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7:41-58 읽기

41-44 골리앗은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 점점 다가왔다. 골리앗은 홍안의 소년 다윗을 보고, 다윗을 우습게 여겼다. 골리앗은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아오다니,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느냐?” 말하곤,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다. 골리앗은 다윗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45-47 다윗은 골리앗에게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하고 말했다.

48-53 골리앗이 점점 다가오자, 다윗은 재빠르게 골리앗이 서있는 대열 쪽으로 달려가면서 주머니에서 돌을 하나 꺼내, 그 돌을 무릿매로 던져서, 골리앗의 이마를 맞혔다. 골리앗이 이마에 돌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다윗이 칼도 들지 않고 골리앗을 죽였다. 다윗이 달려가서 골리앗을 밟고 골리앗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골리앗의 목을 잘랐다. 불레셋 군인들은 자기들의 장수가 죽는 것을 보자 모두 달아났다.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블레셋 사람을 쫓아서 가이를 지나 에그론 성문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블레셋 군대를 쫓다가 돌아와서 블레섹 군대의 진을 약탈했다.

54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예루살렘에 가지고 갔으나, 골리앗의 무기들은 자기 집에 간직했다.

55-58 사울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저 소년이 누구의 아들인지 물었다. 아브넬이 자신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사울은 다윗이 누구의 아들인지 아브넬에게 직접 알아오라고 명령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오자 아브넬이 다윗을 사울 앞으로 데리고 갔다.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었다. 사울이 다윗에게 누구의 아들이냐고 물었다. 다윗은 “베들레헴 사람, 임금님의 종 이새의 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골리앗이 홍안의 다윗을 우습게 보고 (앞세우던 방패잡이 뒤로하고) 다윗에게 다가왔다. 다윗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무릿매로 돌을 던져서 골리앗 이마를 정통으로 맞혔다. (코미디 영화처럼 덩치만 믿고 덤빈 골리앗에게 다윗이 권총을 쏜 셈이다.) 골리앗의 육중한 몸은 그대로 땅에 꼬꾸라졌고, 다윗은 골리앗이 차고 있던 칼로 골리앗의 머리를 베었다. 장수를 잃은 블레셋은 풍비박산이 났다. //사울은 다윗이 누구의 아들인지 몰랐다. 악령이 임할 때 와서 수금을 타 주고 돌아가는 수금쟁이의 출신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신하들이 다윗을 사울에게 추천했었건만 군대장관 아브넬에게도 다윗의 존재감은 없었다. 따라서 사울이 다윗을 자신의 무기드는 수행비서로 세우는 16장 21절은 이 사건 이후의 기록일 것이다. //사울은 출정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를 축복했음에도, 승전 후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는 대신 골리앗을 죽인 용사 다윗에게 관심을 가졌다. 사관은 14장 51절에서 용사들과 힘 센 사람을 모으는 것이 사울의 치적?이라고 이미 기록했었다. 약속대로 다윗을 부마로 삼아야 하고, 다윗의 아버지 집안에 면세도 해줘야하니 급하게 다윗이 누구의 아들인지 물었을 것이다.//그러나 정작 다윗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골리앗을 상대하지 않았다. 다윗이 대적한 것은 전장에 모인 사람들 (아군을 포함한) 전부였다. 다윗은 이번 싸움으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다윗은 하나님이 칼과 창이 아닌 것으로 구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라는 것을 온 세상이 알기를 원했다. 골리앗이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대적했던 것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성도가 가지고 던져야 할 무릿돌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도가 가지고 다녀야 할 무릿매는 성령이다. 말씀을 읽지 않으면 던질 말씀도 없고, 무릿매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말씀을 제대로 깨달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성도가 세상에서 무기력한 이유는 그리스도로 옷입지 않고, 몸에 맞지 않는, 성도에게 익숙하지 않은 세상 갑옷을 입으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ㅠㅠ

사무엘상 17:24-40 읽기

24-27 골리앗의 등장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달아났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또 올라와서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있어. 임금님은 누구든지 저 자를 죽이면 많은 상을 내리시고 사위로 삼으시고 그 집안에는 모든 세금을 면제해 주신다고 하셨네” 하고 서로 수군 거렸다. 다윗이 곁에 선 사람에게 “저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이스라엘이 받은 치욕을 씻어내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준다구요? 저 할례도 받지 않은 블레셋 녀석이 무엇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군인들을 이렇게 모욕하는 것입니까?” 군인들은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한 상이 내릴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28-30 다윗의 맏형 엘리압이 다윗에게 “너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내려왔니? 양은 누구에게 맡겼니?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아, 넌 전쟁이 구경거리인줄 아니?” 하고 꾸짖었다. 다윗은 뭘 잘못했느냐며 엘리압에게 대들었다. 그리고 형을 떠나 다른 군인들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그들도 똑같은 말을 다윗에게 해주었다.

