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6:1-23 읽기

1-4 백성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았다. 여호아하스는 스물세 살에 왕이 되었으나, 석달만에 이집트의 왕에 의해 폐위되었다. 유다는 이집트에 은 백달란트, 금 한 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쳐야 했다. 이집트의 느고 왕은 여호아하스의 형제 엘리야김을 예루살렘의 왕으로 삼고,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여호아하스는 이집트로 잡아갔다.
5-8 여호야김은 스물다섯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렸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여호야김은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포로로 잡혀갔다. 느부갓네살은 성전의 온갖 기구도 바빌로니아로 가져가서 도성 바빌론에 있는 자기의 궁전에 들여놓았다. 여호야김의 사적과 악행은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다.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를 이었다.
9-10 여호야긴은 여덟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달 열흘 동안 다스렸다.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시켜 여호야긴을 바빌로니아로 잡아갔다. 이번에도 성전에 있는 값비싼 기구를 함께 가져갔다. 여호야긴 대신 삼촌 시드기야를 유다와 예루살렘의 왕으로 삼았다.
11-16 시드기야는 스물 한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을 다스렸다. 그는 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는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선포하는 예레미야 예언자 앞에서 겸손하게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느부갓네살은 강제로 시드기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에 충성을 맹세하도록 하였다. 시드기야는 억지로 하나님께 충성을 맹세했지만 결국 느부갓네살에게 반항까지 하였다. 시드기야는 고집을 부리며 뉘우치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도자들인 제사장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도 크게 죄를 지어, 이방의 모든 역겨운 일을 따라했다. 심지어 거룩하게 구별한 하나님의 성전도 더럽혔다. 하나님께서는 백성과 성전을 구원하시려고 예언자들을 보내시고 또 보내셔서 경고에 경고를 거듭하셨지만 그들은 예언자들을 조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치솟았다. 백성을 바로 잡을 길이 전혀 없었다.
17-21 하나님께서는 바빌로니아 왕으로, 자신의 백성을 치셨다. 바빌로니아 왕은 유다의 젊은이들을 닥치는 대로 칼로 쳐죽였다. 심지어 성전 안에서도 살육했다. 바빌로니아 왕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잔인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의 백성을 바빌로니아 왕에게 넘기셨다. 바빌로니아 왕은 성전의 기구와 성전 안의 보물, 왕과 신하들의 보물을 모두 바빌론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성전을 불사르고 예루살렘 성벽을 헐고 궁궐들을 다 불살랐다. 칼에 죽지 않은 사람들은 바빌로니아로 포로로 잡아가서 왕과 왕자들의 노예로 삼았다. 포로들은 페르시아 제국이 일어나기까지 노예생활을 했다.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칠십년동안 땅이 황폐하게 되어 그동안 누리지 못한 안식을 다 누리게 될 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셨다.
22-23 페르시아 고레스가 왕위에 오르자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고레스로 하여금 온 땅에 다음과 같은 조서를 써서 돌리게 하셨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땅 위의 모든 나라를 주셔서 다스리게 하시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그의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이 나라 사람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모두 올라가게 하여라.]

// “하나님(신)을 섬기는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신)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페르시아 고레스 왕의 조서의 핵심이다. 하나님(신)은 단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신)만이 아니시다. 창조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은 창조의 하나님을 주변 이방 나라들처럼 현지화 했다. 결국 하나님을 목석 우상화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크시다. 하나님은 세계화, 아니 전우주적 하나님이시다. 제국의 왕들, 느부갓네살, 고레스는 단지 저 멀리 계시는 하나님을 인식했을 뿐이다. 그래서 불쌍하게도 자신들은 하나님(신)께서 자신들과 함께 계시기를 추구하지 못했다. 하나님을 찾는 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함께 계신다. 임마누엘.

