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6:1-17 읽기

가난하고 궁핍한 시인이 주님께 기도한다. 시인은 (가난하고 궁핍하지만) 신실하다. 시인은 신실함을 이유로 생명을 지켜 달라고 주님께 간구한다. 시인의 신실함은 주님이 자신의 하나님이시며, 자신은 주님의 종이라는 분명한 정체성 인식에서 나온다. 

시인은 온종일 주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에게 은혜란 주님을 우러러 보고, 주님께서 시인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주시는 것이다.

시인은 주님이 선하시며, 기꺼이 용서하시며, 주님께 기도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한없이 베푸시는 분이시라고 노래한다. 그래서 시인은 기도하고 애원한다. 주님의 응답을 기대하며 고난을 당할 때마다 기도한다.

시인은 주님과 같은 신(하나님)이 없다고 노래한다. 주님이 하신 일을 어느 신(하나님)이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대신 세상 모든 나라가 주님께 경배하며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린다고 노래한다. 주님만이 위대하시며 놀라운 일을 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이 주님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간구한다. 주님의 가르침에 진심으로 따르겠다고 약속한다.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게싸고 다짐한다. 시인의 마음을 다해 주님께 감사드리며, 영원토록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겠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주님께서 베푸신 크신 사랑, 곧 지옥 깊은 곳에서 자신을 건져내셨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여전히 하나님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오만한 자들, 난폭한 무리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 고발한다. 

시인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사랑과 진실이 그지 없으신 하나님이 자신에게 얼굴을 돌려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한다. 주님께 힘을 구한다.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애원한다. 그리고 은총을 베풀어 주실 징표를 구한다. 시인을 미워하는 자들은 주님이 보여주신 징표를 보고 부끄러워 할 것이다. 시인은 ‘주님께서 친히 나를 돕고 위로하셨습니다’ 하고 노래한다.

//시인에게 가난과 궁핍함은 기도할 충분 조건이 아니었다. 시인은 신실함이 기도의 필수조건인줄 알았다. 시인의 신실함은 주님이 자신의 하나님이시며, 자신은 주님의 종이라는 분명한 정체성 인식의 결과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하나님의 성품도 알고 있었다. 선하시며, 기꺼이 용서하시며, 주님께 기도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한없이 베푸시는 분이심을 분명하게 알고있었다. 시인이 주님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고 주님의 길을 따르겠다고 약속하는 이유다. 이렇게 기도는 기도응답에 순종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내가 할 말만 하고 주님의 응답에 귀를 닫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내 뜻대로 되는 형통이 아니라, 주님의 기도응답에 순종하는 나의 삶에서 세상은 주님을 보게 될 것이다. 성도는 기도응답에 순종할 힘을 주께 구해야 하고, 주님께서 순종하는  성도를 돕고 위로하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성도는 온종일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께서는 성도의 마음에 기쁨으로 가득채워 주신다. 임마누엘!

시편 85:1-13 읽기

주님은 주님의 땅에 은혜를 베푸셔서 포로가 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오게 하셨다. 주님께서 주의 백성들이 지은 죄악을 용서하셨다. 그 모든 죄를 덮어 주셨다. 주님의 노여움을 말끔히 거두어 주셨다. 주님의 맹렬한 진노를 거두어 주셨다. 이렇게 주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해 주셨다.

그런데도 시인은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 달라고 간구한다. 주님께서 품으신 진노를 풀어달라고 간구한다. (구원받은 주의 백성이 다시 죄를 짓고 있다는 증거다.) 주님께 영원히 노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한다. 주님께서 주의 백성이 주님을 기뻐하도록 살려주셨음을 상기시킨다. (구원 받은 백성이 주님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시인은 주님께 한결 같은 사랑을 보여달라고, 주님의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간청한다. (구원은 일회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 청종하겠다고 약속한다. 시인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평화를(안식을) 누리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야 말로 성도들이 망령된 길로 가지 않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노래한다. 주님의 구원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영광이 깃든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 주님께서 좋은 것을 내려 주셔야 우리는 땅에서 열매를 맺는다. 정의가 주님 앞에 앞서가며 주님께서 가실 길을 닦을 것이다.

//사랑 = 진리(진실). 정의 = 평화(안식).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는 진실이 정의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 곧 성령을 내려주셔서 진리가 열매맺게 하신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주님의 뜻이, 곧 정의가 앞장선다. 우리는 주님께서 닦아 놓으신 그 길을 가면 된다.

시편 84:1-12 읽기

만군의 주님, 주님이 계신 곳이 최고로 사랑스러운 곳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온 맘과 온 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이 나의 왕, 나의 하나님입니다. 동물들도 주님의 제단 곁에 집을 짓고 보금자리를 얻습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이 복됩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에, 마실 샘물이 솟아나고,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들은 힘을 덛고 더 얻어, 시온, 곧 주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우러러 뵐 것입니다.

주 만군의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야곱의 하나님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소서.

주님의 우리의 방패입니다.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주신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주님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낫습니다. 악인의 장막에 살기보다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거시 더 좋습니다.

