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4:25-35 읽기

25-33 (여전히)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랐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서 집을 지으려고 하면 집질 비용이 자기에게 있는 먼저 셈하여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셈하지 않아서 기초만 놓은 채 완성하지 못하면 보는 사람들이 그를 비웃을 것이다. 또 어떤 임금이 전쟁에 나가려면 적군과 싸워 당해 낼 수 있을지를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당해 낼 수 없겠으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청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서 누구라도,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34-35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찐 맛을 잃으면 더 이상 소금이 아니다. 짠 맛을 잃은 소금은 거름으로도 쓸 데가 없어서 밖에 내버린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예수를 따라 다닌다고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1) 가족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2)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 3)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그런데 이 제자는 자격증을 따듯 일회성이 아니다. 끊임없이 평가받아야 한다. 짠 맛을 잃은 소금이 쓸 데가 없어서 밖에 내버려지듯이, 제자의 자격을 잃으면 하나님 나라 밖으로 내버려진다. 밟힌다.


// 사람들은 망대를 세우기 전 그 비용을 먼저 셈한다. 셈하지 않아서 기초만 놓은 채 완성하지 못하면, 보는 사람이 그를 비웃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하나님 나라 기초만 놓은 채 완성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세상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물론 완성된 하나님 나라는 미래에 온다. 그래도 비웃음을 사는 이유는 진척이 없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함으로’ 예수의 제자인 것을 보여주지 못하니. 그러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00년이 넘도록 완성하지 못하고 있지만 아무도 비웃지 않는다. 진척이 있기 때문이다.

// 싸움의 결과를 헤아려 보는 것과 같이 자기 소유을 다 버리지 않으면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바벨론과 싸워 결국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지 않았던가. 설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성전을 망하게 하실까? 평안하다 평안하다 평안하다의 거짓 예언에 사로잡혀 망하고 말았다. 하나님보다 예루살렘과 성전을 더 우상시 한 결과였다. 자기 소유를 다 버린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무조건 교회가 이기도록 하시지 않는다. ‘교회다움’을 위해서라면 이스라엘이 최후의 보루라고 여겼던 예루살렘과 성전까지도 망하게 하셨듯이, 하나님은 교회도 철저히 망하게 하실 분이시다. 한국교회는 3세기 이전의 로마교회로부터 ‘약자의 신학’을 배워야 한다. 지금은 망할 때다.


// 소금은 좋은 것이다. 좋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 좋았더라와 같은 뜻이리라. 따라서 제자의 소금됨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이다. 그러나 제자의 삶을 보여주기 못하면 더이상 제자가 아니다. 제자의 삶을 잃은 제자는 쓸 데가 없어서 하나님 나라 밖에 내버려진다. 성전, 거룩한 성, 곧 하나님나라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성도라면 이것을 두려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