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7:18-29 읽기

사무엘하 7:18-29 읽기

18-24 나단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들은 다윗은 성막으로 들어가 주님 앞에 꿇어앉아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주 하나님, 내가 누구이기에 주님께서 나를 이런 자리에까지 오르게 해주셨습니까? 주 하나님, 나를 이런 자리에까지 오르게 해 주셨는데, 이것도 오해려 부족하게 여기시고 주님의 종의 집안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 하나님, 이것이 주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일상적인 방법이 아니지요? 주 하나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을 잘 아시니, 이 다윗위이 주님께 무슨 말을 드릴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세우신 뜻과 목적대로 행하실 크나 큰 일을 이 종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주 하나님, 주님은 위대하십니다. 주님과 같은 분이 또 계시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 밖에 또 다른 하나님이 있다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세상 어느 민족이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가셔서 구해내시고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주님의 명성을 드러내셨습니다.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과 같은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튼튼히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영원히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기도를 이어갔다.
25-29 “주 하나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과 이 종의 집안에 약속하여 주신 말씀이 영원히 변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사람들이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하고 외치며 주님의 이름을 영원토록 높이게 하시고 주님의 종 다윗의 집안도 주님 앞에서 튼튼히 서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께서 직접 이 계시를 종에게 주시고 ‘내가 너의 집안을 세우겠다!’ 하셨으므로, 주님의 종이 감히 주님께 이런 간구를 드릴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제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참으로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그리고 신실하신 주님이 종에게 이와 같이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의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려 주십시오. 나의 자손이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대를 잇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직접 약속하신대로, 주님의 종의 집안이 영원토록 주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받게 해주십시오”

//나단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다윗은 철두철미하게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복기하는 기도를 한다. 다윗은 자신은 하나님의 복을 누릴 자격이 없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뤄지기를 간구한다. 이스라엘과의 언약에 신실하셨던 하나님의 계시가 자신에게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은 신실하신데, 다윗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 반복해서 간구하는 이유는, 자신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기도의 대상이 주 하나님의 이름을 거듭 거듭 부르면서 기도한다. 만군의 주 하나님 앞에 자신을 철저하게 종으로 낮춘다. 종이 자신의 생각을 주인에게 아뢸 수는 있다. 그러나 종은 주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 주님은 주인 중의 주인이시다. 결국 기도는 주인의 뜻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주님의 뜻을 나이 말로 복기하는 시간이다. 순종의 첫 단추다.

사무엘하 7:1-17 읽기

사무엘하 7:1-17 읽기

1-3 주님께서 모든 원수에게서 다윗 왕을 안전하게 지켜 주셨다. 다윗은 이제 왕궁에서 편하게 지냈다. 다윗은 예언자 나단에게 자신은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다고 말했다. 나단은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니 무슨 일이든 다윗이 계확하는 대로 하라고 권면했다.
4-16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 주님께서 나단에게 다음과 같이 다윗에게 전하라고 하셨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 나는 출애굽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집이 아니라 오직 장막이나 성막에 있으면서 옮겨 다니며 지냈지만, 나이 백성 이스라엘 그 어느 지파에게라도 백향목 집을 지으라고 명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다윗에게 전할 말씀을 이어가셨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가 너를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았다. 나는 네가 어디로 가든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어서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쳐 주었다. 나는 네 이름을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과 같이 빛나게 해 주겠다. 내가 한 곳을 정하여 거기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심어, 그들이 자기의 땅에서 자리고 잡고 살게 하겠다. 다시는 옮겨 다닐 필요가 없도록, 이전과 같이 악한 사람들의 억압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이전에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사들을 세워 준 때와 달리, 내가 너를 모든 원수로부터 보호하여 평안히 살게 하겠다. 나 주가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겠다. 나 주가 너에게 약속한다. 너의 생애가 다하여 죽으면 나 주가 네 몸에서 나올 자짓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네 후계자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해 주겠다. 나는 네 후계자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이 저의 자식을 매로 때리거나 채찍으로 치듯이 나도 그를 징계하겠다. (그러나) 내가 사울에게서 나의 총애를 거두어 나의 앞에서 물러가게 하였지만 너의 자손에게서는 총애를 거두지 않겠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 갈 것이다. 네 왕위가 영원히 튼튼하게 서 있을 것이다.”
17 나단은 이 모든 말씀과 계시를 받은 그대로 다윗에게 말했다.

//예언자 나단, 주님이 다윗과 함께 하시니, 무슨 일이든 다윗이 계획하는 대로 하라 권면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제동을 거신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다. 하나님의 의중을 짐작해서 말해서는 안 된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지으려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위한 나의 좋은 마음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사들의 통치는 영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은 다윗의 통치/왕조를 영원히 이어가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리고 다윗의 후계자가 하나님의 집을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일차적으로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함으로 말씀이 성취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성도를 (교회를) 통해 완성된다. ////임마누엘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 물을수 있고, 하나님께 들을수 있는 특권이 임마누엘이다. 예수께서는 두세 사람이 주님의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고 하셨다. 내 생각이 아니라, 내가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장 좋은 것을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을 위한 좋은 뜻을 나눌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 그 친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친구보다 좋은 것은 없다. 성도를 교회로 부르신 이유다.

