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0:24-42 읽기

24-29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대로 들녘에 숨어 있었다. 초하루에 사울왕의 식탁에는 요나단과 아브넬만 참석했고 다윗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사울은 다윗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고만 생각했다. 그 다음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여전히 비어있자 사울이 자기 아들요나단에게 이새의 아들(다윗)이 식사하러 오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요나단은 다윗이 베들레헴에 제사차 다녀오기 위해 식탁에 나오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30-34 사울은 요나단을 패역무도한 계집의 자식이라고 불렀다. 사울은 요나단이 다윗과 단짝이 된 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요나단이 다윗과 단짝이 된 것은 사울 집안의 수치라고 말했다.  사울은 다윗이 살아 있는 한, 요나단은 안전하지 못하고 왕위를 계승받을 수 없으니 빨리 다윗을 잡아오라고 말했다. 다윗을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요나단은 사울에게 다윗의 잘못이 무엇이냐고 항의했다. 사울은 요나단을 찔러 죽이려고 창을 뽑았다. 그제서야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요나단도 화가 나서 식탁에서 일어나 나왔다.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을 모욕한 것에 마음이 아팠다. 요나단은 그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35-41 그 다음날 요나단은 어린 종을 데리고 다윗과 약속한 장소로 갔다. 화살을 쏜 요나단은 화살을 주워오는 종에게 화살이 더 먼 곳에 있다고 말했다. 어린 종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다윗은 요나단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 요나단은 어린 종을 먼저 성읍 안으로 돌려보냈다. 어린 종이 떠난 후 다윗은 숨어 있던 바위에서 나와 요나단은 만나 세 번 큰 절을 하고, 서로 부둥켜 안고 함께 울었다. 다윗이 더 서럽게 울었다.

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잘가라고 인사했다. 주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것을 후대 사이에서도 잊지 말자고 말했다. 다윗은 길을 떠났고 요나단은 성 안으로 들어갔다.

//시편 133편에서 시인은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하고 노래하는데, 사울은 자신의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단짝이 된 것이 수치라고 말했다. 시인은 형제애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복, 곧 영생이 있다고 노래한다. 요나단은 시인의 노래를 알았기에 감히 아버지 사울의 뜻을 저버린다. 사울은 이런 요나단을 향해서도 창을 겨누었고, 요나단은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창이 다윗을 향한 모욕이라고까지 생각했다. 하루 종일 금식한 요나단은 왕위 계승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 곧 영생을 택한다. 이런 요나단에게 다윗이 세 번 큰 절을 했다. 다윗에게 요나단은 형제 이상이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구세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물리적 동거를 이어갈 수 없는 요나단과 다윗은 부둥켜 안고 서럽게 울어야 했다. 선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복인 영생을 물리적으로 누릴 수 없다니… 그러나 요나단과 다윗은 (눈물을 머금고 자신들의 영적) 연합을 자손 대대로 이어가기로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맹세한다.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한다.

사무엘상 20:1-23 읽기

1-4 다윗이 라마의 나욧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왜 사울이 자기의 목숨을 노리냐고 물었다.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을 죽인다면 자기에게 미리 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윗은 요나단이 자신을 아끼기 때문에 자신이 죽으면 슬퍼할까봐 사울이 아들인 요나단에게조차 알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윗은 자신과 죽음 사이에는 한 발짝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요나단이 다윗을 돕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윗에게 말했다.

5-10 다윗은 우선 자신이 내일 왕의 식탁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 다윗은 들녘에 숨어있을 것이니 사울의 마음을 다시 확인해서 알려 달라고 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친구의 의리를 요구했다. 만약 다윗 자신에게 허물이 있다면 요나단의 손에 죽겠다고 말했다.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을 해치려는 결심을 한 줄 안다면 반드시 다윗에게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윗은 어떻게 자신에게 알려줄 수 있느냐고 요나단에게 물었다.

