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시인은 복을 빌지 않는다. 주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자비를 구한다. 주님께서 긍휴을 베푸셔서 자신의 불순종을 없애 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이 지은 죄를 씻어주시고 죄를 지으려는 마음을 없애 달라고 기도한다. 시인은 반역/불순종의 마음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아니 죄를 지을 때마다 심판대 앞에 서서 유죄를 인정한다. 주님께 죄를 지었음을 시인한다. 주님께 자신의 악한짓을 숨길 수 없으며, 주님이 유죄를 선언하시는 것이 옳고 정당하다고 받아들인다. 심지어 모태 중에서부터 죄인이었고, 죄인으로 태어났다고 인정한다.
6-9 시인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것이야 말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지혜라고 노래한다. (요한은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라고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성도들에게 편지한다.) (그리스도의 대속을 모르는) 시인은 (그리스도의 피 대신) 우슬초로 정결케 해 달라고, 죄를 씻어 눈보다 더 희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용서받음의 기쁨과 즐거움을 간구한다. 벌을 받아도 용서받으면 기뻐하며 춤출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주님께 더이상 자신의 죄를 보지 마시고, 자신의 모든 죄를 없애 달라고 요청한다.
10-13 시인은 (죄를 없애 달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께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달라고, 자신의 마음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만들어 달라고 노래한다. 주님 앞에 머무르고 싶다고, 주님의 성령을 자신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달라고 매달린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달라고 떼를 쓴다. 주님 앞에 순종하는 자로 설 수 있는 자발적인 마음을 달라고 요청한다. (나아가) 시인은 반역하는 죄인들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주님의 길을 가르치면 죄인들이 주님께 돌아올 것이라고 주께 아뢴다. (공동체적인 구원을 꿈꾼다.)
14-19 시인은 구원의 하나님을 부른다. 살인죄를 짓지 않게 지켜 달라고 요청한다. 대신 주님의 의로우심을 소리 높여 외치겠다고 약속한다. 주께, 입으로 주를 찬양하겠다고 약속한다. (살인죄와 찬양이 대비된다.) 시인은 주께서 제물과 제사보다 상한 심령을 원하신다는 것을 안다고 노래한다. 주님은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고백한다.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 천국이 가난한 자들의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떠오르는 구절이다. 시인은 주님은 은혜로 시온, 곧 하나님의 다스림 있는 (율법이 있는) 곳을 돌봐 달라고,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을 견고히 세워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주의 백성들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를 제사와 온전한 제물을 드릴 것이라고 약속한다.
// 살인죄를 짓지 않게 지켜 주소서. 예수께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죄에 해당한다고 가르치셨다. 살인죄와 찬양이 대비되는 이유다. 온갖 욕설과 비방으로 간지러운 입을 긁어줄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의로우심을 찬양하는 것이다. 주님의 의로우심 앞에 서면 나의 의로움은 드러나지 않는다. 세리와 같이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는 기도 밖에 다른 간구는 드릴 수 없을 것이다.
// 복이 아니라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용서가 (용서받음이) 복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