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16-29 읽기

16-18 (베데스다 38년 병자는 예수께서 침낭을 들고 가라고 해서 일어나 걸었다고 사람들에게 말을 했다.) 유대 사람들은 그가 병이 나았다는 것에 주목하지 않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낫게 했다는 이유로 예수를 박해하였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 하고 말씀하셨다. 유대 사람들은 이 말씀 때문에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아버비라고 불러,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으셨기 때문이었다.

19-29 예수께서 유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대로 따라할 뿐이다. 아무것도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아들도 그대로 한다. 아버지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자기가 하시는 일을 모두 보여주신다. 더 큰 일들도 아들에게 보여주셔서, (아버지가 내게 보여주신 일들을 내가 행함으로)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사람을 일으켜 살리시니,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을 살린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셨다. 따라서 사람들은 아버지를 공경하듯, 아들도 공경해야 한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말한다. 죽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살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는 것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셔서, 아들 속에도 생명이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또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 그것은 아들이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놀라지 말아라. 무덤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 예수께서는 부활이라는 단어를 영광의 자리뿐만 아니라 심판의 자리와도 연관시킨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후에는 심판이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심판을 받지 않지만,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 이 심판에서 무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 선한 일을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선한 일이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곧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할 때다. 그래야 산다.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사람들을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하신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이미 거듭났다. 이미 부활에 참여했다. //예수께서 진실로 진실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삼위 하나님을 공경하는 길이다. 부활에 참여하는 길이다.

요한복음 5:1-15 읽기

1-4 (유월절? 명절이 다시 왔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의 문’곁에 ‘베드자다(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고, 연못 주변에 정자가 다섯개 있었다. 정자마다 많은 환자들, 곧 눈먼 사람들, 다리 저는 사람들, 중풍병자들이 누워있었다.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님의 천사가 때때로 연못에 내려와 물을 휘저어 놓는데, 물이 움직인 뒤에 맨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에 결렸든지 나았기 때문이었다.

5-9a 정자에 누워있는 병자 중에 서른 여덟해 동안 병자된 사람이 있었다. 예수께서 누워있는 그를 보시고 그가 이미 오랜 세월 정자에 누워있는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 그에게 ‘낫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 병자는 ‘주님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들어서 못에다가 넣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동안에 남들이 먼저 못에 들어 갑니다.’ 하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그 병자에게 ‘일어나서 침낭을 걷어가지고 걸어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그 즉시 나아서, 침낭을 걷어 가지고 걸어갔다.

9b -15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유대 사람들은 병이 나은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니 침낭을 들고 가는 것은 옳지 않소’ 하고 말했다. 그 사람은 ‘나를 낫게 해주신 분이 침낭을 걷어 가지고 걸어가라고 하셨소’ 하고 대답했다. 유대 사람들이 ‘그 사람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병이 나은 사람은 자기를 고쳐주신 분이 누구인지 몰랐다. 예수께서 이미 유월절로 사람들이 붐비는 가운데 그곳을 빠져나가셨다. 그러나 그 뒤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나 ‘보아라, 네가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그리하여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저자 요한이 기록한 표징은 모두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 천사보다 더 뛰어나신 성자 예수께서는 베데스다 연못을 하루에도 몇 번 씩 휘저으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정자에서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경쟁시키지 않으셨다. 대신 가장 오랫동안 누워있었던 병자를 말씀으로 낫게 해주셨다. 가장 나중 된 자를 먼저 된 자로 삼으셨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던 병자를 도우셨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란 뜻을 갖고 있는데, 자비를 얻기 위해서는 경쟁을 물리치고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야 한다. 경쟁은 공평해 보이는 방법이지만, 실상은 불공평이다. 의지할 사람이 없는 병자는 38년을 기다려도 자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의지할 사람이 있어도 일등은 언제나 한 명이다. 저자 요한은 출발선에 적어도 5명은 서있다고 기록한다. (길다란 정자가 5개나 있었다.) 2선 3선에서도 틈을 노려 출발하려는 자도 많았다. 예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뒷쪽으로 밀린 병자를 구해내셨다. 그렇다고 베데스다 연못에 풍덩 던져 넣으신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고 병자는 순종했다. //베데스다 연못에 물이 동한 후 가장 먼저 뛰어 든 병자는 과연 나음을 입었을까? 병자들은 다른 병자에게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오직 자신이 먼저 뛰어들어야 했다. 물이 동한 후 뛰어 들었는데도 병이 낫지 않으면 저쪽 어딘가에서 자기보다 먼저 뛰어든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체념하고 말았을 것이다. 병이 나은 사람이 정말 있었는지 궁금하다.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믿음이 자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유대 사람들처럼 안식일 논쟁을 벌이는 사람이 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생명(영생)이라면,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무리 가깝다하여도 여전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고침을 받았으면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다. 죄를 지으면 더 나쁜 일이 생긴다고 하신다. 병자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지만, 죄인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없다.) 예수께서 죄인들 가운데 오신 이유다.  