31-37 다윗이 한 말이 군이들에게 알려지고 누군가 사울에게 보고했다. 사울은 다윗을 데려오게 했다. 다윗은 사울에게 골리앗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임금님의 종인 자신이 블레셋 사람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말했다.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어린 소년이 어떻게 군인으로 뼈가 굵은 사람과 싸울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다윗은 굽히지 않고, 자신은 아버지의 양 떼를 사자나 곰으로부터 지켜냈다고 사울에게 말했다. 사자나 곰이라도 덤벼들면 죽였으니,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다고 말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떻게 그대로 두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다윗은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자신을 살려주신 주님께서 골리앗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자신을 살려 주실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제서야 사울이 다윗에게 허락했다. 사울은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길 바란다고 축복했다.

38-40 사울은 자기의 군장비로 다윗을 무장시켜 주었다. 다윗은 머리에 놋투구, 몸에는 갑옷을 입고, 허리에 사울의 칼을찼다. 다윗은 시험삼아 몇걸음 걸었지만 익숙하지 않았다.제대로 걷지 못했다. 결국 다 무장을 다 벗어 버렸다. 자기에게 익숙한 목동 지팡이를 들고 시냇가에서 돌 다섯개를 골라서 자기가 메고 다니던 목동의 도구주머니에 넣은 후, 자기가 쓰던 무릿매를 손에 들과 블레셋 사람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맏형 엘리압에게 대들고, 사울 왕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다윗. 그의 자신감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사울도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길 축복했다. 그럼에도 사울은 자신의 갑옷으로 다윗을 무장시켜 주었다. 만약 다윗이 사울의 놋투구를 쓰고 몸에는 갑옷을 입고 허리에 사울의 칼까지 차고 나고 싸워 이겼다면 군인들이 다윗을 사울로 착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깨 하나가 큰 사울의 군장이 다윗에게 맞을 리 없었다. 익숙하지 않았다. 다윗은 마침내 자기에게 익숙한 목동으로 무장하고 골리앗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자기가 메고 다니던, 자기가 쓰던…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평소의 삶이 중요하다. 다윗이 골리앗에서 맞설 수 있었던 이유는 맏형 엘리압에게도 임금 사울 앞에서도 굽힐 줄 모르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주님의 영이 다윗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득권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마음, 세상 가치관을 거스리는 마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다. 바울이 오직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권하지 않던가?

사무엘상 17:1-23 읽기

1-7 블레셋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고 군인을 모아 에베스담밈에  진을 쳤다. 사울도 이스라엘 군인들을 집결시켜 엘라평지에 진을 친 뒤, 블레셋 군인들과 맞섰다. 블레셋 진에서 가드 사람 골리앗이 싸움을 걸려고 나섰다. 그는 키가 여섯 큐빗하고도 한 뼘이나 더 되었다. 머리에는 놋투구를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는데, 갑옷의 무게는 놋 오천세겔 (57.5kg) 이나 되었다. 다리에는 놋으로 만든 각반을 차고 어깨에는 놋으로 만든 창을 메고 있었다. 창자루는 베틀의 용두머리 만큼 굵었과 창날의 무게는 쇠 육백세겔이나 되었다. 그의 앞에 방패를 든 사람이 걸어나왔다.

8-11 골리앗이 나와 이스라엘 전선을 마주보고 이스라엘 전선을 향해 도발했다. 자신과 일대일로 싸워 지는 쪽이 이기는 쪽의 종이되어 섬겨야 한다고 고함을 질렀다. 골리앗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은 골리앗이 하는 말을 듣고 몹시 놀라서 떨기만 했다.

