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8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를 시험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반문하셨다. 그 율법교사가 율법에 이르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그에게 “네 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라고 답변하셨다.
29-37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예수께서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 두고 갔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나귀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여관 주인에게 주고 그 사람을 잘 볼봐 달라고 부탁했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는지 그 율법교사에게 물으셨다. 그가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그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라고 명하셨다.
38-42 예수 일행은 어떤 마을로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다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했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마리아 보고 자신을 거들어 주라고 말씀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있다. 주님의 일은 많지 않다.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아무도 그것을 마리아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 영생! 율법은 영생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예수께서는 율법교사에게 아는대로 실천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칭찬에? 율법교사는 자신이 예수를 시험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는 지 보이기 위해 이웃이 누구냐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는 강도만난 사람을 도운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어준 사마리아 사람 같이 자비를 베풀라고 하셨다.
// 영생을 주제로 한 율법교사와 예수의 대화에서 다시한번 예수의 평지설교, 곧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가르침을 (6:27-36 )떠올려 본다. 율법교사는, 죄인들도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는 사람이요,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좋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야기의 사마리아 인은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꾸어주는 자로 등장한다. 원수지간인 유대인을 측은히 여긴 사마리아 인을, 율법교사도 ‘자비를 베푸는 사람’으로 인정하게 한다. 예수께서 평지설교에서 말씀하신 대로 ‘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라는 말씀을 실천한 전형으로 등장한다. 예수께서 산상에서 가르치신 그대로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이것을 누리는 것이 영생이다.
// 율법교사는 하나님사랑과 이웃 사랑을 알았지만,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정작 몰랐다. 율법교사는 알기만 하고 실천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가 아는 만큼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율법교사가 사랑의 대상을, 이미 사랑하고 있는 자로 제한하고 있었기에, 예수께서는 원수에게도 이웃이 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내’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 마르다와 마리아 – 주님의 일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마르다는 주님을/주님의 일행을 접대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에 반하여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예수께서는 주님의 일이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님을 교훈하신다. 미가 선지자는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게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 염려하며 들뜬 사람에게,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게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라고 예언했다. 핵심은 예수와 함께 함이다. 주님을 어떻게 섬길지 염려하고 들뜨는 것보다, 차분히 주님과 함께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내’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