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6 예수께서 어떤 동네에서 온 몸에 나병이 든 사람을 고치셨다. 온 몸에 나병이 든 사람이 예수를 찾아와 얼굴을 땅에 대로 엎드려 간청하였다. “주님,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고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말씀하시니 나병이 그에게서 떠나갔다. 예수께서 그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된 것에 대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서 사람들에게 증거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의 소문이 더욱 더 퍼지니, 큰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들의 병도 고치고자 하여 모여들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외딴 데로 물러가서 기도하셨다.
17-26 어느 날 예수께서 가르치시는데, 갈릴리와 유대 각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교사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들이 보는 앞에서) 병을 고치심으로 주님의 능력이 함께시는 것을 드러내었다. 그 때, 사람들이 중풍병에 걸린 친구를 침상에 눕힌 채로 예수께 데려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와를 벗겨 천정을 뚫고 그 병자를 침상에 누인 채, 무리 가운데 계신 예수 앞에 달아 내렸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용서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했다고 의하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어찌하여 너희는 마음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 ‘죄가 용서받았다’ 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거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서 어느 쪽이 말하기 쉽냐고 물으셨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중풍병자에게 일너나서 침상을 치워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일어나, 자기가 누웠던 침상을 거두어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집으로 갔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며, 두려움에 차서 말했다. “우리는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 예수께서는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고, 나병환자로 하여금 모세의 율법대로 행하여 사람들에게 증거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깨끗해짐이 개인적인 사건일 수 있어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회복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예수 믿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신앙고백으로 구원이 시작되어도, 교회라는 공동체로 부르심을 통해 구원이 완성된다. 사람들은 개인적인 구원에서 머물기 원하는 것 같다. 내가 깨끗해지고 내가 고침을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 율법교사들, 율법학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나라를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주님의 능력으로 병을 고치셨다.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사건에서는 나병환자의 개인적인 믿음과 달리 그들의 믿음을 본다. 고침을 받은 사람은 중풍병자 한 명이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에 주목하셨다. 예수님은 율법학자/교사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앞에서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는 것을 죄가 용서받는 것으로 적용하셨다. 예수께서 이땅에 병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오신 것임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그리고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용서를 선언하신 것은 분명 죄의 용서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예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이 바로 서는 것이 유대 공동체가 회복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믿음이 강한 자들이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는 것, 우리가 이웃을 기쁘게 하여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공동체의 죄가 용서 받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초대 교회가 서는 길이었고, 곧 우리 교회 공동체가 바로 서는 길이다.
// ‘나’의 믿음에서 ‘우리’의 믿음을 생각해 봐야 한다. 침상에 누워지내던 중풍병자가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집으로 갔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우리는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신기한 일은 우리의 기대에 어긋난 일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개인적인 문제로 주님 앞에 나오지만, 주님은 (우리의 기대와 어긋나게) 교회라는 공동체로 우리를 부르신다.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야 말로 신기한 일이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할 신기한 일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