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5편 읽기

시편 55편 읽기 (메시지 번역 아주 쬐끔 수정)

1-3 하나님, 귀를 열어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내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은 체 마소서. 가까이 오셔서 속삭이듯 응답해 주소서. 주님이 몹시도 필요합니다. 저들이 죄에 죄를 쌓고 원색적인 비방을 늘어놓으면, (저들의) 비열한 목소리에 (나의) 온몸이 떨리고, 사악한 눈초리에 기가 죽습니다.

4-8 배속이 온통 뒤틀리고 죽음의 망령이 나를 짓누릅니다. 두려워 덜덜 떨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저리를 칩니다. 스스로 묻습니다. “누가 내게 날개를 달아 줄까? 비둘기 같은 날개를.” 비둘기 날개 퍼덕여 이곳을 벗어나게 하소서. 평화와 고요를 맛보게 하소서. 시골길을 걸으며 숲 속 오두막에서 쉬게 하소서. 광풍이 난무하는 이 험악한 곳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9-11 주님, 호되게 꾸짖으소서. 저들의 혀를 베어버리소서. 소름이 끼칩니다. 저들은 도성을 폭력배의 각축장으로 만들고, 뒷골목을 배회하며 낮이고 밤이고 싸움질을 해댑니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흘러넘치고 상인들이 환한 대낮에 바가지를 씌우며 사기 칩니다.

12-14 나를 모욕한 자가 동네 불량배였다면 차라리 내가 달게 받았을 것을. 욕설을 내뱉은 자가 낯모르는 악인이었다면 내가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것을. 그러나 그자가 바로 당신! 나와 함께 자란, 나의 가장 친한 벗이라니! 우리가 팔짱끼고 함께 걷던 그 기나긴 시간, 하나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지.

15 저 배신자들을 잡아 산 채로 지옥에 보내소서. 저들이 극심한 공포를 맛보게 하시고 저주받은 삶의 황폐함을 낱낱이 느끼게 하소서.

16-19 내가 하나님을 소리쳐 부르면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리라. 내가 깊은 함숨 내쉬면 해질 녘이나 동틀 녘에도, 한낮이라도 그분껫 들으시고 구해 주시리라. 수천 명이 늘어서 나를 대적하는 위험 속에서도 내 생명 안전하고, 아무 이상 없구나. 하나님께서 내 탄식을 들으시고 판결을 내리시니 저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시리라. 그러나 죄의 습관이 굳어진 저들, 하나님을 무시하는 저들, 결코 변하지 않으리.

20-21 내 가장 친한 벗이 친구들을 배신하니, 자기 말을 스스로 뒤집고 말았다. 평생 그의 말에 매료되었던 나, 그가 나를 공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네. 음악처럼 아름답던 그의 말이 비수로 변해 내 마음을 찌르다니.

22-23 네 근심을 하나님의 어깨 위에 올려 놓아라. 그분께서 네 짐 지고 너를 도우시리라. 선한 이들이 쓰러져 파멸하는 것을, 그분은 결코 그대로 두지 않으시리라. 하나님, 저들을 진흙탕 속에 던져 버리소서. 살인과 배신을 일삼는 저들의 수명을 절반으로 줄이소서. 나는 주님만 믿습니다.

//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하나님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잠포지움을 했던 바로 그 친구들이 죄에 물들고 하나님을 무시하며 배신한다면 나의 마음을 어떨까? 목사님의 설교에 매료 되었던 성도가 어느날 목사님의 표리부동함을 보았을 때, 은혜로왔던 설교 한구절 한구절이 비수로 변해 그 마음을 찌르지 않을까? 그래도 시인은 하나님 안에서 쉼을 누린다. 근심을 하나님 어깨 위에 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 어떻게 근심을 하나님 어깨 위에 올려 놓을 수 있을까?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말씀하셨다. 예수의 멍에를 메는 사람은 성자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고, 성자 예수를 아는 자들은 성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성부 하나님만이 성자를 아시며, 마찬가지로 성자만이 성부를 알기 때문이다. 결국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고 성자 예수를 아는 것이 영생이다. 임마누엘이다.

