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조금씩 조금씩 가셨다.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셨다. 그들은 (차마 예수께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 예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쳤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 가서, 그들을 보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가는 동안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되돌아와서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 온 사람은 이 이방 사람 한 명 밖에 없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사마리아 사람에게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다.
//1 당시 나병환자들은 불가촉 천민이었다. 마을 안에 살지 못했다. 이들은 마을로 들어가시는 예수를 멀리서 불러야 했다. 예수께서는 불쌍히 여겨달라는 이들의 호출에 응답하셨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께서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제사장에게 가라고 했던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나았다는 믿음으로 제사장(들)에게 출발했다. 가는 도중 정말 자신들이 나았다는 것을 알았다. 열 명의 나병환자 중 적어도 한 명은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제사장에게 직행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께 다시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 예수께서는 다른 아홉은 어디있느냐 하시며 사라리아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다.
//2 열 명의 나병환자들. 불가촉 천민들. 이들에게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구별이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으로 서로 미워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사치였다. 무리를 지어 힘을 키우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날라오는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공동운명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께 하던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제사장(들)을 향해 달려가다가 나음을 입었다. 드디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회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유대인 나병환자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조금 전까지 함께 했던 사마리아 /나/병/환자를 /사/마/리/아/인/으로 보기 시작했다. 더이상 자신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어쩌면 돌아가서 자기 몸을 보여 줄 제사장이 없었을 수도 있다. 유대인 제사장에게 자신은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마리아인은 영원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께 와서 깨끗해진 몸을 보여드릴 수 밖에 없었다. 예수가 영원한 대제사장 되심을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사마리아인은 구원을 받았다.
//3 하나님 나라는 어린 양과 사자가 함께 노는 나라다. 어린 양도 살고 사자도 살지만 각각 따로 사는 나라가 아니라 함께 사는 나라다. 더불어 사는 나라다.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는 이유는 더불어 살기 때문이다. (아니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는 더불어 살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차별이다.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들은 고침을 받는 순간 자신들의 삶을 살러 갔을 것이다. 함께 /멀/리/서라도 예수를 불러야 했던 간절함이 사라졌다. 나병환자 시절의 동고동락이 깨어졌다. 오직 사마리아 사람만 예수 앞에 /가/까/이/ 나와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 나라는 성도가 삼위 하나님 앞에 나와 더불어 사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