역대하 35:20-27 읽기

20-24 요시야가 성전 정돈을 마치고, 무교절을 마치고 난 뒤에, 이집트의 느고 왕이 유프라테스 강 가에 있는 갈그미스를 치려고 올라왔다. 요시야는 그것을 막아섰다. 느고가 요시야에게 유다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싸움을 걸어온 갈그미스를 치려고 나섰으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니, 하나님께 멸망을 당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거역하면서까지 자신을 막는 일을 멈추라고 전령을 보냈다. 그러나 요시야는 돌이키지 않고 변장까지하고 느고와 싸웠다. 사관은 요시야가 하나님께서 느고를 시켜서 하시는 말씀을 듣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요시야는 므깃도 평원에서 싸우다가 화살을 맞았다. 화살을 맞은 요시야는 예루살렘으로 이송되어 왔으나 숨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요시야를 조상들의 묘에 장사했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의 죽음을 슬퍼했다.
25-27 예언자 예레미야가 요시야의 전사를 애도하는 애가를 지었다. 요시야의 남은 사적은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다.


// 정말 어렵고 힘든 것이, 이방 왕(사람)들을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별력이다. 요시야가 느고의 전령을 듣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호사밧, 히스기야의 승전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요시야가 느고에게 맞선 것은 요시야의 교만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느고는 골리앗이나 산헤립처럼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않았다. 하나님(신)의 심판의 도구로 갈그미스를 치겠다고 전령을 보냈다. 심지어 하나님(신)께서 느고 자신과 함께 계신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요시야는 느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변장까지 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해야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감췄다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교회밖 사람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분별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오히려 교회 내에서 평안하다 평안하다 평안하다를 말하는 거짓 하나님의 사람이 판치는 현실이다.

// 요시야의 죽음이 슬프다. 순교정신이 하나님의 뜻을 가리고 말았다. ‘죽으면 죽으리라’의 신앙은 내 뜻을 고집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죽으라 하시면 죽기까지 순종하겠다는 자세다. 결국 내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니 주님께 물어야 하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역대하 35:1-19 읽기

1-6 요시야는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첫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 어린양을 잡았다. 요시야는 제사장들에게 각자가 해야 할 임무를 맡기고 성전에서 할 일들을 잘 하도록 격려했다. 요시야는 레위사람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거룩한 궤는 성전 안에 두십시오. 이제부터 당신들은 그 궤를 어깨에 메어 옮기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섬기는 일만 맡으십시오. 당신들은 다윗과 솔로몬의 가르침에 따라 가문별, 부서별로 준비를 하고 있다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일을 맡도록 하십시오. 당신들은 유월절 어린양과 염소를 잡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당신들은 스스로를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동족을 위하여서도 정결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해야 합니다.]


7-9 요시야는 자기의 소유 가운데서, 일반 백성들에게 유월절 제물을 거저 주었다. 왕의 신하들도 기꺼이 일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에게 돌아갈 제물을 자원하여 내놓았다. 성전의 최고 책임자인 힐기야와 스가랴와 여히엘은 제사장들이 유월절 기간에 쓸 제물을 내놓았다. 레위 지도자들도 레위 사람들이 유월절에 쓸 제물을 내놓았다.


10-19 유월절 준비를 마치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왕이 명령한 대로 각지 맡은 임무대로,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주님께 제물을 드렸다. 레위 사람들은 유월절 어린양을 규례에 따라 굽고 삶아 모든 백성에게 신속하게 먼저 분배했다. 그후에 밤늦게까지 바쁘게 섬겼던 제사장들의 몫을 준비했다. 노래하는 사람들, 문지기들도 각각 맡은 책임을 지켰다. 그들의 몫은 그들의 친족 레위 사람들이 준비해 주었다. 이와같이 요시야 왕이 명령한 대로 모든 일이 다 잘 준비된 가운데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유월절에 이어 이레동안 무교절이 이어졌다. 예언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안에서 이처럼 유월절을 지킨 예가 없었다고 사관은 기록한다. 이스라엘 역대 왕들 가운데서도 가장 (성대한? 율법에 충실한?) 유월절이었다. 요시야가 나라를 다스린지 열여덟째 해였다.


