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1 예수 일행이 탄 배는 갈릴리 맞은 편에 있는 거라사 지방에 도착했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니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예수를 만났다. 오는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은 채, 집을 떠나,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가 예수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 예수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말했다. “더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예수께서 이미 악한 귀신더러 그 사람에게 나가라고 명하셨기 때문이었다. 귀신이 여러 번 그 사람을 붙잡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쇠사슬로 묶어서 감시했으나, 그는 쇠사슬을 끊고 귀신에게 이끌려 광야로 뛰쳐나가곤 했다. 예수께서 그의 이름을 물으셨다. 그가 “군대”라고 대답했다. 많은 귀신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귀신들은 자기들을 지옥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예수께 간청했다.
32-39 마침 산기슭에 큰 돼지 떼가 방목 중이었다. 귀신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허락해 달라고 예수께 간청했다. 예수께서 허락하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달아서 호수에 빠져서 죽었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자기들이 목격한 이 일을 보고 읍내와 촌에 가서 알렸다.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예수께로 왔다. 사람들은 귀신들이 나가버린 그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도 두려워하였다.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귀신 들렸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낫게 되었는지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거라사 주위의 주민들은 모두 예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이 큰 두려움에 사로 잡혔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 되돌아 가시기로 하셨다. 귀신이 나간 그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를 돌려보내시며 네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다 이야기 하라고 명하셨다. 그 사람이 떠나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낱낱이 온 읍내에 알렸다.
// 예수! 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바람과 물이 예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는 것을 통해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도착한 거라사 지방. 이곳에서 예수는 불순종이, 곧 믿음없음이 무엇인지 제자들에게 보여준다.
// 귀신들! 귀신들린 한 사람을 묘사하면서, 누가는 ‘귀신’을 ‘악한 귀신’ 곧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귀신, 곧 ‘더러운 영’이 불순종의 영이다. 귀신들은 예수가 누구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귀신들은 사람에게 들어가 사람을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예수께서 이미 악한 귀신더러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당도하신 것이다. 귀신들은 어쩔 수 없이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해야 했다. 악한 귀신들이 모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자연세계는 (바람과 물은) 예수께 즉시 순종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돼지들도 (동물의 세계도) 창조주께 즉시 순종했을 것이다. 돼지들은 악한 귀신에 사로잡히기 보다 물에 빠져 죽은 것을 택했다. 예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작은 사람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큰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고 가르치신다. 실족하게 하는 것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그것들을 빼어버리고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고 하신다. 더러운 영들은 지옥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예수께 간청했지만, 자신들이 이미 지옥에 살고 있다는 것을, 곧 무덤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이런 악한 귀신들이 들어온 돼지 떼가 택할 수 있었던 것은 물에 빠져 죽는 것 외에는 달리 없었을 것이다. 어찌 더러운 영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을 그냥 둘 수 있으랴.
// 악한 귀신에 시달리지 않았던 거라사 지방 주민들!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초지종을 듣고는 그동안 귀신들린 사람이 자신들 대신 모든 악한 귀신들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군대 귀신 들렸던 사람이 어쩌면 마을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신사’였던 셈이다.) 돼지 떼의 죽음은 경제적으로 큰 손실인 것은 분명하나, 더러운 영들을 대신 담당해 줄 사람이 (귀신들을 모신 ‘신사’가) 사라졌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큰 두려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 마을을 떠나가시길 간청했다. 그렇다고 베드로처럼 자신들이 죄인임을 고백한 것도 아니었다. 베드로와 달리 예수를 주인으로 (주님으로) 모시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예수께서는 고향 나사렛에서와 같이 환영받지 못한 거라사를 떠나시기로 하셨다.
// 귀신 들렸던 사람! 귀신이 나가자 옷을 입고 온전한 정신을 찾은 그는, 거라사 주민들과 달리,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는 모든 교만을 쳐부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킵니다.” 라는 바울의 표현이 딱 맞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를 그가 속한 마을로 (집으로) 파송하셨다. 누가는 그에게 제정신이 들었다고 표현한다. 그는 고향 읍내에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낱낱이 전했다. ‘사도’의 역할을 한 것이다. 온전한 영을 가져야 온전히 순종할 수 있게된다. 귀신 들렸던 사람은 떠나시는 예수와 물리적으로 동행하지 못했으나, 예수의 영과 동행했다. 성도들도 하늘 보좌 우편의 예수와 물리적으로 동행하지 못하나 예수의 영, 보혜사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