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주간의 첫 날 (곧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갔는데,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이 이미 옮겨져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 길로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 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보고했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무덤으로 달려갔다.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먼저 도착해서 무덤 입구에서 안을 보니, 삼베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으로 들어가 확인하지 않았다. 뒤따라 도착한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갔더니 삼베만 놓여있었고,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삼베와 함께 놓이지 않고 한 곳에 따로 개켜 있었다. 먼저 도착한 제자도 뒤따라 들어가 보고 믿었다. 그들은 아직도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11-18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서서 울었다. 울다가 몸을 굽혀 무덤 속을 들여다 보았다.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예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쪽과 발쪽에 각각 앉아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왜 우는지 물었다. 마리아는 누가 주님을 가져갔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대답하고 뒤돌아 섰는데, 예수께서 서 계셨다. 마리아는 몰라봤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여자여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었다. 마리아는 예수를 동산지기로 착각해서 “여보세요, 당신이 예수를 옮겼으면 어디에 두었는지 말해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가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그때서야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말로 ‘선생님’ 하고 불렀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해라” 하고 말씀하셨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전했다.
//무덤으로 달려간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는, 빈무덤이라는 마리아의 말을 보고 믿었으나, 빈무덤을 보고도 부활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마리아는 울며 두 제자를 따라 다시 빈무덤으로 왔다. 그는 예수의 시신의 흔적을 찾았다. 마리아에게도 빈무덤은 결코 예수부활의 증거가 아니었다. //마리아는 시신이 뉘었던 곳에 흰옷을 입은 천사 둘을 보게 된다. 슬픔에 천사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마리아의 관심은 오직 예수의 시신에 있었기 때문에, 시신을 향품으로 처리하기 위해 왔기 때문에, 또 슬픔에 잠겨서 부활하신 예수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마리아는 “선생님” 하고 대답한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은 천사의 모습과 같았을까? 눈물에 가렸을까?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마리아는 이름을 불러 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주님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부활의 말씀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깨달아 진다. 빈무덤이 곧 예수부활의 증거는 아니다. 다시 만나주시는 예수가 부활의 증거 자체다. 따라서 말씀의 교제가 없다면 예수를 만날 수도, 부활을 경험할 수도 없다. 부활을 만끽하려면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성도는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앙망해야 한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말씀하시네 말씀하시네 예수 다시 말씀하시네.
요한복음 19:31-42 읽기 (04.16)
31-37 유대 사람들은 그날이 유월절 준비일이므로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그냥 두지 않기 위해 빌라도에게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유월절 안식일은 큰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사들이 예수와 함께 달린 좌우 사람의 다리를 꺾고 난 후, 예수께 와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았다. 그러나 병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흘렀다. (이것은 목격자의 증언이다. 이 목격자의 증언은 진실하다. )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한 성경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성경에는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쳐다볼 것이다’ 한 말씀도 있다.
38-42 그 뒤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거두겠다고 빌라도에게 요청해서 허락을 받았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의 제자지만 유대 사람이 무서워서 그것을 숨기고 있었다. 그는 예수의 시신을 내렸다. 또 전에 예수를 밤중에 찾아갔던 니고데모도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백근쯤 가지고 와서 예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대 사람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와 함께 삼베로 감았다. 예수가 십가가에 달리신 곳에도 동산이 있었는데, 그 동산에는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날을 유대 사람이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이고, 가까운 곳에 무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거기에 모셨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의 다리를 꺽는 이유는?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서? 죽어야만 십자가에서 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이미 죽으신 예수는, 다리를 꺽이지 않고도 시체가 내려져 장례가 치러졌다. 이는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 양의 요건을 갖추셨고, 또 의인이심을 드러낸다. //숨은 제자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 이 둘이 예수를 장례치러 주었다. 요셉은 숨은 제자였고, 요한은 “또” 라는 접속사를 써서 니고데모도 숨은 제자였음을 암시한다. 이 둘의 역할은 여기까지였을까? 성경은 이들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예수를 배반하고 뿔뿔히 흩어졌던 제자들의 이야기는 이어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