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누가는 복음을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 이요, 복음을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요 전파자가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이야기라고 운을 뗀다. 그리고 누가는 복음을 자기의 말로 정리하여 데오빌로에게 전달하여, 데오빌로로 하여금 복음이 확실한 사실임을 알게 되기를 바라면서 복음을 풀어간다. // 복음은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다. 첫번째 ‘우리’는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요 전파자가 된 사람들이다. 제자들, 사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 ‘우리’는 제자들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이다. 누가는 이 두번째 ‘우리’에 들어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데오빌로는 세번째 ‘우리’의 한 사람이고… 나는 이렇게 흘러 온 n번째 ‘우리’의 한사람이다. 복음은 결코 개인적이지 않다.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고 우리에게 전해지고 우리가 전해야 할 확실한 사실이다. ‘나’ 중심으로 이해되어서는 결코 안되는, ‘내가’ 주어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복음이다.
5-7 누가는 복음을 레위 사람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가 어떤 사람인지로 시작한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어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흠잡을 데 없이 잘 지켰다. 그런데도 그 둘 사이에 늙도록 자녀가 없었다. //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인정 받아도, 자녀가 없는 것은 저주였던 시대였다. 의로운 삶이 세상에서의 형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8-20 사가랴가 제사장 직무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을 하는 일을 맡게 되었고, 분향하는 동안 주님의 천사에게 수태고지를 받았다. 천사는 사가랴에게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요한이라고 부르라고 하였고, 요한의 출생은 사가랴 부부가 당한 모든 설움을 씻어내는 기쁨과 즐거움이 될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기쁨이 될 것이며, 주님께서 보시기에 큰 인물, 술에 취하지 않고 성령을 충만히 받아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늙은 사가랴는 천사의 말을 믿을 수 없어서 증거를 요청했다. 천사는 자신은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이요,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사가랴가 벙어리가 되어서 말을 못하는 것이 증거라고 하였다. // 가브리엘 천사는 ‘그 때가 되면 다 이루어질 내 말을 네가 믿지 않았으므로’ 라고 말을 하며 사가랴가 요청한 증거로 벙어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가랴는 자신에게 주어진 확실한 수태고지에도, 그 때가 되어 그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침묵해야만 했다.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사가랴에게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떠벌이지 말라는 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은 ‘나’에게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나’중심의 간증은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차라리 침묵이 필요할 때가 많다. 복음은 ‘나’ 중심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21-25 백성은 사가랴가 성소에 오래 머물자 이상이 (놀랍게) 여겼다. 더군다나 사가랴가 성소에서 나와서도 말을 하지 못하자 환상을 본 줄로 알았다. (사람들은 사가랴를 다구치지 않았고) 사가랴는 제사 당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사벳이 임신했다. 엘리사벳은 불임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당하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주님께서 면하게 해주셨음을 알고도 다섯 달 동안은 침묵했다. // 개인적인 ‘은혜’는 때론 숨겨야 한다. 은혜 받았다는 나의 간증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 내가 받은 은혜가 공동체의 유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차라리 자랑하지 않는 것이 공동체의 건강에 좋다고 적용한다.
// 내가 받은 복음이 ‘우리’의 복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