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2:1-25 읽기

1-4 나의 종을 보아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나의 종이 누군가? 하나님이 붙들어 주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쏘울메이트 (soulmate) 라고 하신다. 하나님과 영혼을 주고 받는 사이라서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라고 하신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가장 큰 속성은 공의다.) 하나님의 종은 목소리를 크게 할 필요하 없는 사람이다. 거리를 떠들썩하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푼다. 하나님의 종은 쇠하지 않으며, 낙담하지 않으며, 끝내 세상에 공의를 세울 것이다. 먼 나라에서도 (하나님의 종이) 진리로 공의를 베푸는 것을 배우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과 ‘영혼의 친구’다. 하나님과 종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공의’다. 

5-9 하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생명의 주시다. 창조주,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이 ‘의’ (공의)를 주려고 하나님의 종을 불렀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을 붙들어 주시고, 지켜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의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이끌어 내고, 어두운 영창에 갇힌 이를 풀어줄 것이다. 하나님은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주재시다. 하나님은 마땅히 받으실 찬양을 헛된 우상들에게 양보하지 않으신다. 우상들은 사람 손으로 만든 헛것이라 장래일도 과거일도 말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예언하시는 분이시다. 새로 일어날 일들을 일러주시는 분이시다.

10-13 (이사야는) 새노래로 주님을 찬송하라고 명령한다. 땅 끝에서부터, 인생의 항로에서, 바다 속에 사는 피조물도, 나라들과 백성들 모두에게 주님을 찬송하라고 명령한다. 광야에 있는 성읍에서, 부락에서 소리 높여 기쁜 노래를 부르라고 명한다. 산꼭대기에서 큰 소리로 주님께 영광 돌리라고.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모든 나라에 울려 퍼지게 하라고 명령한다. 주님은 대장으로 모든 대적을 물리치신다. 

14-16 주님께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마라톤을 달려온 사람처럼,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모든 산들을 황폐하게 하고 초목들을 시들게 하며 강과 호수를 사막으로 만들겠다고 포효하실 것이다. 눈 먼 하나님의 백성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삶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암흑을 광명으로, 거친 곳을 평탄한 곳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신다. 

17-21사람 손으로 만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크게 수치를 당하고 물러갈 것이다. 우상처럼 귀가 먹은 사람들에게 우상처럼 눈이 먼 자들에게 들으라고 보라고 명령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눈이 멀었다고 귀가 먹었다고 지적하신다. 주님은 이런 백성을 구원하시길 원하신다. 주님은 눈이 멀고 귀가 먹은 백성을 구원하셔서 의를 이루려고 힘쓰신다. 주님이 율법과 교훈을 주시고 백성이 율법과 교훈을 존중하길 (지키길) 바라시는 이유다.

22-25 주님의 백성은 지금 약탈과 노략을 당해 감옥에 갇힌 신세다. 그러나 구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신다. 주님의 백성들이 약탈과 노략을 당하고 감옥에 갇힐 것이라고 경고해 주셨는데, 아무도 이 일에 귀를 기울이거나 주의하여 듣지 않았다고 반문하신다. 그래서 주님이 백성이 노략을 당하게  버려두었다고, 약탈 당하게 두었다고 말씀하신다. 이사야는 우리가 (주님의 백성이)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주의 백성이 주님의 길로 걸으려 하지 않았고, 주님의 법을 순종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주님께서 불타는 진노와 전쟁의 참혹함을 이스라엘 위에 쏟으셨다고 밝힌다. 이스라엘은 사면초가였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했고 깨닫지도 못했다.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의 종’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중의적이다. 1-9절에서는 분명히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10절 이하에서는 다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공의’를 베푸는 민족으로 택하셨지만, 공의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스라엘은 결국 눈이 멀고 귀가 먹어 하나님의 율법과 교훈을 저버리고 약탈과 노략을 당해 오히려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고 이사야는 노래한다. 본문이 길고 어렵지만, 하나님은 눈이 멀고 귀가 먹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셔서 의를 이루시길 원하신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택한 이스라엘은 눈이 멀고 귀가 먹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에 실패했지만,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어버지 하나님이 바라는 ‘공의’를 베풀도록 성도를 택하시고 구원하신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눈이 멀고 귀가 먹으면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의’를 베푸는 삶이야 말로 암흑에서 광명으로 거친 광야에 평탄한 길을 내는 삶이다. 임마누엘이다. 

