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11-25 읽기

11-15a 세월이 지나 모세가 어른이 되었다. 모세는 왕궁 바깥으로 나와 동족에게 갔다. 동족들은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침 동족 히브리 사람이 이집트 감독관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았다. 모세는 좌우를 살펴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 이집트 감독관을 쳐죽여서 모래 속에 묻어 버렸다. 이튿날 모세는 다시 나가 보았다. 이번에는 히브리 사람 둘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모세는 왜 동족을 때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모세에게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습니까? 당신이 이집트 사람을 죽이더니 이제는 나도 죽일 작정입니까?” 하고 따졌다. 모세는 자신이 이집트 사람을 죽인 일이 탄로난 것을 알고 두려워하였다. 이 일은 바로에게까지 전해졌다. 바로는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고, 모세는 바로를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쳤다.

15b-22 어느 날 미디안 땅에 머무는 모세는 한 우물가에 앉아 있었다.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는데 그 딸들이 우물에 와서 아버지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려고 했다. 그런데 목자들이 나타나서 제사장의 딸들을 쫓아버렸다. 모세는 이 꼴을 참지 못하고 제사장들의 딸을 도와 양 떼에게 물을 먹였다. 제사장 르우엘은 딸들에게 오늘은 어떻게 이렇게 일찍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딸들은 어떤 이집트 사람이 목자들의 손에서 자신들을 구해 주었고, 양 떼에게 물을 먹이는 일까지 도와주었다고 대답했다. 제사장이 딸들에게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불러서 음식을 대접하라고 말했다. 르우엘은 모세가 기꺼이 초청에 응하고, 함께 살겠다고 하자, 딸 십보라를 모세와 결혼하게 했다. 십보라가 아들을 낳자, 모세는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 (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이라고 지었다.

23-25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집트 왕이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여전히 고된 일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이스라엘은 고된 일 때문에 하나님을 부르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신다. 이스라엘 자손이 종살이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셨다.

// 모세의 이집트 왕궁생활은, 모세가 어떻게 왕궁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로 시작해서 ‘세월이 지나’로 그냥 끝이 난다. 모세가 왕궁을 떠난 것은 그의 나이 마흔이라고 하는데… 이어지는 두 사건으로 볼 때, 왕궁에서 자란 모세는 정의감에는 불탔지만 주변을 살펴야 할 정도로 바로의 권위와 보이지 않는 (어머니에게 들은 하나님의) 권위/권세 사이에서 고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국의 최상위 지배층에서 두 주인을 섬겼다고나 할까?

// 모세의 미디안 생활 역시, 모세가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의 딸 십보라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은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세월이 많이 흘러서’ 로 정리된다. 이 기간도 사십 년이라고 한다. 모세가 십보라를 만나는 사건에서, 모세는 여전히 정의감에 불탔다. 그러나 더 이상 자신의 처지(지위)나, 주변을 살펴보지 않아도 되었다. 바로의 권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보이지 않는 (말로 듣기만 한)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서는 더 미궁에 빠졌을 것이다.

// 그동안 모세를 죽이려고 했던 이집트 왕은 죽었지만,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전히 고역으로 힘들어 하고 있었다. 세상 역사는 그냥 흘러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신다. 고역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억하게 한다. 하나님께 부르짖게 한다.

//마찬가지로 세월이 지나고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주님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변함없다. 문제는 성도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잊고 산다는 것이다. 성도가 힘들게 살아간다면 어쩌면 이 약속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라는 주님의 사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 땅에서 제국의 최상위 계층에서 호사를 누리든, 아니면 가난해서 비천한 생활을 하든, 정의감은 나의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곧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이 방법대로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언약/약속 앞으로 불러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