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0:12-31 읽기

12-17 만군의 주가 누군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바닷물을 손바닥을 떠서 헤아릴 수 있는 분, 뼘으로 하늘을 재어 볼 수 있는 분, 온 땅의 티끌을 되로 되어 보신 분, 산들을 어깨 저울로 달아 보신 분, 언덕들을 손저울로 달아 보실 수 있는 분이시다. 아무도 주님의 영을 헤아릴 수 없으며, 주님의 조언자가 되거나, 주님을 가르칠 사람이 없다고 선언한다. 심지어 주님은 의논할 사람도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주님을 깨우쳐 드리며, 공평의 도리를 가르치려 하고, 지식을, 처세술을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반문한다. 주님께는 뭇나라가 한 방울의 물, 저울 위의 티끌에 불과하다. 섬들도 먼지처럼 가볍게 들어 올리시는 분이시다. 레바논의 산림도 제단의 장작으로 충분하지 않고 짐승들도 번제물로 드리기에 충분하지 않다. 모든 민족도 주님과 비교될 수 없으니, 사람은 무시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18-26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어떤 형상에 비교할 수 있을까? 대장장이가 부어 만들고 도금장이가 금으로 입히고 은사슬을 만들어 걸친 우상에 비교할까? 금과 은이 없는 사람은 썩지 않는 나무를 골라서 우상을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조된 우상이 아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통치자들을 허수아비로 쓸모 없는 사람으로 만드시는 분이시다.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입김으로도 말려 버리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선포한다.

27-31 이사야는 이스라엘에게 왜 하나님께 불평 불만을 토로하느냐고 묻는다.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피곤치 않으시며 지칠줄 모르시고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라고 선언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말한다. 젊은이도 피곤하고 지치고, 장정들도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힘을 얻는다.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 오르듯 올라갈 것이며,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한다.

//어제는 임마누엘이 복음이요 영생이라고 적용했다. 오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어떤분인지 소개한다. 한마디로 차원이 다른 분이시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임마누엘로만 알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곤치 않으시고 지칠줄 모르시고 그 지혜가 무궁하시기 때문에,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만이, 곧 임마누엘을 누리는 사람만이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 오르듯 올라가며, 지치지 않으며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서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습니까? 누가 그분을 가르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쓴다. 그렇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임마누엘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는 삶으로만 임마누엘(복음)을 선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