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6:1-11 읽기
1-5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정병 삼만 명을 모집했다. 다윗은 이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궤를 유다의 바알라로부터 옮겨 올 생각이었다. 그들은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꺼내서 새 수레에 싣고 나왔다.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히요가 그 새 수레를 몰았다. 아히요가 궤 앞에서 걸었고 다윗과 이스라엘의 모든 가문은 온 힘을 다하여 온갖 악기로 찬송하며 주님 앞에서 기뻐하였다.
6-8 새 수레를 모는 일행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뛰어서 궤가 떨어지려고 하지 웃사가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궤를 꼭 붙들었다. 주 하나님이 웃사에게 진노하셔서 그를 치셨고, 웃사는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었다. 주님께서 웃사를 급격히 벌하자, 다윗이 화를 냈다. (그곳 이름을 베레스 웃사라고 부른다.)
9-11 그날 다윗은 주님이 무서웠다. 주님의 궤를 옮기기를 주저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의 궤를 다윗 성 대신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으로 실어 갔다. 주님의 궤는 그곳에서 석 달 동안 머물렀는데, 주님께서 오벳에돔과 그의 온 집안에 복을 내려 주셨다.
//사관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도 다윗이 굳이 징집했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를 모시러 갈 때는 삼만 명이나 모집했다. 사관은 오합지졸이 아니라 정병이라고 기록한다. 그만큼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일에 공을 드렸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려깊지 못했다. 궤를 옮기는 규례를 몰랐다. 오래전 블레셋 사람들이 수레에 실어 이스라엘로 돌려보낸 것을 따랐다고나 할까? //(궤를 옮기는 규계를 몰라도)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과 온 이스라엘은 온 힘을 다했다. 모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 그만 하나님의 궤에 손을 댄 웃사는 하나님의 진노에 하나님의 궤 곁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진노에 다윗도 성을 냈다. 다윗이 안색이 변할 정도로 분을 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신 말씀 그대로 였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적어도 그순간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찾으실 때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고 답할 때와 같은 심정이었다.) 결국 다윗은 차마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에 모시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궤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니요, 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오벳에돔에서 다시 드러내 보이셨다. 그렇다고 다시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 규례대로 해야 한다.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다.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임마누엘에도 규례가 있다. 두려우신 아버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유일한 길이 ‘주님 안’이다.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내 안에 모셔야 한다. 주의 말씀을 모르면 열심이 있어도 순종할 수 없다. 우리의 열심보다 중요한 것이 순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