// 히스기야의 유월절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자’에 촛점을 맞추었다면 요시야의 유월절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자’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월절을 정결하게 준비할 때도, 주님께 제물을 드릴 때도 사관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행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문자적으로 순종/적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지만 그 적용은 바뀔 수 있다. 어제와 오늘 적용이 다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법궤와 회막 기물을 운반하던 레위 사람들의 임무는 백성을 섬기는 임무로 바뀌었다. 백성들이 유월절 예물을 각자 준비해야 하지만 요시야는 일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아갈 제물을 자원하여 내놓았다. 지도자들은 요시야를 따랐다. 그리고유월절 어린양의 분배는 제물을 제공한 지도층부터가 아니라 일반 백성부터 이루어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흘러 예수님의 유월절은 아예 자신의 몸 모든 인류를 위해 어린양으로 내놓으신 사건이었다.

역대하34:14-33 읽기

14-18 성전보수를 명받은 힐기야 제사장은 성전에서 궤에 보관된 돈을 꺼내다가, 모세가 전한 율법책을 발견하고 사반 서기관에게 주었다. 사관 서기관은 요시야 왕에게 나아가, 성전을 보수를 명받은대로 성전에 있는 돈으로 감독들과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맡겼다고 성전 보수에 관해 먼저 보고하고나서, 힐기야 제사장이 율법책을 건네 주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사반은 그 율법책을 요시야 앞에서 큰 소리로 읽었다.

19-21 요시야는 율법의 말씀을 다 듣고 애통해 하며 자기 옷을 찢었다. 요시야는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의 아들 압돈과 사반 서기관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자신과 백성을 대신하여 주님께 나아가, 율법 두루마리의 말씀에 관한 주님의 뜻을 물어보라고 명령했다. 요시야는 조상이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진노를 내리셨다고 적용했다.

22-28 힐기야와 왕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훌다 예언자를 찾았다. 훌다는 살룸의 아내였다. 살룸은 히스라의 손자요 독핫의 아들로서 궁중 예복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훌다는 예루살렘 제 이 구역에 살고 있었다. 훌다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요시야 왕 앞에서 낭독한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내가 이곳과 여기에 사는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그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고, 그들의 행위가 나를 노엽게 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분노를 쏟을 것이니 아무도 끄지 못할 것이다.] 훌다는 이어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요시야 왕이 율법책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 마음에 느낀 바 있어서,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손해져서, 네가 옷을 찢으며 통곡하였으므로, 내가 네 기도를 들어주었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내리기로 한 모든 재앙을, 네가 죽을 때까지는 내리지 않겠다. 네가 너를 네 조상에게 보낼 때에는 평안히 무덤에 안장되게 하겠다.] 그들이 돌아와서 요시야에게 훌다의 말을 전했다.

29-33 요시야 왕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아 성전에 올라갔다.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남녀노소 모두 다 성전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왕은 성전에서 발견된 언약책에 적힌 모든 말씀을 회중에게 크게 읽어주도록 했다. 그리고 요시야는 주님을 따를 것과, 마음과 목숨을 다 바쳐 그의 계명과 법도와 규례를 지킬 것과, 율법 책에 적힌 언약의 말씀을 지킬 것을 맹세했다. 주님 앞에서 언약을 맺었다. 요시야는 모인 회중들에게도 이 언약에 참여하도록 했고,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을 따랐다. 이와같이 요시야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혐오스러운 것들을 다 없애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다. 요시야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백성이 (주 조상의) 하나님께 복종하고 떠나지 않았다.

// 요시야는 율법책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 바르게 반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기도했다. 제사장, 서기관, 행정관이 요시야의 기도에 답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예언자 훌다를 찾아야 했다. 훌다는 요시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전해주었다. 하나님의 진노는 요시야가 죽은 뒤로 미뤄졌다. 훌다의 대답에서 요시야의 기도는 회개, 뉘우침의 기도였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 때도,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회개하자 진노를미루셨다. (32:26) 회개, 뉘우침은 진노를 뒤로 미룬다. 아니 용서를 받는다. 후대는 후대의 잘못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할 뿐이다.