12-16 유다땅 베들레헴 이새에게는 여덟명의 아들이 있었다. 이새의 큰 아들 셋은 사울을 따라 싸움터에 나갔다. 다윗은 막내로 사울이 있는 곳과 베들레헴을 오가며 양떼를 치고 있었다. 골리앗이 아침 저녁으로 나와 계속 싸움을 걸어온 지 벌써 사십일이나 되었다.

17-19 이새는 다윗에게 전장에 있는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라고 말했다. 부대장에게도 치즈 덩이를 갖다주고 형들이 잘 있다는 증거물을 가져 오라고 말했다. 

20-23 다윗은 양 떼를 다른 양치기에게 맡기고 아버지 이새가 시킨대로 먹을 것을 가지고 전장으로 갔다. 다윗이 도착했을 때 이스라엘과 블레셋 군인이 전열을 지어 서로 맞서 있었다. 다윗은 전선으로 달려가 형들에게 이르러 안부를 물었다. 그 때, 블레셋 진영에서 가드 사람 골리앗이 나와서 전과 똑같은 말로 싸움을 걸어왔다. 다윗도 골리앗이 하는 소리를 들었다.

//키큰 (교만한) 사울은 더 큰(거만한) 골리앗 앞에서 놀라 떨기만 했다. 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용감하고 힘센  용사를 모아 힘을 키웠던 사울이지만, 거인 골리앗을 보는 순간 마음이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주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은 결과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대치한지 벌써 사십일. 힘의 균형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뻔 한 싸움처럼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시소를 잡고 계셨다. 이제 하나님은 이새의 막내 (작은) 다윗을 보내 이 균형을 깨뜨리실 것이다.  ////전쟁도 제정신으로 해야 한다. 사울은 용사들을 불러 모으기 보다 수금쟁이 다윗을 전장으로 불렀어야 했었다. 성도는 경황이 없을 때 세상 것들을 의지 하지 않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사무엘상 16:1-23 읽기

1-5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사울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대신 베들레헴 이새의 아들 가운데서 왕이 될 사람을 한 사람 골라 놓았으니, 이새에게고 가라고 하셨다. 사무엘은 주님께 자신은 자신이 (왕을 세우기 위해) 길을 떠나면  사울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님께서는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가 주님께 희생제물을 바치러 왔다고 말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새를 제사에 초청하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을 그곳에서 알려주시겠다고 하셨다. 주님은 사무엘에게 “너는 내가 거기에서 일러주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사무엘이 주님께서 시키신 대로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베들레헴 장로들이 떨면서 나와 사무엘을 맞으며 “샬롬?” 하고 인사를 했다. 사무엘도 “살롬!” 하고 화답했다. 사무엘은 주님께 희생제물을 바치러 왔으니 몸을 성결하게 한 뒤 함께 제사를 드리러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은 자가기 직접 성결하게 한 뒤에 제사에 초청했다.

6-10 이새와 그의 아들들이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시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 보아서는 안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과 다르게 판단한다. 사람은 겈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하고 말씀하셨다. 다음으로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했다. 사무엘은 이 아들도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새째 삼마도 아니었다. 이런식으로 이새가 자기 아들 일곱을 모두 사무엘에게 소개했으나 사무엘은 이새에게 “주님께서는이들 일곱 가운데 어느 하나도 뽑지 않으셨소” 하고 말했다.

11-13 사무엘이 아들이 다 왔느냐고 물었다. 이새는 양 떼를 치러 나간 막내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사무엘은 막내를 데려와야 제물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이새는 사람을 보내어 막내를 데려왔다.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 주님께서 막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명하셨다. 사무엘이 형들이 둘러선 가운데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그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 사무엘은 라마로 돌아갔다.

14-23 (반면) 사울에게서는 주님의 영이 떠났다. 대신 주님께서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을 괴롭혔다. 신하들은 사울에게 악한 영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도록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옆에 두라고 권했다. 사울은 신하들에게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데려 오라고 말했다. 젊은 신하 중 한 사람이 베들레헴 이새에게 그런 아들이 있다고 소개했다. 수금도 잘 타지만 용사이며, 용감한 군인이며, 말도 잘하고, 외모도 좋은 사람이요,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신다고 사울에게 소개했다. 사울은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 양치기 다윗을 보내라고 명령했다. 이새는 다윗을 사울에게 보냈다. 다윗은 사울을 섬기게 되었다. 사울은 다윗을 매우 사랑하였으며, 마침내 다윗을 무장 비서실장으로 삼았다. 사울은 이새에게 다윗이 마음에 드니 자신의 시중을 들게 하겠다고 전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에게 내리면 다윗이 수금을 탔고, 그 때마다 사울에게 내린 악한 영이 떠났고, 사울은 제정신이 들었다.

