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7:1-15

1-8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셨다. 주께 드리기로 서약한 사람의 값을 돈으로 환산하여 드릴 때 스무 살부터 예순 살까지의 남자는 은 오십 세겔이고 여자는 은 삼십 세겔이다. 다섯 살부터 스무살까지 남자는 이십 세겔, 여자는 은 십 세겔이다. 난 지 한 달 된 아이부터 다섯 살까지는 남자는 오 세겔, 여자는 은 삼 세겔이다. 예순이 넘은 남자는 은 십오 세겔, 여자는 십 세겔이다. 서약한 사람이 너무 가난해서 정한 값을 내지 못할 경우에는 제사장이 서약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값을 정해 준다.

9-13 서약한 것이 짐승이면, 주께 바친 짐승은 거룩하게 된다. 거룩하게 된 짐승을 다른 것과 바꾸면 안 된다. 이미 바친 후 다른 짐승과 바꾸면 본래의 것과 바꾼 것 둘 다 거룩하게 바친 것이 된다. 바친 짐승이 부정한 경우 제사장이 품질을 판정하여 제사장이 값을 매긴다. 소유자가 그 짐승을 무르고 싶으면 그 짐승값이 오분의 일을 보태서 내야 한다.

14-15 어떤 사람이 집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께 바칠 때는 제사장이 그 집값을 매긴다. 집을 바친 사람이 그 집을 도로 무르고자 하면 그는 집갑에 오분의 일을 얹어서 물어야 다시 자기의 집이 된다.

//모세는 주께서 시내산에서 세우신 주의 규례와 법도와 율법을 정리한 후, 갑자기 서원에 관한 값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덧붙인다. 잊어버리고 빼먹은 내용을 더한 것일까? 부칙일까? //주의 백성의 몸은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주 앞에 (나이와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동등하다고 말씀하신다. 부자라고 몸값이 더 나가지 않는다. 다만 가난한 사람은 제사장이 그 사람의 형편에 따라 할인을 해 주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나라를 사기 위해서는 ‘자기 소유의 전부’를 팔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빈부의 차이가 없다. //주께 드려진 제물(짐승)은 드려지는 순간 주님의 것이 된다. 나중에 드리기로 했어도 이미 드리기로 마음에 정한 순간 거룩해 진다. 그래서 바꿀 수 없다. 바꾸겠다고 다른 제물을 드리기로 마음에 정하면 그 제물도 거룩해져서 둘 다 주님의 것이 된다. 음, 성도의 삶은 무엇을 하든 주님께 드려진 삶이다. 하는 일이 바뀐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하는 성도의 예배적 삶이 바뀔 수는 없다. 구약에서 짐승은 짐승값의 오분의 일을 보태서 무를 수 있지만 성도는 ‘자기 소유 전부’를 드려 하나님나라를 샀기 때문에 무를 수 없다. 집도 제물과 마찬가지다. //주님께서 마치 서약을 무를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무를 수 없다는 뜻이다. 잘못된(흠이 있는) 서약만 무를 수 있다. 성도는 누구나 적어도 한 번은 하나님과 믿음의 증인들 앞에서 서약을 한다. 세례식이다. 결혼할 때 한 번 더 서약한다. 이 서약을 무를 수 있는가? 서약을 함부로 생각하는 세대라 많이 안타깝다. 

레위기 26:40-46

40-42 주의 백성이  자기들이 지은 죄, 조상들이 지은 죄, 곧 주님께 반항한 허물을 고백하고, 주님을 거슬렀기 때문에 주님께서 자신들을 거스렸다는 것과, 그래서 주님께서 자신들을 원수가 사는 땅으로 보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에 할례를 받아 겸손해지면, 주님께서는 야곱과 맺은 언약과 이삭과 맺은 언약과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과 주의 백성이 살던 땅을 기억하실 것이다.

43-45 주의 백성이 떠난 그 땅은, 주의 백성이 없는 동안 폐허로 있으면서 안식을 누릴 것이다. (땅은 안식을 누리나) 주의 백성은 주의 규례를 거역한 죄값을 기쁘게 받아야 한다. 죄값을 달게 받을 때, 그들이 죄값을 치르기 위해 원수의 땅에 잡혀가 있는 동안에도 주님은 절대로 주의 백성을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미워하지도 멸망시키지도 않겠다.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을 깨뜨리지 않겠다. 내가 주 그들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그 첫 세대와 맺은 언약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고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었다. 그들은 돌보는 나는 주다.

