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시인은 이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다. 시인이 확신을 잃고 믿음을 버릴 뻔한 이유는
시인이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시인이 보기에 악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오히려 몸은 멀쩡하고 윤기가 흐르기 때문이다. 시인이 보기에 그들은 고통이 없는 것 같다. 재앙도 그들에게는 남의 얘기다. 그들은 오만하며, 폭력적이다. 그들은 똥배가 나왔으며, 거만하게 눈을 치켜 뜨고 다니며, 마음에는 헛된 상상이 가득하며, 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 찬 말을 하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 하기를 즐긴다. 하나님을 비방하고 사람들도 저주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도 악인에게 유혹되어, 악인들을 따라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 있으랴?” 하고 가장 높으신 분을 비하한다. 그런데도 악인들의 신세는 언제나 편하고 그들의 재산은 늘어가니, 시인은 깨끗한 마음으로 살고,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삶이 헛되었다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시인이 깨끗한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 온종일 시인을 떠나지 않았다. 행실을 깨끗하게 살기 위해 시인은 아침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다짐했다, 악인처럼 살아야지 하고 주님의 자녀들을 배신하지 않았다.
시인은 악인의 형통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풀지 못한 숙제로 남겨야 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다. 그런데 오히려 악인이 형통한 세상이니, 시인이 그들을 부러워하여 믿음을 버릴 뻔 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믿음을 붙잡고 주의 말씀으로 마음과 행실을 깨끗하게 한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한다. 주의 말씀을 채찍삼아 하루를 시작하고 주의 말씀을 위로삼아 하루를 정리한다. 이런 시인은 의인의 회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 악인의 형통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숙제로 남아있지만, 하나님과 함께 함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