사무엘하 6:12-23 읽기

사무엘하 6:12-23 읽기

12-15 하나님의 궤로 인하여 오벳에돔의 집에 주님께서 복을 내려 주셨다는 소식이 다윗 왕에게 전해졌다. 다윗은 기쁜 마음으로 오벳에돔에 가서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가지고 올라왔다. 궤를 옮길 때 큰 축제를 벌였다. 다윗은 주님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옮겼을 때, 행렬을 멈추게 하고 소와 살진 양을 제물로 바쳤다. 다윗은 모시로 만든 에봇만을 걸치고 주님 앞에서 온 힘을 다하여 힘차게 춤을 추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지파는 환호성을 올리고 나팔을 우렁차게 불며 주님의 궤를 옮겨왔다.

16-19 하나님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 사울의 딸 미갈이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다윗 왕이 주님 앞에서 뛰면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미갈은 마음 속으로 다윗을 업신여겼다. 주님의 궤를 장막 안 제자리에 옮겨 놓자 다윗이 주님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그리고 다윗은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백성에게 축복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에게 남녀를 가리지 않고 빵 한 덩이와 고기 한 점과 건포도 과자 하나씩을 나눠주었다. 그런 다음에 온 백성이 각각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20-23 다윗은 자기 가족들에게 축복하려고 궁전으로 돌아왔다.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이 건달패처럼 맨살을 드러내고 신하들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고 춤을 추었으니 임금의 체통이 어떻게 되었겠냐고 말했다. 다윗은 미갈에게 자신은 사울 집안이 있는데도 자신을 뽑아서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세워주셨으니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다윗은 언제나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뛸 것이라고 말했다. 다윗은 스스로를 보아도 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주님을 찬양하는 일 때문이라면 더 낮아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나를 더욱더 존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로 사울의 딸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다.

//하나님의 궤를 옮길 때, 다윗은 세마포 에봇을 입었다. 역대상에 보면 다윗뿐만 아니라 궤를 멘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자들도 모두 세마포 겉옷을 입었다. 제사장도 아닌데 다윗이 입은 것을 에봇이라고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사무엘이 세마포 에봇을 입고 주님을 섬겼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때 에봇은 예복이라는 의미 강하다. (교회 찬양대가 찬양대복을 걸치듯이.) //처음 다윗이 주님의 궤를 옮기려고 했을 때는 정병 삼만을 대동했는데, 이번에는 군인이 아니라 장막에서 섬기는 (섬길) 자들을 동원했음을 알 수 있다. 삼만 명 뽑는 대신, 이번에는 온 지파 가운데 자원하는 자들이 모였던 것 같다. //다윗은 주님의 궤를 옮기면서 먼저 속죄제를 드리고, 옮긴 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규례에 따라 제사를 드렸다. 제사는 백성들을 향한 축복과 선물로 마무리되었다. //다윗은 미갈이 체통없이 굴었다는 말에, 무엇을 입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왕이 된 것은 사울 가문의 아내를 맞이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심을 고백한다.) 내가 체통을 차리는 것보다, 나는 낮아지고 낮아져도 주님을 높이고 높이고 싶다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고 고백한 요한을 예수께서 가장 큰 자라고 높이셨다.) 다윗은 자신이 낮아져도 주님을 찬양하는 자신을 사람들이 더욱더 존경할 것이라고 말한다. ////에봇/예복을 걸친다고 존경받지 않는다. 교회에서 직분을 가졌다고 존경받지 않는다. 주님을 찬양하느라 낮아지고 낮아진 성도가 존경을 받는다. 성도가 입어야 할 단 하나의 옷이 있다면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이다.

사무엘하 6:1-11 읽기

사무엘하 6:1-11 읽기

1-5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정병 삼만 명을 모집했다. 다윗은 이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궤를 유다의 바알라로부터 옮겨 올 생각이었다. 그들은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꺼내서 새 수레에 싣고 나왔다.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히요가 그 새 수레를 몰았다. 아히요가 궤 앞에서 걸었고 다윗과 이스라엘의 모든 가문은 온 힘을 다하여 온갖 악기로 찬송하며 주님 앞에서 기뻐하였다.
6-8 새 수레를 모는 일행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뛰어서 궤가 떨어지려고 하지 웃사가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궤를 꼭 붙들었다. 주 하나님이 웃사에게 진노하셔서 그를 치셨고, 웃사는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었다. 주님께서 웃사를 급격히 벌하자, 다윗이 화를 냈다. (그곳 이름을 베레스 웃사라고 부른다.)
9-11 그날 다윗은 주님이 무서웠다. 주님의 궤를 옮기기를 주저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의 궤를 다윗 성 대신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으로 실어 갔다. 주님의 궤는 그곳에서 석 달 동안 머물렀는데, 주님께서 오벳에돔과 그의 온 집안에 복을 내려 주셨다.

