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3:1-18 읽기

1-7 베드로는 두번째 편지에서 수신자인 성도들이, 거룩한 예언자들이 이미 예언한 말씀과 구주 예수께서 사도들을 통해 주신 계명을 상기하기를 바란다. 베드로는 수신자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약속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 자기들의 욕망대로 살면서,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노아 때 홍수로 심판하신 사실을 무시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천지가 말씀으로 창조되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의 마지막 때까지 보존되며, 경건하지 못한 자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 당할 날까지 변함없다고 강조한다.
8-13 베드로는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것을 잊지말라고 당부한다.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듯, 주님께서 재림에 관한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베드로는 주님의 날에, 옛 하늘과 옛 땅은 사라질 것인데,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지 수신자들에게 묻는다. (당연히)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또 그 날이 앞당기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도들은 그날에 타서 녹아버릴 옛 하늘과 옛 땅에 미련을 가질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하늘과 새땅이 성도들을 기다려야 한다고 선포한다.
14-17 베드로는 성도라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이니,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거리낌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재림이 더딘 것은, 우리 주님이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래 참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 쓴 편지한 바와 같다고 말한다. 바울 역시 그리스도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고 말한다. 바울의 편지 중에는 알기 어려운 내용을 함부로 해석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말씀에 무지하거나 믿음이 굳세지 못한 사람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스스로 파멸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시한번 베드로는 불의한 자들의 유혹, 곧 거짓교사들의 유혹에 휩쓸려서 그리스도 재림의 약속에 관한 확신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18 베드로는 수신자 성도들에게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과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 안에서 자라라고 권면하면서 편지를 맺는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모든 영광을 주님께만 돌린다. [아멘]


//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은혜와 평화가 수신자인 성도에게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랐던 베드로는, 성도에게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과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 안에서 자라라고 권면하면서 편지를 맺는다. 하나님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의 시작이요, 영생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과 은혜 안에서 자라는 것(진행형)이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더딘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영생에,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믿음 안에서 자라기를 게을리 하는 성도에게는 파멸 당할 수도 있음을 교훈한다. 따라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정의가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으로 오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한다.

// 베드로는 바울의 편지를 언급한다. 바울의 편지들도 베드로와 같이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성도들이 복음에 합당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고 말한다. ‘이신칭의’의 교리로 성도의 행위는 상관없다고 함부로 해석하는 것은 바울의 편지를 잘못 해석하여 파멸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 주님은 심판주로 오신다. 주님이 내 편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내가 주님 편에 서야 한다. 내가 정의가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의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르치신 합당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주님 편에 서는 것이다. 믿음이다.

베드로후서 2:10-22 읽기


10-16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지만,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신다. 특히 더러운 정욕에 빠져서 육체를 따라 사는 자들, 권위를 멸시하는 자들을 파멸하게 두신다. 불의한 그들은 대담하고 거만하며 겁도 없이 하늘에 있는 영광스러운 존재들을 모욕한다. 그럼에도 천사들은 비록 불의한 그들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님 앞에서 불의한 그들을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않는다. 불의한 그들은 파멸당하기 위해 태어난 지각 없는 짐승과 같은 존재라서,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비방하다가, 짐승들처럼 멸망 당할 것이다. 불의한 그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불의의 값에 합당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대낮에 흥청대면서 먹고 마시는 것을 낙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티와 흠 투성이 인간들이다. 그들은 성도들과 연회를 즐길 때도 자기들의 꾀를 따라, 성도들을 간음할 상대로밖에 보지 않는다. 그들은 죄를 짓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들뜬 영혼들을 유혹하여, 자기들의 탐욕을 채우데 이용한다. 그들은 저주받은 자식들이다. 그들은 바른 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 간 자들이다. 불의의 삯을 사랑한 불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라간 것과 같다. 발람은 (그래도) 자기 잘못에 대하여 책망을 들었었다. 하나님께서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발람의 미친 행동을 막으셨었다.
17-22 불의한 자들은 물 없는 샘이요, 폭풍에 밀려가는 안개다. 그들에게는 캄캄한 어둠만이 기다린다. (그럼에도) 그들은 허무맹랑하게 큰 소리를 친다. 그들은 그릇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서 가까스로 빠져 나온 사람들을 (다시) 육체의 정욕을 따라 방종하도록 유혹한다. 그들은 자유를 약속하지만, 자유자가 아니라 타락한 종이 된다.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종노릇 하게 되듯, 그들은 육체의 정욕에 져서, 정욕의 종이 된다. 우리의 주님이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게 정복을 당하면, 그런 사람들의 형편은 다 나빠질 것이다. 의의 길을 알고서도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의의 길을 알지 못했던 편이 더 좋았을 것이다. 속담과 같이 개가 자기가 토한 것을 도로 먹고, 돼지가 몸을 씻고나서 다시 진창에 뒹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 베드로는 거짓교사와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서 벗어났다가, 거짓교사를 따라 다시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게 정복 당한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의 결국이 파멸임을 가르친다. 예수께서는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믿지 않는 자들의 악한 행위가, 그들이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증거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믿는 사람은 증거는 악한 행위가 아니라 진리를 행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빛으로 (빛되신 예수께)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의의 길이다. 시편1편의 시인이 노래하는 복이 있는 사람의 길이요, 의인의 회중에 들어가는 길이다. 베드로는 의의 길을 알고서도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의의 길을 알지 못했던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한다. 의의 길이란 거룩한 계명을 따르는 길이다. 진리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요, 듣고 행하는 길이다. 베드로가 가르치는 경건이다.