시편 54 읽기

하나님,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주의 권세로 나의 정당함을 변호해 주소서.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나의 간구에 귀를 기울여 주소서.
무법자들이 일어나 나를 칩니다. 폭력배들이 내 목숨을 노립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분, 내게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원수가 나에게 악한 짓을 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신실하신 주께서 내 원수들을 전멸시켜 주십시오.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주께 제물을 드립니다. 주님의 선하신 이름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이 나를 모든 재난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내 눈으로 원수들의 멸망을 보았습니다.

//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문제는 우리다.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다른 길로 가면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임마누엘이 아니다. 시인처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변호사로 부르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내편으로 부르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나님 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내가 나의 싸움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에 내가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 시인이 원수를 나에게 악한 짓을 하는, ‘내’ 원수, 나의 원수라고 개인적으로 지칭하지만, 시인의 원수는 하나님의 원수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이 하나님의 편에 기댈 수 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을 이길 수 있다.

// 시인은 싸움/재판의 결과를 안다. 시인은 원수의 멸망을 보았다고 노래한다. 마지막 절은 시편 23편 5절을 연상시킨다.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 부어 내 머리에 발라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시23:5 공동번역). 다시 1절을 읽어본다. 시인이 싸웠던 싸움/재판은 시인의 이름이 아니라 주의 이름이 걸린 싸움이었다. 나는 무슨 싸움을 하고 있나?

시편 53 읽기

1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없다 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한결같이 부패하고 더러운 일을 행하는 흉악한 자들이다. 어리석은 사람들 중에는 선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없다.
2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굽어보신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이다.
3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찾지 않고 다른 길을 찾는다. 그것도 썩은 길을 찾는다. 선한/착한 일을 (하나님의 뜻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모두 죄악을 행한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해서 (어리석어서) 그런가? 그렇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약탈하고 착취하느라, 하나님을 찾지 (부르지) 않는다.
5 하나님은 경건하지 못한 자들의 뼈를 흩으신다. (무덤에 제대로 장사되지 못하게 하신다?) 그들은 두려워 할 이유가 없는 곳에서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맞아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6 시인은 하나님께 시온에서 나오셔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한다.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그들의 땅(시온, 곧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으로 되돌려 보내시는 것이다. 곧 주의 백성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구원이다.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 하나님 나라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이유다.

// 우리는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 나아갔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맞아 주시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수치중의 수치는 우리가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을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면서 주님께 나아갔을 때, 주님이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라는 말씀하실 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시인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되돌려 보내시는 것이라고’ 노래하며 시를 마친다. 구원은 주의 백성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 하나님을 찾는 하나님 나라의 삶이다.

시편 52 읽기

1-5시인은 한 용사에게 왜 악한 일을 자랑하는지 묻는다. 왜 경건한 사람에게 저지른 악한 일을 자랑하는지 묻는다. 그를 사기꾼이요, 비난하는 말을 하고, 해로운 일만 꾸미는 자라고 책망한다. 착한 일보다 악한 일을 즐기고, 옳은 말보다 거짓말을 더 좋아한다고 지적한다. 시인은 한 간사한 사람에게, 남을 해치는 말을 좋아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넘어뜨리고 영원히 없애 버리실 것이라고 경고한다. 간사한 자를 하나님의 장막에서 끌어내어 갈기갈기 찢어서, 영원히 뿌리 뽑아 버리실 것이라고 선언한다.

6-9 의인은 하나님께서 간사한 자가 당하는 꼴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하나님을 자기 피난처로 삼지 않고, 많은 재산만을 의지하며, 자기의 폭력을 의지하던 자들의 결국을 알기에, 마지막에 웃는자는 의인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는 푸른 잎이 무성한 올리브나무처럼, 언제나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만을 의지한다고 노래한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며, 주님을 영원히 찬양하겠다고 다짐한다. 주님을 믿는 성도 앞에서 선하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겠다고 노래한다.

