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요 강도다.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양들의 목자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준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이끌고 나간다. 자기 양들을 다 불러낸 목자는 양들 앞서서 가고 양들은 목자를 따라간다.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들은 결코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서 달아날 것이다. 양들이 낯선 사람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지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가 무슨 뜻으로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지 깨닫지 못했다.
7-18 예수께서 비유를 해석하신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말한다.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다 도둑이고 강도다. 그래서 양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그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 도둑은 양을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러 온다. 나는 양들이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려고 왔다.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다. 양들이 자기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를 흩어버린다. 삯꾼은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떼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19-21 예수의 말씀을 들은 유대 사람들 가운데 다시 분열이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귀신이 들려서 미쳤으니 예수의 말을 듣지 말라고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의 말이 귀신이 들린 사람의 말이 아니다. 귀신이 어떻게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겠느냐며 (예수를) 옹호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고 고난받는 메시야를 노래했다. 예수께서는 양들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 이유를 (선한) 목자가 없는 양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마9:36) 그래서 친히 어린 양으로 세상오셔서 (아직 목자의 음성을 알기전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목자의 음성 밖에 모른다고 해야 하나) 목자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을 알고 순종하는 본을 보이시고, 우리들에게는 목숨을 기꺼이 버리시기까지 선한 목자가 되어주셨다. 우리에게는 선한 목자의 음성인 말씀이 있다. //예수께서는 삯꾼들이 돌보는? 양까지 이끌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들도 선한 목자의 돌봄을 받아 한 무리 양떼가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된다고 선언하신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사는 성도도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한 무리 양떼, 곧 하나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간다.(요1 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