//사관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도 다윗이 굳이 징집했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를 모시러 갈 때는 삼만 명이나 모집했다. 사관은 오합지졸이 아니라 정병이라고 기록한다. 그만큼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일에 공을 드렸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려깊지 못했다. 궤를 옮기는 규례를 몰랐다. 오래전 블레셋 사람들이 수레에 실어 이스라엘로 돌려보낸 것을 따랐다고나 할까? //(궤를 옮기는 규계를 몰라도)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과 온 이스라엘은 온 힘을 다했다. 모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 그만 하나님의 궤에 손을 댄 웃사는 하나님의 진노에 하나님의 궤 곁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진노에 다윗도 성을 냈다. 다윗이 안색이 변할 정도로 분을 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신 말씀 그대로 였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적어도 그순간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찾으실 때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고 답할 때와 같은 심정이었다.) 결국 다윗은 차마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에 모시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궤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니요, 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오벳에돔에서 다시 드러내 보이셨다. 그렇다고 다시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 규례대로 해야 한다.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다.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임마누엘에도 규례가 있다. 두려우신 아버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유일한 길이 ‘주님 안’이다.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내 안에 모셔야 한다. 주의 말씀을 모르면 열심이 있어도 순종할 수 없다. 우리의 열심보다 중요한 것이 순종이다.

사무엘하 5:11-25 읽기

사무엘하 5:11-25 읽기

11-12 두로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단을 보내 다윗에게 궁궐을 지어주었다. 다윗은 주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굳건히 세워 주신 것과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번영하게 하시려고 다윗의 나라를 높여주신 것을 깨달아 알았다.
13-16 다윗은 예루살렘에 와서 더 많은 후궁과 아내들을 맞아 들여 자녀를 낳았다. 삼무아, 소밥, 나단, 솔로몬, 입할, 엘리수아, 네벡, 야비아, 엘리사마, 엘리아다, 엘리벨렛은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이다

17-21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을 잡으려고 몰려왔다. 블레셋 사람은 르바임 골짜기 평원을 가득 메웠다. 다윗도 요새로 내려갔다. 다윗은 주님께 블레셋을 치러 올라가도 되는지 물었다. 주님께서는 올라가라고 하셨다. 주님께 블레셋 사람들을 다윗의 손에 넘겨 주시겠다고 응답하셨다. 다윗은 바알브라심으로 쳐들어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이겼다. 다윗은 홍수가 휩쓸어 버리듯이 주님께서 원수 블레셋을 휩쓸어 버리셨다고 찬양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이 패전하면서 버리고 간 온갖 우상들을 다윗은 부하들과 함께 치웠다.

22-24 블레셋 사람들이 또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의 평원을 가득 메웠다. 다윗은 주님께 또 물었다. 주님께서 다윗에게 블레셋 정면으로 올라가지 말고 그들의 뒤로 돌아가서 매복해 있다가 기습공격하라고 대답해 주셨다. 뽕나무 밭 위쪽에서 행군하는 소리가 나면 공격하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먼저가서 블레셋을 치시겠다고 구체적으로 응답하셨다. 다윗이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했다. 다윗은 게바에서 게셀에 이르기까지 블레셋을 쫓아가면서 무찔렀다.

//다윗은 두로왕 히람이 궁궐을 지어주자,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굳건히 세워주신 증거요, 주님께서 다윗의 나라를 높여주신 열매라고 깨달아 알았다. 개인적인 영광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윗은 왕으로서 당시의 일부다처적 문화를 탈피하지는 못했다. 그 증거로 사관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열 명의 이름을 언급했다. 열 명! 완전수다. 더할나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궁궐을 지어 선물하는 이웃나라가 있는가 하면, 대적하는 나라도 있다. 이스라엘과 적대적이었던 블레셋, 짧은 본문에 2차례나 다윗의 나라에 싸움을 걸어왔다. 물론 승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한 이스라엘 몫이다. 다윗은 전쟁에서만큼은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의 응답은 획일적이지 않다. 그래서 성도도 같은 문제라도 항상 다시 주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블레셋과 두번째 싸움에 주목하자. 다윗이 첫 승리에 도취되어 두번째 싸움에는 하나님께 묻지 않을 법 한데, 다윗은 물었다. 주님의 응답도 달랐다. 첫번째 싸움처럼 다윗의 힘으로 블레셋을 치게하지 않으시고 주님께서 먼저가서 치셨다. 다윗은 주께서 명하신 대로 기다렸다. 같은 문제라도 ,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기도해야하고, 또 주님의 음성을 세밀하게 경청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앞서지 않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