46 이상은 주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를 시켜 주님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세우신 여러가지 규례와 법도와 율법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켜 주님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사이에 세우신 규례와 법도와 율법의 결론은 주님께 거스리지 말고 마음에 할례를 받아 겸손해 지라는 것이다. 겸손해서 죄값을 달게 받을 때 주님은 주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주의 백성과 세우신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신다. //성도가  죄값을 달게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벌을 안 받는 것이 복이 아니라, 주의 자녀이기 때문에 벌을 받으니, 벌을 받는 것이 복이요, 따라서 벌을 달게 받을 수 있다. 물론 벌이 달 순 없다. //예수께서 이땅에 오셔서 친히 보여주신 모습이다. 아무도 죄값을 달게 받지 않으니, 예수께서 십자가를 달게 지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용서하신다. //언약의 핵심은 주님께서 주의 백성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다. 곧 용서받은 주의 백성이 주님을 하나님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성도가 예수 안에 거해야 하는 이유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야 하는 이유다. 

레위기 26:27-39

 

주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주의 백성 가운데 거하실 수 없다는 것을 재앙과 자연재해와 이방의 침략으로 계속 경과하실 것이다. 그런데도 졸이켜 순종하지 않는다면 주의 백성이 지은 죄를 일곱 배로 보복하실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27-35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여도 주의 백성이 주의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거역하면, 주님은 더욱 노하여 주의 백성을 거역할 것이며, 주의 백성은 지은 죄보다 일곱 배나 더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녀를 잡아 먹어야 할 정도로 굶주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산당들을 부수며, 분향단을 헐고 주의 백성의 시체가 우상들 위에 쌓이게 하실 것이다. 주님은 더이상 주의 백성를 불쌍히 여길 수 없다고 하신다. 주님은 주의 백성이 살던 마을을 폐허로 만드시고 성도도 황량하게 만드시고 주의 백성이 드리는 향(제사)도 기쁘게 받지 않을 것이다. 마을만 아니라 그 땅도 황폐하게 하셔서 원수들도 거칠고 못쓰게 된 그 땅을 보고 놀랄 것이다. 주의 백성은 여러 민족 사이로 흩어지고 약속의 땅은 버려진 채, 거칠고 쓸모 없이 될 것이고 폐허가 될 것이다. 그 때에 땅은 안식을 누릴 것이다. 땅이 폐허로 버려져 있는 동안, 너희가 원수들의 나라도 잡혀가 있는 동안 비로서 땅은 쉴 것이며 안식을 누릴 것이다. 너희가 그 땅에 사는 동안에는 안식년이 되어도 땅이 쉬지 못하였지만 폐허로 버려져 있는 동안에는 쉴 것이다.

36-39 살아남은 주의 백성이 원수의 땅에 끌려가 사는 동안, 주님은 그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일으켜 불안하게 하실 것이다.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원수들과 맞서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망하게 하실 것이다. 주의 백성은 다른 민족사이에 흩어질 것이며, 원수들의 땅이 주의 백성을 삼킬 것이다. 너희 가운데 살아 남아 원수의 땅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그 지은 죄 때문에 힘이 약해질 것이다. 조상들이 지은 죄때문에도 그들은 힘이 약해질 것이다.

//주의 백성이 주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거역하면, 시편 1편의 시인이 노래했듯이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결국을 맞이한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이다.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에서 끊어진다. 망한다. //주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주님을 거역하는 것은 강도나 살인 같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악행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없는 일상이 곧 주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주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종교화된 신앙생활을 기쁘게 받지 않으신다. 그런 주의 백성을 주님께서 더이상 불쌍히 여길 수 없다고 하신다. //불순종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시면서 땅의 안식을 언급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황폐한 땅이 오히려 쉰다고 하신다. 거칠고 쓸모 없는 폐허가 된 땅이 비로서 쉬고 안식을 누린다고 하신다. 안식년 없이 쉬임없이 달려간다면, 그것은 악인의 꾀를 따른 것이요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황무해진 땅이 안식을 누리듯, 사람의 꾀를 내려 놓아, 내 뜻이 황무해지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야 말로 안식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레위기 26:14-26

주님의 규례와 말씀에 순종하면 태평성대다.