// 어제와 같이 살인죄와 찬양이 대비된다. 살인죄를 짓지 않게 지켜달라는 시인의 간구를 예수께서는 형제를 언행으로 미워하는 것도 멸시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악한 자들을 영원히 없애 버리실 것이다. 시인은 대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며 주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것이야 말로 의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노래한다.

// 그러면 성도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다. 사랑중의 사랑은 용서다. 주님을 믿는 성도는 주님의 용서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성도가 선하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 말과 혀로만 해서는 안된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이웃의 빚을 탕감해 주는 구체적인 행함으로 드러나야 한다.

시편 51 읽기

1-5 시인은 복을 빌지 않는다. 주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자비를 구한다. 주님께서 긍휴을 베푸셔서 자신의 불순종을 없애 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이 지은 죄를 씻어주시고 죄를 지으려는 마음을 없애 달라고 기도한다. 시인은 반역/불순종의 마음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아니 죄를 지을 때마다 심판대 앞에 서서 유죄를 인정한다. 주님께 죄를 지었음을 시인한다. 주님께 자신의 악한짓을 숨길 수 없으며, 주님이 유죄를 선언하시는 것이 옳고 정당하다고 받아들인다. 심지어 모태 중에서부터 죄인이었고, 죄인으로 태어났다고 인정한다.

6-9 시인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것이야 말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지혜라고 노래한다. (요한은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라고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성도들에게 편지한다.) (그리스도의 대속을 모르는) 시인은 (그리스도의 피 대신) 우슬초로 정결케 해 달라고, 죄를 씻어 눈보다 더 희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용서받음의 기쁨과 즐거움을 간구한다. 벌을 받아도 용서받으면 기뻐하며 춤출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주님께 더이상 자신의 죄를 보지 마시고, 자신의 모든 죄를 없애 달라고 요청한다.

10-13 시인은 (죄를 없애 달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께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달라고, 자신의 마음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만들어 달라고 노래한다. 주님 앞에 머무르고 싶다고, 주님의 성령을 자신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달라고 매달린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달라고 떼를 쓴다. 주님 앞에 순종하는 자로 설 수 있는 자발적인 마음을 달라고 요청한다. (나아가) 시인은 반역하는 죄인들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주님의 길을 가르치면 죄인들이 주님께 돌아올 것이라고 주께 아뢴다. (공동체적인 구원을 꿈꾼다.)

14-19 시인은 구원의 하나님을 부른다. 살인죄를 짓지 않게 지켜 달라고 요청한다. 대신 주님의 의로우심을 소리 높여 외치겠다고 약속한다. 주께, 입으로 주를 찬양하겠다고 약속한다. (살인죄와 찬양이 대비된다.) 시인은 주께서 제물과 제사보다 상한 심령을 원하신다는 것을 안다고 노래한다. 주님은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고백한다.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 천국이 가난한 자들의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떠오르는 구절이다. 시인은 주님은 은혜로 시온, 곧 하나님의 다스림 있는 (율법이 있는) 곳을 돌봐 달라고,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을 견고히 세워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주의 백성들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를 제사와 온전한 제물을 드릴 것이라고 약속한다.

// 살인죄를 짓지 않게 지켜 주소서. 예수께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죄에 해당한다고 가르치셨다. 살인죄와 찬양이 대비되는 이유다. 온갖 욕설과 비방으로 간지러운 입을 긁어줄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의로우심을 찬양하는 것이다. 주님의 의로우심 앞에 서면 나의 의로움은 드러나지 않는다. 세리와 같이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는 기도 밖에 다른 간구는 드릴 수 없을 것이다.

// 복이 아니라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용서가 (용서받음이) 복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