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가 자기들을 겨냥하여 앞의 비유를 말씀하신 줄 알고,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백성을 두려워하여 예수를 잡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정탐꾼들을 예수께 보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했다. 종교법으로 어떻게 못하자 사법권에 넘기려고 했던 것이다. 의로운 사람들인 체 행세하면서 예수께 접근한 정탐꾼들은 예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예수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입발린 소리를 먼저 했다. 그리고 예수께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옳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의 속셈을 아신 예수는 데나리온 한 닢을 보여 달라고 하신 후, 데나리온에 누구의 얼굴과 글자가 새겨져 있는지 물었다. 그들은 황제의 얼굴상과 황제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그러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책잡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의 답변에 놀라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27-38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 몇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물었다. 일곱형제 맏이가 아내를 얻어 살다가 자식이 없이 죽어, 둘째가 형수를 맞아들였고, 둘째도 자식이 없어 죽어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다. 이렇게 일곱형제가 다 그렇게 하였는데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나중에 이 여자도 죽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이 있다면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지 물으며, 부활이 없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변호했다. 예수께서는 이세상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만 저 세상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사람은 결혼하지 않는다고 답하신다. 부활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사람은 천사와 같아서, 더 이상 죽지도 않는다고 하신다. 부활의 자녀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언하신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고 하신다. 모세가 주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입니다. 이삭의 하나님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하고 부르는 것이 증거하고 하신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 아니시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신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산다고 하신다.
39-40 예수께서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하시는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율법학자들 몇 사람은 예수께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고 맞장구쳤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감히 예수께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했다.
//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 드리라.” 마치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이분법으로 나뉘는 듯한 뉘앙스다. 그러나 이 아침에는 황제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적용해 본다. 황제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한 부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가이사의 형상과 이름이 있는 동전은 하나님의 것이 아닌 가이사의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로마서 13:1-7은 어쩌면 이 말씀에 대한 바울의 적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님은 세상 황제보다 크신 분이시다. 가이사의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글 (말씀)을 받았다는 이스라엘은 (특별히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렇지 않다고 우회적으로 꾸짖으신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 부활! 미래의 일이 아니라고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셨고, 이삭의 하나님 이셨고, 야곱의 하나님이셨던 것이 아니라, 모세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고, 이삭의 하나님이시고, 야곱의 하나님이시고,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의 하나님이시고, 스데반을 비롯한 집사들의 하나님이시고, 믿음의 선배들의 하나님이시다. 부활은 신비하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의 부활에 근거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예수의 부활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여전히 삼위 하나님으로 교제하시는 근거다. 부활은 완전한 임마누엘이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부활신앙은 결국 온전한 임마누엘을 꿈꾸는 믿음이다. 하나님을 안다면 영생이요 하나님을 모른다면 영벌이다.
// 하나님나라는 이 땅에서도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때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