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6:17-28 읽기

17 모르는 일에 오지랖 떨지 말아라. 소 귀에 경 읽는 꼴이다. 18 묻지마 살인을 하는 미친 사람이 있다. 19 악플이나 욕설로 다른 사람을 죽게하는 사람도 미친 사람이다. 20 다른 사람을 씹지 않으면 다툼도 그친다. 21 그러나 다른 사람을 씹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꼴이다. 다툼이 커진다. 22 사람들은 헐뜯는 말을 좋아해서 장난삼아 ‘좋아요’를 누르지만, 헐뜯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23-25 감언이설은 표리부동이다. 진실되지 못하여 믿을 수 없다. 논어에는 ‘자왈 교언영색 선의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공자께서 교묘한 말을 잘하고 얼굴 빛을 잘 꾸미는 사람 가운데 어진 사람이 적다고 말씀하셨다.> 일곱색갈 무지개 같은 감언이설에 속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26-28 사필귀정. 악의는 결국 회중 앞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함정을 판 사람은 자기가 판 함정에 빠지고, 자기가 던진 돌에 맞고, 자기가 한 말에 속고, 결국 자기의 신세를 망친다. 의인의 회중에 들어갈 수 없다.

잠언 26:1-16 읽기

미련한 자에게 영예는 설상가상이다. 미련한 자에게 저주가 미치는 것은 인과응보다. 그래서 미련한 자에게는 매가 필요하다. 매를 맞더라도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신다. 미련한 사람의 어리석은 말에 대꾸한다면 미련한 자가 된다. 미련한 자는 자기가 지혜로운 양 어리석은 말을 쏟아내니 미련한 자의 말에 토를 달지 말라고 하신다. 미련한 자에게는 소식을 전하는 일을 맡기지도 말라고 하신다. 소식에 무엇을 더하거나 뺄지 모르기 때문이다. 잘못된 소식은 다툼을 일으킬 수 있다. 미련한 사람은 지혜로운 체 말을 해도 아무런 능력이 없는 말이다.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불안을 조장하는 것과 같다. 미련한 사람의 말은 술주정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미련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백성에게 상처가 된다. 미련한 자는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 한다. 그러나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미련한 사람에게 더 희망이 있다. 교만이 미련보다 더 문제다. 

게으른 자는 환경에 핑계를 대며 일을 하지 않는다. 게으른 자는 침대에서 뒹굴기만 한다. 심지어 먹을 것이 있어도 먹는 것을 귀찮아한다. 그러면서도 게으른 사람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게으른 자보다 미련한 사람에게 더 희망이 있다.

//미련한 줄 알고, 매를 달게 맞아야 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그리고 연단이 소망을 이룬다. 미련한 자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 게으름 중의 게으름은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에 대한 게으름이다. 이 게으름을 교만이라고 하신다. 차라리 미련한 자에게 교만한 자보다 더 소망이 있다. 물론 매를 맞아서라도 미련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잠언 25:15-28 읽기

15 박해를 견디면 박해하는 자를 설득할 수 있다. 로마치하의 성도들이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말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다. 16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적당히 먹어야 한다. 과식하면 토해내야 한다. 17 친하다고 이웃 집에 함부로 드나들면 안된다. 이웃이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웃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한다. 18 거짓증언은 이웃을 죽일 수도 있다.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 19 힘들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어려울 때 진실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20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라. 21/22 원수가 배고하 하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마실 물을 주어라. 이렇게 하는 것이 원수로 수치를 느끼게 하는 것이며, 주님께서는 이렇게 하는 자에게 상을 주신다. 예수께서도 이 잠언의 구절에 있는 그대로 원수를 사랑하라고, 원수를 위해 축복하고 기도하라 가르치셨다. 원수 갚는 것을 주께 맡기라고 하신다. 선으로 악을 갚으라고 하신다. 23 다른 사람을 말로 헐뜯지 말아라. 24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넓은 집에서 사는 것보다 다락 한구석에서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 다툼을 피해야 한다. 25 먼 곳에서 오는 기쁜 소식은 목이 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냉수와 같다. 복음은 먼 곳, 곧 하늘에서부터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에게 생수로 부어진다. 26 (그런데 이세상에서는) 여전히 의인이 악인에게 무릎을 꿇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음의 생수를 마시길 주저한다. 27 대신 세상의 달콤한 것들을 지나치게 먹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꿀도 지나치면 몸에 좋지 않듯이, 세상 영광과 명예를 지나치게 구하는 것도 좋지 않다. 28 자기 기분을 자제하지 못하면 성이 무너지고 성벽이 파괴되는 것과 같다. 자기 기분을 따르지 말고 공동체를 위해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잠언 25:1-14 읽기

1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며,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다. //25장부터의 잠언을 언제 누가 말했고 누가 편집했는지 더 구체적으로 밝힌다.