요한복음 4:43-54 읽기

43-45 이틀 뒤에 (수가성에서 이틀 더 머무신 후에)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가셨다. 예수께서는 고향 갈릴리에서는 예언자로 존경을 받지 못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갈릴리에 도착하시니, 이번에는 갈릴리 사람들도 예수를 환영했다. 그들도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46-54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갈릴리 가나를 다시 방문하셨다. 예수께서 가나에 계시다는 소문에, 가버나움에 사는 왕의 신하 한 사람이 예수를 찾아왔다. 그의 아들이 죽을 열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신하) 제발 가버나움으로 내려오셔서 제 아들을 고쳐주십시오. 제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 너희는 표징이나 기이한 일들을 보지 않고는 믿으려고 하지 않는구나.

신하) 선생님,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와 주십시오.

예수) 돌아가거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

그 신하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그가 내려가는 도중, 그 신하의 종들이 마중나와 그 아이가 살았다고 보고했다.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은 때를 물어보니, 그 신하는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각에 열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와 그의 온 집안이 함께 예수를 믿었다.

//말씀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은 수가성 사마리아 사람들과 달리 유대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 곧 표징과 기이한 일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정작 ‘그리스도’이신 예수께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이에 저자 요한은 예수의 두번째 표징으로 가버나움에 사는 왕의 신하의 열병 걸린 아들을 살리시는 기사를 기록한다. 예수께서는 아들을 살려 달라는 신하에게 먼저 표징과 기이한 일을 구하는 세태(너희)에 대해 한탄하신다. 그 신하가 재차 간청하자, “돌아가거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신하는 예수의 말씀을 (표징없이도) 믿고 가버나움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가버나움으로 가는 도중에 종들을 만나 예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와 그의 온 집안에 함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다. //가나 혼인 잔치의 표징으로 제자들이 예수를 믿었다. 제자들은 물이 포두주로 변한 표징 자체가 아니라, 예수의 말씀을 하인들이 순종했을 때 성취된 것을 보고 믿었다. 오늘은 더 이상의 표징이나 기이한 일을 구하지 않고, 예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간 신하와 신하의 온 집안이 함께 예수를 믿었다. 신하 역시 말씀이 성취된 것을 경험했다. 순종해야 말씀이 성취됨을 경험할 수 있다. //어제에 이어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신다. 이것이 성도가 먹을 양식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믿음이다. 생명(영생)이다. 순종은 하인들에게나 신하(주권자)들에게나 구분이(예외가) 없다. 고향사람 이방사람도 차별하지 않는다. 명하신 대로 행해야 한다. 

요한복음 4:27-42 읽기

27-30 제자들이 돌아왔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렇다고 제자들중 어느 누구도 예수께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하십니까 하고 감히 묻지 못했다.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자신의 삶을 모두 알고 있는 분이 계시니 와서 보십시오 하고 말했다. 그 여자는 이분이야 말로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하고 말했다. 사람들은 동네에서 나와서 예수께로 갔다.

31-38 사마리아 여자가 마을로 돌아간 사이, 제자들은 예수께 가져온 음식을 드렸다.

제자들) 선생님 잡수십시오

에수)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

(제자들은 누가 음식을 드렸을까? 하고 서로 말했다.)