이사야 41:21-29 읽기

21-24 주님께서 세상 민족들의 신에게 소송을 제기하여 보라고 말씀하신다. 세상 신들이 사람이 만든 우상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 보라고 말씀하신다. 우상이 피조된 신이 아니라면 장래일을 말해보라고, 아니 예언을 못한다면 과거에 무엇을 행했는지 말해보라고 조롱하신다. 장차 올 일들을 말할 수 있어야 신으로 인정하겠다고 하신다. 복이든 화든 내리면 신으로 인정하고 놀라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 신들은 아무것도 아니며, 헛것(우상)이며, 우상을 섬기고 우상에게 예배하는 자도 혐오스러울 뿐이라고 평가하신다.

25-29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북쪽에서 한 사람을 일으켜 오게 하였다. 나의 이름을 부르는 그 사람을 동쪽에서 오게 하였다. 그가 와서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아 이기듯, 세상 통치자들을 진흙처럼 밟을 것이다. 너희 우상들 가운데서 어떤 우상이 이런 일을 일러주었느냐? 우상이 일러준 말에 옳다고 한 일이 있느냐? 일러준 자도 없고 들려준 자도 없었다. 우리는 우상의 말을 들어본 일이 전혀 없다. 나 주가 비로소 처음부터 시온에게 말하였다. 내가 기쁜 소식을 전할 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냈다. 말을 하는 우상은 하나도 없다. 어떤 우상도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 모든 우상은 쓸모가 없다. 우상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모든 우상은 피조되었으며 바람일 뿐이요 헛것일 뿐이다.]

//우상은 사람들이 못으로 고정시켜야 하는 기우뚱 거리는 존재다. 주님께서 조롱하시듯 장래일도 과거일도 말을 못하는 벙어리다. 오직 만군의 주 하나님만이 북쪽에서 세상 정복자를 일으키시고, 동쪽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오게 하시는 분이시다. 시온에서 하나님의 법을,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는 분이시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벙어리 우상들과 구별된다. 임마누엘은 예수의 말씀이 성도 안에 거하는 것이다. 주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벙어리로, 우상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자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를 지혜롭다 하신다. 임마누엘이요 영생이다.  

이사야 41:1-20 읽기

1 만군의 주 하나님은 나라들과 백성의 재판관이시다. 2-4 세상의 정복자를 일으키신 분도, 정복자에게 승리를 허락하신 분도,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시는 분도 만군의 주 하나님이 자신이라고 소개한다.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세상 끝 날에도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5-7섬들, 곧 세상 나라들은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두려워한다. 땅 끝에 있는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두려움에 사람들이 함께 모여 손 발을 맞추고 서로 힘을 내라고 격려해 보지만 기우뚱 거리는 우상을 못을 박아서 고정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8-9 그러나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 하나님이 택한 민족, 하나님이 친구라고 부른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두려움에 우상을 세울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러 백성을 삼고 버리지 않았다고 선언하시기 때문이다. 10-13 하나님께서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니 떨지 말라고 위로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을 강하게 하고 도와주고 이기도록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스라엘에게 화를 낸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고, 이스라엘과 다투는 자들은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더이상 대적하는 자들이 없을 것이라고, 혹여 덤비는 자들이 있어도 아무것도 아닌, 허무한 것 같은 자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붙잡고 계신다. 그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 하나님이 돕겠다고 약속하신다. 14-16 솔직히 이스라엘 백성은 만군의 주 하나님 앞에서 벌레만도 못한 존재다. 그런대도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거룩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해내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교만한 것들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흩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주와 더불어 기뻐하고, 거룩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17-20 가련하고 빈궁한 사람들이 물을 찾지 못하여 갈증에 혀가 탈 때,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그들을 버리지 않겠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백성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고 골짜기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신다. 광야를 연못으로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드시겠다고 하신다. 광야에 각종 나무를 심겠다고 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님께서 몸소 이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하신 이 모든 일을 알라고 하신다.

//섭리! 역사의 주관자는 창조주 하나님이다. 임마누엘만이 복음이요 영생인 이유다. 세상 정복자들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정복도 하고 패망 당한다. 가련한고 빈궁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도움(구원)을 받는다. 따라서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람의 손으로 만든 (기우뚱 거리는) 우상에 의지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신다. 세상 역사와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이 어떤분이신지 알아가라고 교훈한다. 교만한 자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흩어질 것이고,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만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임마누엘!

