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49-59 읽기

49-5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에다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겟느냐? 그러나 나는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괴로움을 당할는지 모른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 한 집안에서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서 셋이 둘에 맞서고 둘이 셋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이, 고부간이 서로 맞서서, 서로 갈라질 것이다.]

54-59 예수께서 무리에게도 말씀하신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어찌하여 너희는 옳은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너를 고소하는 사람과 함께 관원에게로 가게 되거든, 너는 도중에 그에게서 풀려나도록 힘써라. 그렇지않으면 재판받고, 형무소에 들어가고 결국 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 마지막 한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절대로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 불은 심판이다. 이미 심판이 이루어 졌으면 예수께서 바랄 것, 곧 기도해야 할 것이 더 없었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예수게서는 받아야 할 세례, 곧 대속의 십자가를 앞두고 있다. 십자가의 대속까지 예수께서는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실 것이다. 개인적으로 유대인들의 배척보다 세상 죄를 져야하는 부담이 예수 앞에 놓인 괴로움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세상은 가족끼리라도 알곡과 가라지로 나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알곡과 가라지 사이에 평화는 없다. 분명하게 쪼개진다. 구분된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으로부터 난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들 사이는 철저하게 나뉘어 진다. 쪼개 진다. 구별된다고 말씀하신다.

// 예수께서는 위선자들에게 ‘의’가 무엇인지 알라고 하신다. 의는 심판의 자리에 가기 전에, 모든 사람을 심판의 자리에 세우는 주님과 미리 화해하는 것이다.  주님과 화해해서 심판의 자리를 면하라고 하신다. 재판을 받게되면 무조건 유죄라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바울은 적용한다. 사람이 어찌 스스로 자신의 죄값을 다 치를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한다.

// 화평은 주고 받는 것이 아니다. 행복과 마찬가지다. 누리는 것이다. 즉 동사형이어야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시지 않았다. 세상과 화평/하/려/고/ 오셨다. 심판의 자리에 설 수 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과 화평하려고 오셨다. 우리가 화평을 누리기 위해서는 주님과 화해하는 수 밖에 달리 없다.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의’라고 하신다. 마땅히 해야 할 올바른 것이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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