예수) 나의 양식은 아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눈을 들어서 밭을 보아라. 이미 곡식이 익어서 거둘 때가 되었다. 추수하는 사람은 품삯을 받으며,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거둔다. 그러면 씨뿌리는 사람과 추수하는 사람이 함께 기뻐할 것이다. 심는 사람이 있으면 거두는 사람이 있다. 나는 너희를 보내서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게 하였다. 수고는 남들이 하는데, 너희는 그들의 수고한 결실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39-42 수가성에서 많은 사마리아 사람이, 그 사마리아 여자의 증언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시기를 청했고, 예수께서는 이틀동안 거기에 머무셨다. 이틀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서 믿게 되었다. 그들은 그 여자에게 우리가 믿는 것은 당신의 증언 때문만은 아니고, 예수의 말씀을 직접 들었보니, 예수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메시야)이심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수의 양식은 먹는 육의 양식도, 그렇다고 먹는 영의 양식도 아니었다. 순종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그냥 아버지의 말씀이 양식이라고 하시지 않고, (예수께서는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고 말씀 하셨다. 그냥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행하는 것이 양식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양식이라고 하신다. 내가 받아 누리는 것이 양식이 아니라,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 누리게 하는 것이 양식이라고 하신다. 영적으로 갈급한가? 말씀에 순종하라. 듣기만 하면 죽은 삶이요, 순종하는 것이 생명 있는 삶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의 구체적 예로 추수를 말씀하신다. 육적 추수는 넉달이나 남았지만, 영적 추수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씨를 뿌리셨으니, 제자들에게 거두라고 하신다. 제자들은 씨뿌리는 수고를 하지 않았지만 그 결실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게 된다. //사마리아 여자는 동네로 들어가 ‘와서 보아라’ 하고 예수를 증언했다. 수가성 사람들은 처음에는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를 믿었다. (이 여자는 사람들을 피해 우물가로 나와야 할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들은 예수를 초대해서 이틀 더 예수의 말씀을 들었다 (씨가 뿌려졌다). 결국 더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구주(메시야)로 믿었다 (추수되었다). (수가성은 추수터가 되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상종해서는 안될 사람과도 말씀에 순종해서 대화를 시작하라고 하신다.

요한복음 4:15-26 읽기

여자) 선생님, 그 물을 나에게 주십시오. 내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도 않게 해주십시오.

예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너라

여자) 나에게는 남편이 없습니다. 

예수) 남편이 없다고 한 말이 옳다.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바로 말했다.

여자) 선생님, 내가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십니다. 우리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아버지 하나님을 이 산이나 혹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장소를 따지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 우리 유대 사람은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 구원은 유대 사람들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여자) 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야가 오실 것을 압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예수)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 메시야(그리스도)다.

//여자는 생수를 간구했는데 예수께서 느닷없이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남편이란 무엇인가? 사마리아 여인이 의지하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결국 믿음이라고 의역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사마리아 여인은 의지하던 것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은 더이상 의지할 바가 아니고, 지금 의탁하고 있는 것(주인) 역시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문자 그대로 남편이라고 해도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의 삶에 관해 소설을 쓰지 말자)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내 말을 믿어라’ 하고 말씀하신다. 사마리아 여자가 의지하고 믿어야 할 분은 오직 예수(의 말씀) 밖에 없다고 선언하신다. //여자는 누구를(무엇을) 믿느냐 보다 어디서 예배하느냐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믿느냐, 아는 분을 믿느냐고 (아니 믿는 분을 아느냐고) 물으신다. 믿음의 대상을 알아야 한다.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한다는 것은 아버지를 알고 예배한다는 뜻이다. 영과 진리가 아버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영과 진리는, 보혜사 성령과 말씀이다.) 그리고 영과 진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놀랍게도 사마리아 여자는 그리스도, 곧 메시야가 온다는 것을 알고(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알려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수께서 돌고 돌아 온 대화를 마무리 하신다. “내가 그다.” 예수가 메시야(그리스도)다. 인생은 돌고 돌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느냐(믿느냐) 아니냐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