이사야 40:12-31 읽기

12-17 만군의 주가 누군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바닷물을 손바닥을 떠서 헤아릴 수 있는 분, 뼘으로 하늘을 재어 볼 수 있는 분, 온 땅의 티끌을 되로 되어 보신 분, 산들을 어깨 저울로 달아 보신 분, 언덕들을 손저울로 달아 보실 수 있는 분이시다. 아무도 주님의 영을 헤아릴 수 없으며, 주님의 조언자가 되거나, 주님을 가르칠 사람이 없다고 선언한다. 심지어 주님은 의논할 사람도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주님을 깨우쳐 드리며, 공평의 도리를 가르치려 하고, 지식을, 처세술을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반문한다. 주님께는 뭇나라가 한 방울의 물, 저울 위의 티끌에 불과하다. 섬들도 먼지처럼 가볍게 들어 올리시는 분이시다. 레바논의 산림도 제단의 장작으로 충분하지 않고 짐승들도 번제물로 드리기에 충분하지 않다. 모든 민족도 주님과 비교될 수 없으니, 사람은 무시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18-26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어떤 형상에 비교할 수 있을까? 대장장이가 부어 만들고 도금장이가 금으로 입히고 은사슬을 만들어 걸친 우상에 비교할까? 금과 은이 없는 사람은 썩지 않는 나무를 골라서 우상을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조된 우상이 아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통치자들을 허수아비로 쓸모 없는 사람으로 만드시는 분이시다.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입김으로도 말려 버리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선포한다.

27-31 이사야는 이스라엘에게 왜 하나님께 불평 불만을 토로하느냐고 묻는다.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피곤치 않으시며 지칠줄 모르시고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라고 선언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말한다. 젊은이도 피곤하고 지치고, 장정들도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힘을 얻는다.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 오르듯 올라갈 것이며,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한다.

//어제는 임마누엘이 복음이요 영생이라고 적용했다. 오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어떤분인지 소개한다. 한마디로 차원이 다른 분이시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임마누엘로만 알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곤치 않으시고 지칠줄 모르시고 그 지혜가 무궁하시기 때문에,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만이, 곧 임마누엘을 누리는 사람만이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 오르듯 올라가며, 지치지 않으며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서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습니까? 누가 그분을 가르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쓴다. 그렇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임마누엘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는 삶으로만 임마누엘(복음)을 선포할 수 있다. 

이사야 40:1-11 읽기

1-2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하고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주민에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죄에 대한 형벌 받고, 그것도 죄에 비하여 갑절의 벌을 주님께 받고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났다고 선언한다. 3-8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 길을 곧게 내어라” 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을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한 소리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주님께서 그 위에 입김을 부시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그렇다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있다.” 하고 외치라고 명한다. 9-11 좋은 소식을 전하는 시온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에게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목소리를 힘껏 높여 자신있게 “여기에 너희의 하나님이 계신다” 하고 자신있게 외치라고 명령한다.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오신다.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권세를 잡고 친히 다스릴 것이다.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주실 상급을 가지고 오신다. 백성에게 주실 보상을 가지고 오신다. 만군의 주께서 목자와 같이 그의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들을 팔로 모으시고, 품에 안으시며, 젖을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죄에 대한 벌은 달게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죄값보다 갑절의 벌이라고 하여도 영원하지 않다. 벌 중의 벌은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음, 곧 하나님의 부재다. 그래서 복역기간이 끝난 백성에게 하나님을 다시 모실 길을 닦으라고 명령한다. 야고보가 말한 안개 같은 인생을, 이사야는 마르고 시들 풀과 꽃 같은 인생이라고 노래한다. 인생은 하나님의 약속, 곧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영원하다는 것을 노래한다. ‘임마누엘’ 만 영원하다는 것이 좋은 소식, 곧 복음이라고 선포한다. 성도가 자신있게 선포해야 할 것은 오직 “여기에 너희의 하나님이 계신다” 라는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는 삶으로만 선포할 수 있다.한편으로 순종하는 자가 누리는 상급/보상도 임마누엘이다. 영원한 임마누엘이 곧 영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