2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다. //2절부터 막힌다. 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은 비밀스럽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스런 비밀을 들어내는 왕이 영화롭다’ 라는 의미는 아닐까? 그러니 왕이라면 숨겨진 하나님의 정의롭고 공의로운 뜻을 살펴, 백성에게 정의롭고 공의롭게 다스려야 한다. 성도라면 그리스도께서 드러내 하나님의 정의롭고 공의로운 뜻대로 이웃을 대해야 한다. 

3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 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 //세상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왕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왕에게 순종해야 한다. 성도라면 왕이신 주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4,5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거하라, 그리하면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도가니에서 찌꺼기를 제거한 은으로 제대로 된 그릇을 만들 수 있듯이, 악한 신하들을 제거해야 왕이 의로 다스릴 수 있다. 성도가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악을 제거 해야 한다. 악인과 함께 해서는 안된다. 

6,7 //교만하지 말고, 큰 자가 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주님이 성도의 왕이요, 성도는 서로간에 평등하다. 예수께서는 잔치집에서 상석에 앉지 말라고 하셨다. 

8 //성급히 판단하여 다투지 말라고 하신다. 나중에 일이 밝혀지면 오히려 욕을 볼 수 있다고 하신다. 잔치집에 상석에 앉았다가 더 높은 사람이 오면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 겸손한 사람은 성급히 판단하지 않는다. 다툼을 피한다.

9,10 //이웃과 다툴 때, 스스로만 변론하지 남에게 핑계를 대지 말라고 하신다. 남의 문제를 들춰내지 말라고 하신다. 다른 사람의 경우와 비교하지 말라고 하신다. 

11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라. 성도라면 성령께서 때를 따라 해야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알려주신다. 결국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12 //말을 많이하기보다 슬기로운 자의 책망에 청종해야 한다.

13 //충성된 일꾼은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14 //언행일치해야 한다.  

왕이 아니어도 성도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언행일치된 삶을 살아내야 한다. 왕이신 주님의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정의롭고 공의로운 뜻대로 이웃에게 행해야 한다.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 하라고 하신다.   

잠언 24:23-34 읽기

23 지혜로운 자들은 재판할 때 손이 안으로 굽지 않는다. 내로남불은 옳지 않다. 24 악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면 국민에게 심판을 받게 된다. 25 악인에게는 마땅한 벌을 내리는 것이 사람들에게서 기쁨을, 하나님 앞에서 복을 누리는 길이다. 26 바른말 해주는 것이 참된 우정이다. 27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 자기 집을 세우는 일보다 우선이라 말하는 듯.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반대되는 격언인가?) 밖에서 새는 바가지는 집안에서도 쓸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결국 순서가 없다. 28 이웃에게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 29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보복하지 말라고 하신다. 30-32 게으른자,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은 포도나무 대신 가시덤불과 잡초들로 무성하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헛된 이론으로 도배되어 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사람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33-34 좀더 자자, 졸자, 눕자고 하면 빈궁이 강도 같이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른다. //게으르면 가난해 진다? 앞에서도 게으름과 가난에 대하여 짧게 묵상했지만 게으르면 물질적으로 가난해 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잠언이 결코 아니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으니 천국이 가난한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가난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가난이 복이 아니라 저주라면 예수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실 수 없다. 세상가치로 읽으면 ‘게으르면 가난해 진다’가 진리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서 게으름 대신 부지런함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게으름 대신 탐욕을, 부지런함 대신 일확천금을 꿈꾼다. 부지런함 대신 이웃을 속인다. 게으른자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30-32에서 잠언 편집자는 게으른 자의 영혼이 가시덤불과 잡초로 뒤덮여 있다고 묘사한다. 잠언에서 말하는 부지런함은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한 열심이라기 보다는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열심이요(27절), 하나님을 알아가는 열심이다. 하나님을 알아 가는데 게으르면 하나님을 알아 가는데 가난해 진다. 물질적 가난보다 더 심각한 가난, 곧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에, 곧 세상 조류에 휩쓸리게 된다. 게으른 사람은 세상의 바다에 익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