11-16 요나단은 다윗과 함께 들로 나가서, 다윗에게 하나님 앞에서 약속했다. 내일이나 모레까지 사울의 뜻을 살펴보고 사람을 보내어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다윗이 안전하지 못하면 주님께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기를 축복했다. 마지막으로 자신도 주님의 인자하심을 누리며 살도록, 또 자신이 죽은 다음에라도 자기 집안과 의리를 끊지 말고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요나단은 다윗과 언약을 맺으며 주님께서 다윗의 원수들에게 보복하여 주시기를 바란다고 축복했다.

17-2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다. 그래서 거듭 다윗에게 맹세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에셀 바위 곁에 숨어 있으라고 했다. 요나단은 다윗의 부재를 물어오는 사울의 뜻을 파악하면 에셀 바위 곁으로 활을 세번 쏴서 알려주기로 했다. 활을 찾아오는 종에게 너무 멀리 갔으니 이쪽으로 오면서 다 주워 오너라 하고 말하면 안전할 것이니 안심하고 나오라고 했다. 만약 내가 종에게 화살이 더 먼 곳에 있으니 더 가야 된다고 말하면 주님께서 다윗을 멀리 보내시는 것이니 떠나라고 말했다. 요나단은 주님께서 자신과 다윗 사이의 증인이라며 맹세했다.

//다윗을 돕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요나단. 죽어야 한다면 차라리 요나단의 손에 죽겠다는 다윗. 요나단은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기를 축복했고, 다윗의 원수는 (아버지 사울이라도) 주님께서 보복해 달라고 저주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자신도 주님의 인자하심을 누리며 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저자는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다고 여기서 한 번 더 기술한다. 자기 생명처럼. 언약 안에 있는 사람들의 당연한 태도가 아닐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 주님이 이처럼 나를 사랑하신다. ////예수께서는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중요하냐는 물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라고 답하신 후,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성경)의 본 뜻이 달려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또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나온 부자 청년에게도 지켜야 할 계명을 열거하시면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누리며 살고 싶어한 요나단. 요나단은 다윗이 떠나야 한다면 그것도 주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철저하게 주님 중심의 생각을 한다. 주님 앞에서 살았다.

사무엘상 19:1-24 읽기

1-3 사울은 이제 속마음이 아니라, 아들 요나단과 신하들이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다윗을 죽이겠다고 말했다. 요나단은 다윗을 매우 좋아해 다윗에게 이 사실을 귀뜸해 주고 외진 곳으로 가서 숨어 있으라고 말했다. 요나단이 사울의 마음을 확인하고 다윗에게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4-7 요나단은 사울에게 다윗의 좋은 점들을 얘기 했다. 그리고 다윗을 해치는 죄를 지으시면 안된다고 말했다. 왜 이유도 없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시는지 물었다. 사울은 요나단에게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사울에게 데리고 가서 전처럼 사울을 모시게 했다.

8 또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났다. 다윗이 나가 블레셋을 크게 무찔렀다.

9-10 사울이 창을 들고 궁궐에 있을 때, 주님께서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을 강하게 사로 잡았다. 사울은 수금을 타고 있는 다윗을 창으로 죽이려고 했으나 다윗이 피해 목숨을 건졌다. 그날 밤에,

11-18 사울은 다윗의 집에 부하들을 보내 다윗을 아침에 죽이라고 시켰다.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오늘 밤에 피하라고 경고하고 다윗을 창문으로 내려 보냈다. 다윗은 달아나서 목숨을 건졌다. 미갈은 집에 있는 우상으로 다윗을 만들어 침상에 뉘였다. 아침에 사울의 부하들이 다윗을 잡으러 오자 다윗이 병들어 누워있다고 말했다. 사울은 다윗이 정말 아픈지 침대째 들고 오라고 부하들에게 말했다. 부하들이 와서 확인하니 침대에는 다윗이 아니라 우상이 누워있었다. 사울은 미갈에게 호통쳤지만, 미갈은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거짓 대답을 했다. 다윗은 도망쳐서 라마에 있는 사무엘을 찾아갔다. 다윗의 말을 들은 사무엘은 다윗을 데리고 나욧으로 가서 살았다. 

