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1-17 읽기

1-2 (예수의 말씀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다. 내 아버지는 농부다.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다 잘라버리셔서 (가지치기 하셔서)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그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일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대로 영생의 말씀이다. 시인은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입니다’ 하고 노래했다. 제자들은 말씀을 마음에 두었기 때문에 깨끗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예수를 마음에 모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4-10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이것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그는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사람들이 말라버린 가지를 모아 불에 던져서 태워 버린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내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11-17 임마누엘이야 말로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한다.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다.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내 친구다. 이제부터 너희는 내 종이 아니다. 종은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친구로)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여라” 이다.

//예수는 참 포도나무요 제자들은 가지다. 가지들 중에는 나무에 붙어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도 있다. 이런 가지들은 농부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열매 맺는 가지가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가지치기 하신다.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다가, 예수께서 느닷없이 제자들은 그 말로 (예수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베드로의 고백대로 영생의 말씀이다. 시인은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입니다’ 하고 노래했다.(시119) 제자들은 말씀을 마음에 두었기 때문에 깨끗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예수를 마음에 모셨기 때문이다. 성도가 맺어야 할 열매중의 열매는 깨끗함, 곧 성결한 삶이며, 개인적인 성결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성결함이어야 한다. //제자들이 예수 안에 머물러 있으면 예수께서도 제자들 안에 머물러 계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을 예수의 말씀이 제자들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풀어내신다. 공동체적 임마누엘의 핵심은 주님의 말씀이다. //성도 안에 주님은 말씀으로 거하신다. 성도가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성도의 마음 속에 거하는 예수의 말씀대로 구하기 때문이다. 곧 내 뜻(욕심)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르기 때문이다. 두세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예수께서 함께 하신다. 공동체적 임마누엘을 소망해야 한다. //성도는 공동체적 임마누엘의 자격을 갖췄다. 예수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신 이유는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친구는 아니다. 말씀(계명)을 듣고 행해야 친구다. 결국 성도가 맺어야 할 열매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예수께서 순종하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듯이, 예수께서는 순종하는 성도를 사랑하신다. //성도 마음에 담아야 할 예수의 말씀 중의 말씀은 ‘서로 사랑하여라’ 이다. 성도가 순종해서 맺어야 할 열매가 바로 사랑이다. 성도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여져 가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유대 사람들은 ‘유대 혈통’이 포도나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난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혈통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 붙어 있어야 한다.

요한복음 14:22-31 읽기

22-24 가룟유다가 아닌 다른 유다가 주님께 왜 제자들에게는 주님이 누구신지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려고 하지 않으시냐고 물었다. 예수께서 유다에게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다.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고 있는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임마누엘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누린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계명을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에게 삼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25-26 예수께서 이땅에 계시는 동안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친히 제자들에게 가르쳤으나 제자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고, 또 예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제자들 스스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 오직 보혜사 성령의 가르침과 깨닫게 하심을 받아야 한다.

27-3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를 남겨준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평화라고 하신다.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고 하신다. 주님의 평화로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시는 것을 기뻐했을 것이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보다 크신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렇게 미리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 일이 일어날 때 (재림? 승천?) 제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세상 통치자가 자신을 곧 잡아 갈 것을 아시고 말씀을 마무리 하신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께 분부하신 그대로 행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기 원하셨다. 

//도마와 빌립에 이어 유다도 ‘왜 주님이 누구신지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세요’ 하고 우문을 예수께 던진다. 예수께서는 세상은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이에 반해 제자들은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예수이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임마누엘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누린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계명(주의 말씀을) 지킨다. 서로 사랑하는 자에게 삼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예수께서는 다시 반복해서 보혜사를 언급하신다. 이땅에서는 예수께서 보혜사로서 제자들에게 비유의 말씀을 풀어주셨으나, 예수께서 떠나신 후에는 다른 보혜사, 곧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라고 하신다 성도도 스스로 말씀을 풀어낼 능력이 없다. 따라서 보혜사 성령의 가르침과 깨닫게 하심을 구해야 한다. //예수의 평화(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 임마누엘이 평화다. 예수의 평안은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예수께서 잡히시더라도, 예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셔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셨다는 것이 참 평화라는 것을 제자들과 세상이 알기 원하신다. 

요한복음 14:15-21 읽기

(앞에서 믿음은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적용했다.) 예수께서 말씀을 이어가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그는 진리의 영이다. 세상은 보혜사이신 진리의 영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를 맞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보혜사 진리의 영이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조금 있으면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할 것이나,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주님은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계명을 지킬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 사랑이 곧 순종이요, 순종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주님을 사랑할 수도 순종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다른 보혜사, 곧 진리의 영을 보내주신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 바로 성령을 주신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기도가 아니다. 내 뜻을 성취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다. 보혜사 성령을 받는 것,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능력을 얻는 것이 기도다. //성도는 지금도 주님을 보는 사람들이다. 주님이 살아계시고 성도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오직 (삼위)하나님과의 교제로만 확인할 수 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다면 죽은 것이기 때문이고, 하나님과의 사귐은 영생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주님 안에, 주님은 성부 하나님 안에 있고, 성부 하나님의 말씀은 주님 안에, 주님의 말씀은 성도 안에 거한다. 이것을 알게 하시는 분이 보혜사 진리의 영이시다. 이것이 하나님이 성도를 사랑하시는 방법이다. 성령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알고, 아버지 하나님이 보내신 주님을 아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요한복음 14:1-14 읽기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 후에 이별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후)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신다고 말씀하시고, 심지어 자신을 따르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는 베드로에게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으니, 근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근심을 떨쳐 버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하신다.

2-4 예수께서는 아버지 집에 가서 제자들이 있을 곳을 마련하고, 다시 오사 제자들을 데려가시겠다고 하신다. 예수가 있는 곳에 제자들도 함께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심지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하고 말씀하신다. 

5-7 (그러나) 도마는 예수께서 어디로 가는지, 주님의 길을 모른다고 대답한다. 예수께서는 도마에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하고 대답하신다.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하고 말씀하신다.

8-11 (그러자) 빌립이 예수께 아버지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빌립에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을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하고 대답하신다.

12-14 예수께서 진정으로 말씀하신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예수께서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하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데, 도마는 주님의 길을 모른다고 주님의 길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반문한다. 예수께서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빌립은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십니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근심은 주님의 길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게 한다. 근심음 아버지 하나님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게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하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믿음이란 예수께서 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하는 일이란, 예수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다. 예수께서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예수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결국 성도가 하는 일이란 성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일이다. 성도가 예수 안에 있고. 예수께서 성도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가 하는 일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주님이 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 안에 거하고, 내 안에 거하는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더 큰 일.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신 후에, 제자들이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예수께서 이루어 주시는 일이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신다.  아버지 하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가장 좋은 보혜사 성령으로 응답해 주신다. 이보다 더 큰 일은 없다. 성도는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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