//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요아스, 스가랴가 죽은 후 웃시야는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왕은 미래가 없음을 교훈한다. 본문은 요시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백성이 하나님께 복종하고 떠나지 않았다고 마무리 한다. 하나님을 찾고 섬기는 왕이 있는 나라는 소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건강한 나라에는 건강한 지도자가 있고 건강한 지도자 뒤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

// 훌다. 여선지자. 사관은 그저 남편 살룸만 어떤 사람인지 설명한다. 살룸은 조선시대로 따지면 상의원 관리였다. 요시야 왕이 어렸을 때부터, 살룸은 훌다와 요시야 사이에 중계자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하나님은 한 남자의 아내도 예언자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열심을 이뤄가신다.

역대하 34:1-13 읽기

1-2 요시야는 여덟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31년동안 다스렸다. 사관은 요시야를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였고, 그의 조상 다윗의 길을 본받아서,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곁길로 벗어나지 않았다.” 라고 평가한다.

3-7 요시야는 통치 8년에, 열여섯의 매우 어린 나이였지만,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통치 12년 되는 해에, 산당과 아세라 목상과 우상들을 없애, 유다와 예루살렘을 깨끗하게 하였다. 요시야는 바알 신들우상들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바알 제사장들의 무덤에 (바알 제사장들도 죽였다는 뜻이리라) 뿌렸다.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 불살라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깨끗하게 하였다. 요시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서뿐만 아니라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저 멀리 납달리 지역에 이르기까지, 직접가서 깨끗하게 하였다. 이렇게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분향단도 모두 부수어 버린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8-13 요시야는 나라와 성전을 깨끗하게 한 뒤, 통치 18년에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마아세야 성주,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 서기관을 보내서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게 했다. 이 세사람은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가서 므낫세, 에브라임, 북이스라엘의 나머지 지역에 사는 백성, 유다와 베냐민 모든 배성, 예루살렘 주민들이 성전세로 바친 돈을 성전 수리를 위해 건네 주었다. 이돈은 성전 수리를 맡은 이들에게 맡겨졌고, 성전 수리을 맡은 관리들은 성전 수리을 맡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어서 성전수리를 했다. 건축하는 이들은 목수, 석수들을 고용해 유다의 왕들이 폐허로 만들어 버린 성전 건물을 손질하게 했다. 일을 맡은 사람들은 정직하게 일을 했다. 일의 감독은 네명의 레위 사람들이었다. (특이하게도 네명의 감독 모두 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레위 사람들은 각종 공사 책임자들을 감독하였고, 어떤 레위 사람은 공사 기록원과 사무원과 문지기의 일을 맡았다.

// 요시야는 열여섯에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사관은 열여섯을 아직도 매우 어린나이라고 말한다. 요시아는 부왕 아몬이 열넷에 낳은 아들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열여섯이면 생리적인 나이로는 이미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굳이 ‘아직도 매우 어린 나이’라고 수식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요시야를 가르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다. 사관은 히스기야 왕 이후로는, 므낫세부터 어머니가 누군지 밝히지 않는다. 히스기야의 경우 외조부 스가랴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배웠다고 유추할 수 있는데… 하여간 요시야는 전도자의 가르침처럼 젊을 때에 창조주를 기억했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맛보기 전에, 인생의 헛됨을 노래하기 전에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을 노래하게 되었다. 마치 어린 목동 다윗이 하나님을 묵상했듯이. 그렇게 대장부가 된 (스무살이 된) 요시야는 백성에게도 참되게 사는 길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했다. 우선은 외적 성결이었다. 유다뿐만 아니라 패망한 북이스라엘 전역에 이르기까지 산당과 목석 우상을 제거했다. 그리고 스물 여섯의 (성숙한) 요시야는 외적 성결에 이어, 내적 성결, 곧 성전 보수를 명령했다.
// 주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였고 다윗의 길을 본받아서 우로나 좌로 곁길로 벗어나지 않았다는 요시야에 대한 사관의 평가로부터, 요시야는 하나님이야 말로 모든 은밀한 행위를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찾아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사야가 하나님을 찾았다에서 찾았다는 히브리 동사는 것은 따른다, 의지한다, 묻는다, 예배한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요시야가 하나님이 누군지 어떤 분이신지 알아갔다는 뜻이리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어린 요시야가 깨달은 것도, 바로 이 전도자의 가르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