 19-24 다윗이 라마의 나욧에 있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들어갔다.  사울은 다윗을 잡으려고 부하들을 보냈다. 그곳에서는 예언자들의 무리가 사무엘 앞에서 춤추고 소리치며 예언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사울이 보낸 부하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내려서 그들도 춤추고 소리치며 예언을 했다. 사람들이 이 소식을 사울에게 알렸다. 사울이 두번 세번째로 보낸 부하들에게도 마찬가지 였다. 결국 사울이 직접 라마로 갔다. 사울은 사무엘과 다윗이 있는 라마의 나욧으로 가는데 그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내려서 나욧에 이르기까지 춤추고 소리치며 영광상태에서 예언을 하며 갔다. 사무엘 앞에 도착한 사울은 옷까지 벗어 버리고 춤추고 소리치면서 예언을 하고 난 후, 사울은 그날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쓰러져 있었다. (“사울도 예언자가 되었는가?” 하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아꼈다. 그래서 사울에게 충언을 했고 사울은 잠시나마 악한 영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윗이 승승장구 할 수록 악한 영이 사울을 더욱더 강하게 사로잡았다. 이번에는 다윗의 아내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의 피난을 돕고 사울에게 거짓 대답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사울에게 기름부었던 사무엘이 자신을 찾아 온 다윗을 지켜주었다. 사무엘을 찾아간 사울의 부하들도, 그리고 마침내 사울도 예언자가 되었다. //악한 영에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살인을 도모하고,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예언을 한다. 악한 영을 덮을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영이다. 사울이 옷까지 벗어 버리고 춤추고 소리치며 영광상태에서 예언을 했다. 하나님의 영에 완전히 사로잡힌 모습이다.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 올 때, 다윗도 하나님 앞에 이런 모습으로 선 적이 있다. 다윗은 자신을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 앞에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뛰놀았다고 말한다. 더 낮아지고 천하게 보여도 괜찮다고…) 사실 사울이 처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일어났던 일이다. 사울은 처음을 생각하고 겸손해야 했다. 그러나 왕권에 집착한 사울은 진정한 왕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친구/아내(가족)/종교지도자로부터 아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은 친구 가족 신앙공동체 식구들을 아껴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랑은 신앙공동체 바깥 사람들에게도 확장되어야 한다. ////정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정직한 영을 사모해야 한다. 그래야 성령께서 떠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항상 간직해야 한다.

사무엘상 18:17-30 읽기

17-19 사울은 다윗을 자기 손이 아니라 블레셋과의 전장에서 죽게 하려고 마음 먹었다. 사울은 다윗에게 맏딸 메랍을 아내로 줄 터이니 먼저 ‘주님의 싸움’을 싸워서 용사인 것을 증명하라고 말했다. 다윗은 감히 임금님의 사위가 될 수 없다며 사양했지만, 사울은 다윗을 사위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때가 되자 사울은 메랍을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과 결혼시켰다.

20-29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했다. 사울은 이 사실을 알자 미갈을 다윗에게 주기로 했다. 다윗을 블레셋과의 전장에서 죽게 하겠다는 사울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사울은 다윗을 사위로 삼기로 했다. 이번에도 다윗은 임금님의 사위 자리를 사양했다. 사울은 신하들을 시켜 결혼 지참금으로 블레셋 남자의 포피 백개면 충분하다고 다윗에게 전했다.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할 셈이었다. 이번에는 다윗이 왕의 사위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블레셋 남자 이백명을 쳐죽이고 그들의 포피를 가져다가 요구한 수대로 사울에게 바쳤다. 사울은 미갈을 다윗의 아내로 주었다. 사울은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는 것과 미갈도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 다윗을 점점 더 두려워하게 되어, 마침내 평생 원수가 되었다.