베드로후서 2:1-9 읽기

1-3 (예언의 말씀, 곧 성경 말씀을 강조한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난 것과 같이, 성도를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거짓 교사들은 파멸로 몰고 갈 이단을 몰래 끌어들일 것이라고 한다. 거짓 교사들은 자기들을 사서 소유 삼으신 주님을 부인하고 자멸할 것을 재촉하는 자들이다. 많은 사람이 자멸을 재촉하는 거짓 교사들을 본받아서 방탕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저들만 방탕해서 자멸 할 뿐 아니라 진리의 길이 비방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거짓 교사들은 탐욕에 빠져 성도의 호주머니를 털어 갈 것이라고 주의를 준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거짓 교사들에게 심판을 정해 놓으셨다. 거짓 교사들은 반드시 파멸을 받을 것이다.
4-9 하나님께서는 천사라도 죄를 지으면, 지옥에 던져서, 사슬로 묶어 심판 때까지 어두움 속에 가두신다. 옛 세계를 아까워하지 않으시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홍수로 심판하셨다. 홍수로 심판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부르짖던 노아와 그의 가족 일곱 사람만 살려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 두성을 잿더미로 만들어, 후세에 경건하지 않은 자들에게 본보기로 삼으셨다. 그러나 무법한 자들의 방탕한 행동 때문에 괴로움을 겪던 의로운 사람 롯은 구하셨다. 롯은 그들 가운데 살면서, 그들의 불의한 행실을 보고 들으면서, 날마다 그의 의로운 영혼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주님은 경건한 사람을 시련에서 건져내시고, 불의한 사람을 벌하셔서, 심판 날까지 가두어 두신다.


// 경건한 사람, 곧 주변의 불의한 행실을 보고 들으면서 날마다 그의 의로운 영혼에 고통을 느끼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없다. 주님은 경건한 사람을 시련에서 건져내시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성경 역사를 통해, 불의한 사람, 곧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은 반드시 파멸을 받을 것임을 경고한다.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성경에 있는 사건들을 본보기를 삼으라고 가르친다. //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 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라고 편지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을 개인적인, 혹은 성도간의 문제로만 이해해 왔었는데, 세상의 불의한 행실을 보고 들으면서 의로운 영혼에 고통을 느끼는 것도 포함될 것 같다. 이웃과 세상을 향해 하나님이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도 후회할 것이 없다. // 주님은 경건한 사람은 구원하시고 불의한 사람은 벌하신다.

베드로후서 1:12-21 읽기

12 성도가 더욱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행하고 실족하지 않아,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넉넉히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받은 진리에 굳게 서 있어도, 베드로는 또 다시 성도들을 일깨운다. 13 베드로는 이땅에 사는 동안 성도들의 기억을 일깨워서 분발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대로, 베드로도 육신의 장마을 벗을 때가 멀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15 베드로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성도들이 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하려고 힘을 쓰고 있다고 편지한다.
16 베드로 일행은 성도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준다.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은 교묘하게 꾸민 신화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베드로와 동행자들이 그리스도의 위엄을 눈으로 보았다고 증언한다. 17 베드로는 (아마도 변화산상에서) 더 없이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좋아하는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실 때에,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았다고 증거한다. 18 베드로는 거룩한 산에서 예수와 함께 있을 때에, 다른 제자와 함께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다고 간증한다. 19 (그러나) 베드로는 무엇보다 (자신의 간증보다)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다고 선언한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예언의 말씀에서 빛을 볼 때까지 (깨달을때까지),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고 권면한다. 20 베드로는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때, 아무도 성경이 모든 예언을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21 예언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경의 저자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선언한다.


// 베드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하나님으로부터 넉넉히 받았다는 것을 알고(체험하고), 진리에 (말씀에) 굳게 서있는 성도들을 일깨운다. 베드로는 자신의 체험을 간증함으로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행하고 실족하지 않는 것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의 뜻에서 나오지 않고,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더 확실한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있으라고 성도들을 일깨운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도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이 신화가 아님 밝히기 위해 보조로 사용한다. 그리고 예언의 말씀이야말로 성도들이 주의를 기울여 들어야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나의 경험(간증)이 진리의 말씀보다 앞서서는 안된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행하고 실족하지 않게 하는 힘은 진리의 말씀에서 나온다.

베드로후서 1:1-11 읽기


1-2 발신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인 시므온 베드로. 수신자: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서, 우리의 믿음과 같은 귀한 믿음을 받은 이들문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써, 은혜와 평화가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성자 예수 그리스도들)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곧 영생을), 그의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은 곧 영생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이요,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덕을 누리는 것이다.

4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과 덕으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심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성도는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

5-7 그러므로 성도는 열성을 다하여 성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성도간의 우애를 더하고, 성도간의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해야한다. // 성도의 믿음(구원)은 개인적으로 시작할지 몰라도, ,개인적인 믿음의 성숙은 결국 공동체와 이웃(사랑)을 향한다.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하는 이유도 ‘나에서 우리’, ‘우리에서 이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8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우애, 사랑이 성도에게 갖추어지고, 넉넉해지면, 성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이 곧 영생이다. 영생을 누리는 일에 게으르면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영생이라는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다.

9 성도가 마땅이 갖추어야 할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우애, 사랑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근시안이거나 앞을 못보는 사람이다.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하게 용서받았음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것은 죄 용서 받았음을 잊어버렸다는 것이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는 뜻이다.

10-11 성도는 더욱 더 힘써서, 부르심을 받은 것과 (죄사함과), 택하심을 받은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 곧 영생) 굳게 해야 한다. 그러면 성도는 넘어지지 않는다. 결국 성도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추게 된다.


#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써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