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0 (승천이 가깝자) 예수께서는 여러 성읍과 마을에 들리셔서, 가르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어떤 사람이 예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라고 물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면서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때 너희가 ‘우리는 주인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님이 우리를 길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라고 말해봤자, 주인이 너희에게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모두 내게서 물러가거라’ 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는 바깥으로 쫓겨난 것을 깨닫게 될 것이요, 그때에 너희는 바깥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사람들이 동서남북에서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보아라 꼴찌가 첫째가 될 사람이고, 첫째가 꼴찌가 될 사람이다.]
31-35 바로 그때에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 여기에서 떠나가 달라고 요청했다. 헤롯 왕이 예수를 죽이고자 한다고 (핑계를) 말했다.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말했다.[“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기를 ‘보아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 고 하여라.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나는 내길을 가야겠다. 예언자가 예루사랄메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 구나!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로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보아라, 너희 집은 버림을 받을 것이다. 너희가 말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 할 그때가 오기까지, 너희는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 구원받을 사람이 적습니까 라는 질문에 예수께서는 구원의 문이 좁다고 하신다. 문에 장애물이 많아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신다. 더군다나 좁은문이 닫힐 것이라고 하신다. 문이 닫히면 문을 두드려도, 졸라도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셨건만 구원의 문은 그렇지 않다. 구원의 문은 내가 두드린다고 열리는 문이 아니라고 하신다. 요한은 라오디게야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예수께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으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라고 말씀하시는 환상을 본다. 구원의 문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두드려서 열리는 문이 아니라, 주께서 문을 두드리실 때 내가 열어야 하는 문이다. 그렇다면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기도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은 집주인이 문을 닫기 전에 유효하다. 곧 심판주 앞에 가기전에 주와 화해하기 위해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함을 뜻한다. 주와 화해하지 않고 불의를 일삼으면 구하고 찾고 두드려도 소용없다.
// 구원받을 사람이 적습니까 라는 질문에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나와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석할 것이라고 하신다. 주께서 문을 두드리실 때 문을 열고 주와 화해하는 사람들이 육적 이스라엘 말고도 많다고 하신다. 하나님 앞에 선민이라고, 큰 자라고 자부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신다. 작은자라도 주의 음성을 듣고 주와 화해하는 문을 열고 주께로 들어가 주와 더불어 먹고 주께서 나와 더불어 먹는 자들이 큰 자가 된다.
//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예수는 얄미운 존재다. 그래서 예수를 떠나가 달라고 요청했다. 베드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주께 나를 떠나소서 라고 말했었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시인하지 않았다. 심지어 헤롯에게 핑계를 댄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이 싸워야 할 선한 싸움, 달려갈 길이 있음을 아셨다. 장애물이 많은 좁은 문을 여시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자신의 길을 가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바울도 이런 예수를 본받아 예루살렘으로 향했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주께서는 여전히 화해의 문을 두드리신다. 주와 화해하지 않는다면 결코 주를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