30 블레셋 사람들은 틈틈히 이스라엘을 침입했지만, 그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장군들 보다 더 큰 전과를 올렸다. 다윗은 아주 큰 명성을 얻었다.

//사울이 악령에 씌인게 분명하다. 거짓과 (약속을 어기고) 다윗을 죽이려는 생각으로 꽉 차 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에 반하여 다윗에게는 주님의 영이 함께 한다. 부마 자리를 사양하는 겸손이 그 증거다. 다윗이 마침내 왕의 사위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좋다는 것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은 옳은 결정이라는 뜻이다. 주님은 이런 다윗의 생각을 이스라엘의 원수 블레셋 사람들을 벌하시는 데 사용하셨다. 그리고 다윗은 승승장구로 백성의 마음도 샀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왕도 무서워할 수 밖에 없다. 왕이 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사무엘상 18:1-16 읽기

1-5 [다윗은 사울에게 자신을 이새의 아들이라고 대답한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다윗을 제 목숨처럼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 사울은 다윗을 자기와 함께 머무르게 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요나단은 다윗을 아끼어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었다. 요나단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고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주었다. 다윗은 사울이 어떤 임무를 주어도 맡은 일을 잘 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장군으로 임명했다. 온 백성과 사울의 신하들까지도 다윗을 장군으로 임명한 것을 마땅하게 여겼다.

6-16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 죽이고 개선할 때,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북치고 장구치고 노래하고 춤추며 사울 왕을 환영했다. 여인들은 “사울은 수천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명을 죽였다” 하고 노래했다. 이 말에 사울은 몹시 언짢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사울은 사람들이 다윗에게 왕의 자리를 돌릴 것이라고 투덜거렸다.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사울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이 내리자, 사울은 미쳤고, 다윗은 수금을 탔다. 그때 사울은 가지고 있던 창을 다윗에게 던졌다. 다윗은 사울 앞에서 두번이나 몸을 피했다. 사울도 주님께서 자기를 떠나 다윗과 함께 하심을 알고 다윗을 두려워했다. 사울은 다윗을 천부장으로 임명하여 전방으로 보내버렸다.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셔서 다윗은 어디를 가든지 항상 이겼다. 다윗의 승승장구에 사울은 더욱 더 다윗을 매우 두려워했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늘 앞장서서 싸움터에 나가는 다윗을 좋아했다.

//저자는 요나단이 다윗을 아끼었다고 반복한다. 개역개정에서는 요나단이 자기 생명 같이 다윗을 사랑했다고 번역한다. 이 ‘사랑’은 분명 ‘동성애’다. ‘동성성애’ 곧 ‘homosexuality’ 와 굳이 구분한다면 ‘형제애’ (brotherhood)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랑을 love 보다 sexual relationship 에 국한하여 이해한다. 그래서 건전한 (sexless) ‘동성애’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물론 오늘날 ‘동성애’는 ‘동성성애’와 동일시 하는 단어다. //다윗이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치솟자, 사울은 다윗을 시기한다.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늘 앞장 서서 싸움터에 나가는 다윗을 좋아했으나 사울은 다윗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구절에 쓰인 ‘좋아하다(새번역)/사랑하다(개역개정)’는 요나단이 다윗을 아끼고 사랑했다는 그 단어와 같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이타적이다. 희생적이다. 자신의 성적욕구를 만족시키는 행위가 결코 아니다. 성애와 관계없는 사랑이 더 많다. //성경은 혼외 성관계는 이성성애든 동성성애든 차별없이 죄라고 가르친다. 대신 성애가 아닌 애(사랑)은 그 어떤 관계에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다. 선하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는 사랑으로 시작하고 절제로 마무리 된다. 사랑은 아끼는 것이요, 그것도 자기 생명처럼 아끼는 것이다. 모성애와 부성애가 그렇고 부부애도 그렇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