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모세가 주님께 들은 말씀이라고 적지 않는다. 주어가 ‘주님’이다.) 사람이 실수로 주님의 명령을 하나라도 어겼을 경우 어떻게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 말씀하신다.
3-12 기름부음을 받고 임명받은 제사장이 죄를 지은 경우, 그 벌이 백성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흠없는 수송아지를 어떻게 속죄제물로 바쳐야 하는지 말씀하신다.
13-21 이스라엘 회중이 실수로 죄를 지은 경우, 비록 깨닫지 못한 죄를 지었을 경우, 주님의 명령을 하나라도 어겨서 벌을 받게 된 경우, 죄를 그들 스스로가 깨닫는 대로 수송아지를 속죄제물을 바치는 방법을 말씀하신다.
//속죄의 제사는 회중 (이스라엘 공동체) 뿐만 아니라 기름부음을 받고 임명받은 제사장들도 당연히 드려야 한다. 특별히 제사장이 죄를 지으면 백성의 허물이 된다. 그 벌이 백성(회중)에게 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제사장이 먼저 용서 받아야 된다. 제사장의 속죄가 먼저 언급된 이유다. 속죄의 제사는 주님의 명령을 하나라도 어겨 벌을 받게 된 경우 뿐만 아니라, 회중이 함께 책임져야 할 잘못을 저지른 경우, 깨닫지 못한 죄를 지었거나 실수로 죄를 지은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곧 모든 잘못은 속죄받아야 한다. //속죄제물은 수송아지다. 그런데 제사장들의 속죄제물은 ‘흠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라고 기록하는데, 회중의 속죄제물에는 ‘흠없는’이 빠졌다. 이것이 의미있는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데 흠없는 제물이 어디 있으랴? 완전무결한 수송아지 제물은 없다. 그런데 흠없는 예수께서 우리 죄를 속죄하기 위해 몸소 제물이 되어주셨다. 즉 성도는 (죄없는 대제사장 예수께서 드린) 완전무결한 속죄제물로 속죄함을 받았다. //이스라엘 회중은 죄를 깨닫는 대로 속죄제물을 바쳐야 했다. 성도는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한마디로 공동체의 죄를 깨닫는 대로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말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성도는 속죄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의지하여 죄를 깨달을 때마다 회개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고 고린도 성도들에게 편지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곧 죄를 깨닫는 것이다. 회개는 이미 속죄받은 성도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