주님은 태양도 되시고 방패도 됩니다. 주님께서는 은혜와 영예를 내려 주시며, 정직한 사람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내려 주십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이 복되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되다. 시인은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 복이라고 노래한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복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시인은 아직 주님의 집에 도악하지 않았어도,  주님의 집을 향해 순례길에 오르기만 해도 복이 있다고 노래한다. 주님의 집을 향해 출발했다는 것은 곧 주님께서 힘을 주셨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래서 시편 23편의 시인처럼 사망의 음친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들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께서 공급하시는 샘물로 힘을 얻는다. 주께서 순례의 길을 인도해 주시고 위험을 막아주신다. 아니 은혜와 영예을 얻게 하신다. 시온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의 영을) 아낌없이 내려 주신다. 이런 주님을 신뢰하여 시온을 향해 출발하는 사람들이 복되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가 복되다. 하나님과 길을 가는 성도가 복되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가 복되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세상 호사를 누리는 것보다 더 좋다. 믿는 사람이 누리는 복이다.

시편 83:1-18 읽기

시인은 하나님께 묵묵히 계시지 말라고 간구한다. 주님의 원수들이 큰 소리치고, 주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머리를 치켜들고 활개치기 때문이다. 주님의 원수들, 주님을 미워하는 자들이 주님이 아끼시는 주님의 백성을 치려고 음모를 꾸민다. 주님의 나라를 훼방한다. 주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리려고 한다. 주님의 원수들은 심지어 주님과 맞서려고 동맹을 맺는다. (에돔, 이스마엘, 모압, 하갈, 그발, 암몬, 아말렉, 블레셋, 두로, 앗시리아, 그리고 롯의 자손 (모암과 암몬?)까지) 그러나

시인은 주님께서 미디안에게 행하신 대로 주님의 원수들의 동맹도 멸망시키시기를 간구한다. 원수들의 동맹의 장수들과 원수들의 동맹국들의 왕들을 미디안 장수 오렙과 스엡과 같이, 미디안 왕 세바와 살문나와 같이 무찔러 주시기를 노래한다. 하나님의 목장을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고자 하던 자들을, 바람에 굴러가는 엉겅퀴와 쭉정이와 같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산림을 태우는 불길처럼, 주님의 회오리 바람으로 원수들을 쫓아내 달라고, 원수들이 주님의 폭풍으로 두려움에 떨게 해 달라고 노래한다. 그들이 주님을 찾도록 그들을 수치로 씌워달라고 노래한다. 수치와 공포로 멸망하게 해 달라고 노래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주’이시며 온 세상에서 주님만이 홀로 가장 높은 분이심을 알게 해달라고 노래한다.  

//하나님께서는 왜 침묵하시는가? 시인이 열거하는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동맹국들을 세는데 열손가락이 부족한데도 왜 침묵하시는가?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려고 하던 미디안과 다를 바 없는데 왜 묵묵히 계시는가? 하나님의 원수들이야 말로 수치와 공포가운데 멸망해야 할 자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주님의 원수들과 달랐던가? 주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이 ‘주’이시며 주님만이 홀로 가장 높으신 분이심을 알았던가? 하나님의 원수들이 동맹을 맺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름을 지워버릴 수 있는 기회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백성들도 원수들과 다름없이 살아갈 때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주’라고 바로 알고 있다면 온 세상이 주님만이 홀로 가장 높은 분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시인은 세상을 빗대어 세상 가치관에 물들어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탄식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닐까? 두 마음을 품은 자에게 주님은 침묵하신다.

시편 82:1-8 읽기

1-7 하나님(엘로힘, 가장 높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법정에서 신(엘, 하나님)들을 재판하셨다. 하나님께서 신들이 공정하지 않은 재판을 한다고 나무라셨다. 신들이 악인의 편을 든다고 책망하셨다. 하나님께서 신들에게 가난한 사람, 고아를 변호해주고, 가련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에게 공의를 베풀고, 가난한 사람 빈궁한 사람을 구해 주라고, 그들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주라고 하셨다. 그러나 신들은 하나님의 판결을 깨닫지도 분별하지도 못하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만 있었다. 그래서 땅의 기초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하나님께서 신들(엘로힘)이라고 부르신 이들은 가장 높으신 분(지존자)의 아들들이다. 그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왕위를 내려놓아야 하는 존재다. 

8 시인은 하나님께 이 세상을 재판해 달라고 탄원한다.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판결해 달라고 노래한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면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 고아들, 가련한 사람, 궁핍한 사람들 편에 섰는지 아닌지 물으실 것이다. 하나님(지존자)께서 하나님(신)들에게 가난한 사람, 고아를 변호해주고, 가련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에게 공의를 베풀고, 가난한 사람 빈궁한 사람을 구해 주라고, 그들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세상 근본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은 소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주님의 법정 명령을 깨닫지도 분별하지도 못하고 어둠 속에서 헤매기 때문이다. 불공정한 재판, 악인의 편을 드는 재판이 어둠 속에서 헤맨다는 증거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 분노하신다. 하늘 회의를 (재판을) 소집하신 이유다. ////성도는 가장 높으신 분, 곧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라도 마지막 날 심판대에 선다. 어둠 속에서 헤매면 안 된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땅에 오셨다. 어둠 속에서 헤매지 말라고. 빛 가운데 행하라고.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가난한 자의 편에 서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