//제사장이자 사사였던 사무엘. 제사장으로서만 일할 수 있었고 사사로서는 가택연금 수준이이었던 모양이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부었다. 저자는 다윗을 왕으로 세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주님의 영이 그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고 기록한다. 주님의 영, 곧 성령이 계속 감동시킨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성도는 하나님나라의 왕이다. //사울과 다윗 모두 외모가 준수했다. 하나님보시기에 좋았다. 다른 점은 사울은 (키가) 큰 자였고 다윗은 작은 자였다. 다윗이 키가 작았다는 표현은 없지만, 막내라는 단어는 ‘작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마음의 중심이 교만과 겸손으로 달랐다. //주님의 영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신다. 가시적 왕관은 여전히 사울이 쓰고 있지만 주님의 영이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옮겨졌다. 사울은 다윗이 수금을 타지 않으면 정상적인 왕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수금을 타야한다. 이 땅에 만연한 악한 영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사무엘상 15:16-35읽기

16-23 사무엘이 사울을 꾸짖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신 것을 사울에게 전달했다. “임금님이 스스로 겸손하였을 때, 주님께서 임금님께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이 이스라엘 모든 지라의 어른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임금님을 전쟁터로 내보내시면서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할 때까지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주님께 순종하지 않고, 약탈하는 데만 마음을 쏟으면서,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 사울이 사무엘에게 “나는 주님께 순종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보내시는 대로 전쟁터로 갔고, 아말렉 왕 아각도 잡아왔고, 아말렉 사람도 진멸하였습니다. 다만 우리 군인들이 전리품 가운데서 가축 떼는 죽이지 않고 길갈로 끌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언자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진멸할 짐승들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으로 골라 온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사무엘이 “주님께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을 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고 사울을 나무랐다.

24-26 사울이 사무엘에게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의 명령과 예언자께서 하신 말씀을 어겼습니다. 내가 군인들을 두려워하여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하였습니다. 제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나와 함께 가셔서 내가 주님께 경배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간청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함께 돌아가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울이 주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이미 사울을 버리셔서, 사울이 더 이상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있을 수 없도록 하셨다고 말을 했다.

27-31 사무엘이 떠나려고 하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았다. 사무엘의 옷자락이 찢어졌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주님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이 옷자락처럼 찢어서 임금님에게서 빼앗아 임금님보다 더 나은 다른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이신 하나님은 거짓말도 안 하시고 뜻을 바꾸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뜻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하고 말했다. 사울은 다시 한번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백성 이스라엘과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제발 나의 체면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나와 함께 가셔서 내가 예언자게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했다. 사무엘이 사울을 따라 갔고, 사울이 주님께 경배를 드렸다.

32-35 사무엘이 아말렉의 아각 왕을 끌어내라고 명령하였다. 아각은 행여 죽을 고비를 넘겼나 싶어 좋아했지만 사무엘은 길갈 성소의 주님 앞에서 아각을 칼로 난도질하여 죽였다. 그런 다음 사무엘은 라마로 돌아갔고, 사울은 기브아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부터 사무엘은 사울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죽는 날까지 다시는 사울을 만나지 않았다. 주님께서도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

//주님의 말씀을 버리면 주님께서도 그 사람을 버리신다. 성도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의 말씀이 거하지 않는 사람은 성도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이유는 물욕 때문이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대신 군인들이 두려워 그들이 하자는 대로 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이 더 두려웠다니 이보다 더 큰 불신은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이유는  명예욕 때문이다. //부와 명예로 나의 체면을 살리려는 신앙은 이미 죽은 신앙이다. 그러니 사울이 사무엘을 데리고 가서 주님께 드린 경배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배는 사람들 앞에서 나의 욕심과 체면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나는 죽고 예수가 사는 것이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께 붙어있어도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제거된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교제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성도와의 교제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라고 표현한다. 물욕과 명예욕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말씀에서 나온다.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는 성령께 온전히 의지해야 한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