 복되다고 노래할 때 사용한 ‘돌보다/보살피다’ 라는 단어는 출애굽기에서는 세 번 모두 ‘배상’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다시말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것은 배상의 성격이 강하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들였을 때,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를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삭개오 집에 이르렀다고 축복하셨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것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단순히 베푸는 것이 아닌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공동체다움을, 사회다움을 회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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