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4:1-12 읽기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에게 주 예수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할지 부탁하며 권면한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성도가 자신들에게서 배운 대로 잘 하고 있으니 계속 그렇 하라고 당부한다. 바울 일행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내린 지시들을 알고 있는 대로 행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의 뜻은 성도가 성결하게 되는 것이니 음행을 멀리하라고 명령한다.
성도는 아내를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대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과 같이 색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색욕에 빠져 탈선을 하거나 교우를 해치면 안 된다. 바울 일행이 이미 가르친 대로 주님께서는 이런 일을 벌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더러움에 빠져 살아도 된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고 부르셨다. 다행히 데살로니가 성도는 교우도 사랑하고 온 마케도니아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에게도 사랑을 실행하고 있으니 더욱더 그렇게 하라고 권면한다. 바울 일행이 명한 대로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고,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을 하라고 명한다. 바깥 사람에 대하여는 품위를 지키고,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에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복음에 합당하게 처신하라고 당부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성결하며 음행을 멀리하라고 강조한다. //성도는 교우와 믿음의 가족들을 사랑해야 한다.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고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을 하라고 한다. //그리고 성도는 바깥 사람, 곧 불신 세상에 대하여 품위 있게 살아가야 한다고 당부한다.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라. 잠잠하라고 하신다. 오늘 한국교회는 음행을 멀리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불신 세상에 대하여 품위있게 지내지 못한다. 십자가를 버려두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말과 혀로만 떠든다. 마치 이것이 행함과 진실함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당연히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품위를 보지 못한다. 세상에 대하여 교회의 복을 빼앗아 가는 원수 대하듯 하면 안 된다. 주 예수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할지 데살로니가 성도를 향한 바울 일행의 당부와 권면을 다시 마음에 새겨야 한다. 우리도 더욱더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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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2:17-3:13 읽기

바울 일행은 지금 데살로니가를 떠나 있다. 그러나 얼굴(몸)은 떠나 있지만 마음은 아니다. 얼굴을 마주하며 교제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사탄이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를 찾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주 예수께서 오실 때에 바울 일행의 희망/기쁨/면류관은 바로 데살로니가 성도이다. 데살로니가 성도야말로 바울 일행의 영광이요 기쁨이다.

그래서 바울 일행 모두다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지 못하고 아테네에 남아 있어야 하지만, 디모데를 대표로 보냈다. 디모데를 보내 데살로니가 성도를 굳건하게 하고 믿음을 격려하여 아무도 환난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게 했다. 바울 일행도 환난을 당했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자신들이 당한 환난을 데살로니가 성도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미리 말한 대로다. 그래서 디모데를 보내 데살로니가 성도의 믿음을 알아보기 위해 디모데를 보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성도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바울 일행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디모데를 보냈었다.

이제 디모데가 바울 일행에게 돌아와 데살로니가 성도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성도들 역시 바울 일행을 간절히 보고 싶어한다는 소식도 가지고 왔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의 믿음의 소식을 듣고 자신들의 모든 곤경과 환난 가운데 위로를 받았다. 데살로니가 성도가 주님 안에 굳게 서 있으면 그것이 곧 바울 일행이 생명력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성도의 소식으로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데살로니가 성도의 믿음에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줄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께서 바울 일행의 길을 친히 열어주셔서 데살로니가 교회로 가기를 바란다.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데살로니가 성도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 데살로니가 성도가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데살로니가 성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주시기를 기도한다. (넘치는 사랑으로) 주님께서 데살로니가 성도의 마음을 굳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께서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티없이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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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의 신앙성장은 곧 나의 신앙성장이기도 하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말씀을 배우는 자가 함께 성장한다. //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주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라고 편지한다. 완전한 성전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몸된 교회의 지체의 한 부분이 굳게 서지 못하면 다른 지체도 굳게 서지 못한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를 바라는 바울 일행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 모든 궁핍과 환난가운데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으로 위로 받은 바울 일행. 가르치는 자들은 가르침을 받는 자의 믿음으로 위로를 받는다. 가르치는 자들에게도 궁핍과 환난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각양각색의) 궁핍과 환난 가운데 처한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니 대적할 자가 없는 것이다. 이 믿음의 성도들이 함께 하는 임마누엘을 우리도 누리게 하소서. //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 일행의 기도를 요약한다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의 역사를 굳건히 하고 사랑의 수고를 넘치게 하고 소망의 인내를 끝까지 경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해서 교제하기를 기도한다. 한 마음이 한 몸, 곧 하나님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기도다.

데살로니가전서 2:1-16 읽기

1-12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를 찾아간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이 알고 있다고 입을 연다. 바울 일행은 빌리보에서 고난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박해 가운데서도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에게 전했다. 바울 일행은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마음이나 속임수로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에게 권면한 것이 아니었다. 바울 일행은 하나님께 검정받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을 전했다. 사람의 환심을 살 필요가 없었다. 대신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복음을 전했다.

