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3:1-12 읽기

1-5a 야고보는 믿음의 가족들에게 가르치려는 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야고보와 같이 가르치는 자로 부름을 받은 사도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믿음의 가족들, 심지어 가르치는 사도라고 해도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특별히 말로 실수를 한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이다. 마부들은 말을 부리기 위해 말 입에 재갈을 물리고 말을 끌고 다닌다. 사공은 배의 크기와 동력에 상관 없이 작은 키로 방향을 조종한다. 이와 같이, 혀도 몸의 작은 지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질 하는데 사용된다.

5b-12 산불도 아주 작은 불씨에서 시작하여 큰 숲을 태운다. 혀도 작은 불씨와 같다. 우리 몸의 작은 지체에 불과하지만 온 몸을 더럽힌다. 인생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지옥불에 타버린다. 사람은 어떤 종류의 생물이든지 길들일 수 있다. 그러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혀는 겉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이 혀로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한다. 같은 입으로 찬양도 하고 저주도 한다. 그러나 믿음의 형제자매라면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샘이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낼 수 없듯이, 무화과나무가 올리브를,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을 맺을 수 없듯이, 짠 샘은 단 물을 낼 수 없듯이, 믿음의 형제자매라면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된다.

//믿음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언어생활이다. 특별히 선생의 경우 언행일치가 더욱더 중요하다. 잠언도, 야고보 사도도 말 한마디가 이웃을 살리기도 죽일수도 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성도는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거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우쳐 주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그래야 말과 혀로만이 아닌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이 따르는 믿음을 드러낼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입의 재갈이 되야하고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 내 삶을 조종하는 키가 되어야 한다.

야고보서 2:14-26 읽기

14-17 야고보는 형제자매에게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도전한다. 행함이 없는 그런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야고보는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그 형제나 자매에게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하고 말만하고 필요한 것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비유를 든다. 이와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선언한다.

18-20 어떤 사람은 “당신에게 있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보여주면, 자신은 행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보여주겠다” 하고 말할 것이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귀신들도 한 분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 한다. (귀신들과 같이) 행함이 (순종이)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리석은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21-23 야고보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믿음이 행함과 함께 작용을 했다고 이해한다.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믿음의 순종을) 아브라함의 의로움으로 여기셨다”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고,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24-26 이렇듯 사람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행함으로만 되는 것도 아니다.) 야고보는 창녀 라합의 예도 든다. 라합이 정탐꾼들을 접대하고, 숨겨주고, 다른 길로 돌아가도록 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선언한다.

//야고보는 행함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곧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산 믿음, 곧 행함이 따르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아브라함과 라합의 예까지 들면서 강조한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지만,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신(믿음)은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믿음의 증거다. 믿냐 믿지 않느냐의 고백이 아니라 믿는 대로 순종하느냐 아니면 믿고도 불순종 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야고보는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는가? 믿는다고, 확신한다고, 신뢰한다는 말은 불충분하다. 믿는다면, 확신한다면, 신뢰한다면 그에 합당한 순종(행함)이 드러나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지혜로운 (영생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한편으로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리석은 (죽은) 사람이다.

야고보서 2:1-13 읽기

1-4 형제자매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지 마십시오. 옷차림으로 차별하지 마십시오. 화려한 옷을 입고 금반지를 끼고 들어오는 사람은 환영하고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들은 들어오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을 차별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차별이 곧 나쁜 생각이라고 가르친다. 특별히 외모로 차별하지 말라고 하신다.

5-9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라면,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도 믿음에 부요한 형제자매, 곧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시고, 가난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다는 것을, 가난한 자도 하나님나라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 된 성도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면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 된 성도들을 압제하는 사람들은 부자들이요, 형제자매 된 성도들을 법정에 고발하는 자들도 부자들이요, 더군다나 존귀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들도 부자들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따라서 외모와 상관없이 (가난하든 부하든) 성경말씀에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최고의 법을 지키라고 권고한다. 만일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성경말씀에서 규정한 최고 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차별은 나쁜 생각이요, 곧 죄를 짓는 것이다. 특별히 빈부로 차별하지 말라고 하신다.

10-13 성경말씀을 조목조목 지키다가도 한 조목에서라도 실수하면 말씀 전체를 범한 셈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간음도 살인도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어떤 사람이 간음은 하지 않았어도 살인을 하면 결국 그 사람은 성경 말씀을 어긴 것이 된다.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된 성도는, 성도를 자유케 하는 진리의 말씀을 따라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하고 행동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믿음 안에서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친다. 예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보기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자비를 (긍휼을) 베풀지 않은 사람에게 심판은 무자비하게 임한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심판 대신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하나님이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차별없이 자비하라고, 곧 긍휼을 베풀라고 하신다.

야고보서 1:19-27 읽기

19-2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야고보는 수신자들을 끊임없이 믿음의 가족으로 대한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하고 노하기도 더디하십니오. 노하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주신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22-25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된다고 경고한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거울을 보고 씻을 곳이 어딘지 알면서도, 씻을 곳이 어떠한지를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야고보는 말씀을 성도들이 지켜야 할 법에 비유한다. 성도라면 말씀을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행한대로 복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26-27 야고보는 말씀이 가르치는 것이 경건이라고 소개한다. 경건하다고 말로만 떠벌리는 신앙(경건)은 헛되다고 경고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경건/신앙의 구체적인 예를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는 것이라고 한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은 추상적 명령이지만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들을 돌보는 것은 훨씬 구체적이다. 

//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에게, 믿음의 가족에게 경건한 삶을 요구한다. 경건한 삶은 세상 사람들과 달리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다.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일상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이 최고의 경건이라고 교훈한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야고보서 1:12-18 읽기

12-15 믿음의 시련(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이 복이 있다. 복은 참됨을 인정받아,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것이다. 생명의 면류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복이 현세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그렇다고 믿음의 시련(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께 시험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믿음의 시련(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자기 욕심에 이끌려서 꾐에 빠져 당하기 때문이다. 욕심때문에 죄를 짓고, 죄를 짓다보면 죽음, 곧 영벌을 받게 된다. //약속에 따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욕심을 버리라고 하신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다. (시험이란 결국 하나님 대신 사랑하는 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박해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16-18 야고보는 수신자들을 사랑하는 형제자매라고 부른다. 형제자매들에게 믿음의 시련(시험)이 하나님께 시험을 당하는 것이라는 말에 속지 말라고 경고한다. 유혹(시험)은 하나님께 속한 속성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대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시험하시지 않고,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를 주시는 분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소개한다. 생명의 면류관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신다는 약속은 변함 없다고 편지한다. 아버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성도를 낳아주셨다. 성도가 형제자매 된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의 시련(시험)을 견디는 사람이 (이미) 복이 있다. 야고보는 성도를 피조물 가운데 생명의 면류관을 받은(을) 첫 열매라고 선언한다.

//가난하든 부하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형제자매가 되어 믿음의 시련(시험)을 견디어 내는 성도가 복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자기 욕심에 이끌리지 않고 진리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 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