14-20 그러나 불순종은, 주님의 법도를 싫어하면, 주님이 세운 언약을 어기면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에게 보복하신다. 갑작스런 재앙, 곧 폐병과 열병으로 백성들의 눈을 어둡게 하고 기운을 빠지게 하고, 농사도 망치고, 수확을 해도 원수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주의 백성을 쏘아보시는 동안에 원수들에게 얻어 맞게 하실 것이다. 원수의 다스림을 받게될 것이다. 주의 백성은 도망다니는 신세가 될 것이다. 이 지경이 되어도 불순종하면 주님께서는 지은 죄를 입곱배로 벌하실 것이다. 더이상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늘을 닫아 비를 그치고 땅을 닫아 소출을 내지 못하고 나무도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21-26 불순종하면 주의 백성이 지는 죄보다 일곱 배나 벌을 더 내리신다고 거듭 말씀하신다. 들짐승도 아이들과 가축 떼를 죽일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주님께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주님을 거역하면, 주님도 주의 백성을 거역할 수 밖에 없다고 하신다. 주님이 직접 주의 백성이 지은 죄를 일곱 배로 보복하실 것이다. 전쟁으로 주의 백성에게 보복하신다. 주의 백성을 원수의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먹거리도 끊으실 것이다. 먹기는 먹어도 여전히 배고품에 시달리게 하실 것이다.

//주님은 주님의 규례와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 가운데 거니신다. 하나님은 성도 가운데 거하신다. 성도에게 태평성대란 환난이 없는 곳이 아니라 주님과의 교제다. 그러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더이상 주님의 백성이 아니다. 성도가 아니다. 주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주의 백성 가운데 거하실 수 없다는 것을 재앙으로 자연재해로 이방의 침략으로 계속 경고하시고 책망하실 것이다. 그런데도 돌이켜 순종하지 않고 계속 불순종한다면 하나님은 주의 백성이 지은 죄를 일곱 배로 보복하실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에게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명하시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주의 백성에게는 일곱 배로 벌하신다. 더이상 일용할 양식도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 바울의 고백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대항하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벌을 피할 수 없다. 누가 감히 주님께 대항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의외로 교회 안에도 많아 보인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우리의 불순종을 해결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주의 말씀이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가능한데… 주님(주의 말씀)보다 높아진 것이 많아보인다. ㅠㅠ 

레위기 26:1-13

1-2 우상을 만들지 말아라. 우상의 신상이나 조각한 석상에 절해서는 안 된다. 나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내가 정하여 준 안식의 절기들을 지켜라. 나에게 예배하는 성소를 속되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주다.

3-9 주의 백성이 하나님께서 세운 규례를 따르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철을 따라 비를 내려주시고 땅은 소출을 내고 나무들을 열매를 맺을 것이다. 곡식도 풍성히 거두고 포도도 넘치게 거두어 배불리 먹고 약속의 땅에서 안전하게 살 것이다. 주님이 약속의 땅을 평화롭게 하실 것이다. 주의 백성은 편안하게 잘 것이다. 아무도 주의 백성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에 있는 사나운 짐승들도 없애고, 칼이 설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원수들은 주의 백성에게 쫓겨나 죽을 것이다. 주의 백성 한 명이 원수 스무 명을, 주의 백성 백 명이 대적 만 명을 쫓아낼 것이다. 그렇게 원수들이 주의 백성이 보는 앞에서 칼에 맞아 쓰러지고 말 것이다. (대신) 주님이 주의 백성을 보살펴 자자손손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 주의 백성과 세운 언약을 꼭 지키실 것이다.

10-13 주의 백성은 지난 해에 거두어 들인 곡식을 미처 다 먹지도 못해서, 햇곡식을 저장하려면 해묵은 곡식을 바깥으로 펴내야만 할 것이다. 주의 백성이 사는 곳에 주님도 같이 살겠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싫어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 사이에서 거닐겠다고 하신다. 주님은 주의 백성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하고 선언하신다. 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다니게 하셨다.

//주의 백성이 태평성대를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세운 규례를 따르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주의 백성이 두다리를 쭉 펴고 잘 수 있는 이유도 말씀에 순종할 때다. 순종하는 주의 백성을 위협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신다. 오히려 일당백이라고 하신다. 이것이 주님이 주의 백성과 세운 언약이다. 시편1편에서 시인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하고 노래한다. 철을따라 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누리는 은혜의 근원이 주의 말씀을 묵상(순종)하는 것이다. 성도의 형통의 근거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주님께서 주의 백성과 세운 언약의 핵심은 주님께서 주의 백성 사이에서 거닐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성도와 친히 사귀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생의 희노애락을 체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이 주님께서 성도들 가운데도 거니신다. 우리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 가운데 거니신다. 성도가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는 근거다. //주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