바울 일행은 항상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 일에 증인이라고 담대히 말한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성도에게서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물론 바울 일행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울 일행은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데살로니가 성도 가운데서 유순하게 처신했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을 사랑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나누어 주었고 목숨까지도 기쁘게 내 줄 생각이었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에게 자신들의 수고와 고생을 상기시킨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성도 가운데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 바울 일행은 경건하고 올바르고 흠 잡힐 데가 없도록 처신했다. 데살로니가 성도도 하나님께서도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바울 일행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이 데살로니가 성도 하나하나를 대했다.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 성도에게 권면하고 격려하고 경고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13-16 바울 일행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이유를, 데살로니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앋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인다.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사람이다. 유대에 있는 성도가 유대 사람에게서 고난을 받은 것과 같이 데살로니가 성도도 데살로니가 사람에게서 똑같은 고난을 받았다. 유대 사람은 주 예수와 예언자를 죽이고 성도를 내쫓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적대자가 되었다. 유대 사람은 바울 일행이 이방 사람에게 말씀을 전해서 구원을 얻게 하려는 일까지도 방해한다. 자기들의 죄의 분량을 채운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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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일행은 그리스도의 사도이나 사도의 권위를 주장하는 대신 온유한 어머니가 자녀을 양육하듯 일했다고 강조한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사랑해서 단순히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주기를 기뻐한다고 말한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자신들의 사랑하는 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신들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기억하듯이 자신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한 수고와 애씀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한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편지한다.

////바울은 자신들의 사역을 첫번재로 ‘거룩하고 옳고 흠이 없었다’라고 평가한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 증거, 그 증인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도 증인이 되신다고, 하나님도 알고계신다고 편지한다. 바울은 두번째로 자신들의 사역을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는 권면과 위로와 경계’ 였다고 평가한다.  바울은 거룩하고 옳고 흠이 없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과 위로와 경계로 가르쳤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를 친히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게) 행하게 하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요약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 일행의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훈계로 세워졌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일행이 떠난 후에도) 그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훈계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데살로니가전서 1:1-10 읽기

발신자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수신자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사람의 교회

문안 은혜와 평화가 있기를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성도를 생각하면서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기도시간에 데살로니가 성도를 기억한다. 데살로니가 성도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며 인내하고 있음을 기억한다. 이러니 바울 일행이 보기에도 데살로니가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형제자매들이다.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성도를 택하셨다는 것을 그들의 삶에서 알 수 있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했다. 바울 일행은 복음에 합당하게 처신했고, 데살로니가 성도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데살로니가 성도는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였고 바울 일행과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신도에게 모범이 되었다. 주님의 말씀은 복음에 합당한 처신을 행한 데살로니가 성도로부터 각처에 두루 퍼졌다.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젇도로 하나님을 향한 데살로니가 성도는 믿음이 있었다. 사람들은 바울 일행에게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어떻게 바울 일행을 영접했는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믿는지 소식을 전했다.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살리신 하나님의 아들, 장차 내릴 진노에서 성도를 건져 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어떻게 기다리는지 바울 일행에게 알려줬다.

//믿음의 행위는 믿음에 따라 행한 일이다. 개역개정에서는 믿음의 역사로 번역하는데 믿음이 한 일을 뜻한다. 믿음은 믿고 안 믿고 아니라, 믿음의 결과/열매로 드러나는 삶이다. //사랑의 수고는 사랑의 노력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라도 용서하는 삶이다. //소망의 인내 역시, 소망은 인내를 통해 열매 맺음을 전제로 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데살로니가 성도는 복음과 함께 받는 고난/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 복음을 전해 준 바울 일행과 같이 복음에 합당한 처신을 한 것이다. //성도가 나눌 간증의 핵심은 1) 주님을 어떻게 영접했는지, 2) 영접하고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왔는지, 3)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그리고 4) 다시오실 주님을 어떻게 기다리는지, 이 네가지다. 이것이 성도의 믿음이다. 바울 일행도 데살로니가 성도도 복수다. 성도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이 믿음을 나누는 공동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형제자매들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능력이다. 복음에 합당하게 처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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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7:16-34

“주에게 바친 사람도 다시 무를 수 없다. 그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29)

//주께 바쳐 가장 거룩한 것이 되었을 때에는 팔거나 무르거나 할 수 없다. 주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나의 생명조차 나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도는 주님의 것이다. 베드로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고 성도의 정체성을 정리한다.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하고 성도의 삶을 정리한다.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소유로 무를 수 없다. (무르려고 하는 것은 생명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무를 수 없는 인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