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24-41 읽기

24-34 바리새파 사람들은 눈뜬 사람을 다시 불러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라. 우리가 알기로 그 사람은 (예수는) 죄인이다” 하고 말했다. 눈뜬 사람은 “나는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 한가지는, 내가 눈이 멀었는데,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들은 눈뜬 사람에게 “그 사람이 네게 한 일이 무엇이냐? 그가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하고 또 물었다. 그는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대답했는데, 여러분이 곧이 듣지 않았습니다. 어찌하여 다시 들으려고 합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합니까?”하고 반문했다. 그러자 그들은 눈뜬 사람에게 욕을 하며 “너는 그 사람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는 모른다”하고 말했다. 눈뜬 사람은 “그분이 내 눈을 뜨게 해주셨는데도,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하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은 듣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어주시는 줄을 우리는 압니다. 창세로부터 누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했습니까?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하고 대답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에게 “네가 완전히 죄가운데서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하느냐?” 하고 눈뜬 사람을 바깥으로 내쫓았다.

35-39 바리새파 사람들이 눈뜬 사람을 내쫓았다는 말을 예수께서 들으셨다. 예수께서 그를 만나주셨다. 예수께서 눈뜬 사람에게 “네가 인자를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선생님, 그분이 어느 분입니까? 내가 그분을 믿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그에게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분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는 “주님, 내가 믿습니다.” 하고 말한 후 예수께 엎드려 절했다. 예수께서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보는 사람은 보게하고, 보는 사람은 못보게 하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40-41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나서 “우리도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오?”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눈이 먼 사람들이라면, 도리어 죄가 없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라. 그 사람 예수는 죄인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죄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간음하다 끌려온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눈뜬 사람처럼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눈뜬 사람처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어주시는 분이시다. 눈뜬 사람은 예수를 만나보지 않고서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만으로도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알았다. 부모와 달리 그는 바깥으로 내쫓겨나더라도 (출교를 당한다 해도)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고 증언했다. //사람들에게는 내쫓겼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을) 만나주신다. 예수께서는 눈뜬 사람의 믿음의 눈도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눈뜬 사람은 예수를 물리적으로 볼 뿐만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예수를 주님으로 믿었다. //예수께서는 한편으로 바리새파 사람들은 믿음의 눈이 먼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차라리 육신의 눈이 멀었다면 죄가 없다고 하신다. 그러나 영의 눈이 멀었다면 죄인이라고 하신다. 주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죄라고 하시는 것이다. 저자 요한이 요한1서에서 밝힌 것처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말만하고 어둠에서 행하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없는 자가 된다. 

////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1 3:14) //내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요한복음 9:13-23 읽기

13-17 사람들이 눈뜬 사람에게 “그 사람이 (예수가) 어디에 있소?” 하고 물었지만, 그가 모른다고 대답하자, 사람들은 그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갔다. (예수께서 눈먼 사람에게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이 안식일이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눈뜬 사람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는 예수가 자신의 눈에 진흙을 바른 다음에 눈을 씻으니 보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더러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그는(예수는)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말했고, 더러는 “죄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눈을 뜨게 하는 표징을 행할 수 있겠소?” 하고 말했다. 그들가운데 의견이 갈라졌다. 그들은 눈뜬 사람에게 그를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눈뜬 사람은 “그분은(예수는) 예언자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18-23 유대 사람들은 그가 전에 눈먼 사람이었다가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그 부모를 불렀다. 그들은 눈뜬 사람의 부모에게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었다가 눈을 뜬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하고 물었다. 그 부모가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지금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모릅니다. 이 아이는 이미 성인이니, 그에게 직접 물어보십시오. 그가 이야기 할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 부모는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 둘러댔던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회당에서 내쫓기로 이미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부모는 장성한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예수께서 베데스다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사건과 유사하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표징이 드러났다는 부류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니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부류로 분열되었다. 유대교 신앙과 전통을 따르느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못한 바리새파 사람들과 달리, 눈뜬 사람은 예수를 예언자라고 분명한 증언을 한다. //눈뜬 사람의 간증에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자신들이 믿고자 하는 사실이 아니면, 분명한 사실마져 부인하게 한다. 사람들은 눈뜬 사람의 부모를 불러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그의 부모는 사실만을 확인해줄 뿐이었다. 유대교 신앙과 전통에 굴복해 아들처럼 ‘예수는 예언자입니다’ 하고 직접 증언하는 대신 성인이 된 아들에게 다시 공을 넘겼다. ///베드로는 (벧전 3:8~에서) “…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하고 교훈한다. 나에게 생명을 사랑하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는 사실(삶)이 있어야, 나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을 오히려 부끄럽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과 전통으로 (종교적 열심으로) 떠드는 것은 고성방가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