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4:18-25 읽기

사무엘하 24:18-25 읽기

전염병으로 말미암은 죽음의 천사의 행진이 멈춘 그날, 갓 선지자가 다윗에게 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주님께 제단을 쌓으라고 말했다. 다윗은 갓 선지자가 전해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집으로 가서 타작마당을 사서 주님께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아라우나가 기쁜 마음으로 다윗에게 거저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다윗은 거저 얻은 것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않겠다며 은 쉰 세겔을 주고 타작마당과 제물을 샀다. 다윗은 하나님께 그 땅을 돌보아 달라고 주님께 빌었고, 주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이스라엘에 내리던 재앙이 그쳤다.

//주님이 보내신 죽음의 천사가 멈춘 사건이 자세히 이어진다. 다윗이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사서 주님께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기 때문이다. 다윗은 남의 것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고, 아라우나에게서 타작마당과 제물을 사서 제사를 드렸다. 다윗이 그 땅을 돌보아 달라고 주님께 간구하자, 주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마침내 재앙이 그쳤다. //죽음의 재앙이 그친 이 타작 마당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게 된다. 다윗의 기도를 다시 옮겨본다. ”바로 내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바로 내가 이런 악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백성은 양떼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안을 쳐주십시오.” (삼하24:17) //// ”바로 내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바로 내가 이런 악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이태원 희생자들은 양떼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나와 한국교회를 쳐주십시오.” 한국교회는 이 나라, 이 세대의 죄악을 내가 짓고 내가 저지른 일로 감당해야 한다.

사무엘하 24:1-17 읽기

사무엘하 24:1-17 읽기

1-4 주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치시기 위해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라고 부추기셨다. 다윗은 총사령관 요압에게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모든 지파을 두루다니며 인구를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요압은 주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크게 번성하게 하셔서 백성이 지금보다 백 나 더 불어나게 해 주시는 것을 다윗이 보길 원하지만, 인구조사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다윗은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은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를 하려고 떠났다.
5-9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은 온 이스라엘 지역을 두루다니고 아홉 달 스무 만에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요압은 왕에게 백성의 수를 보고 했다. 칼을 빼서 다룰 수 있는 용사가 이스라엘에는 팔십만, 유다에는 오십 만이었다.
10-14 다윗은 인구조사에 대해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다윗은 주님께 자신이 큰 죄를 지었다고 자백하며 어리석은 일을 한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다. 다음날 예언자 갓이 주님의 말씀을 받아 다윗에게 전했다. 주님은 다윗에게 다음 셋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셨다. 1) 일곱해 동안 국가적 흉년 2) 다윗이 석달동안 도망다니기 3) 사흘 동안 국가적 전염병 창궐. 다윗은 괴로웠다. 다윗은 주님의 자비를 구하며 주님의 손에 벌을 받지 사람의 손에 벌을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15-16 다윗이 사흘 동안 전염병 창궐을 결정하자, 그날 아침부터 정해진 시간까지,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전염병을 내리셨다. 백성가운데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칠만명이나 되었다. 천사가 도성 예루살렘을 치는 순간 주님께서 재앙을 내리는 천사에게 그만 멈추라고 하셨다. 주님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도달했을 때였다.
17 다윗은 백성을 쳐죽이는 천사를 보고 주님께 자신이 죄를 지은 사람이고, 자신이 악을 행한 사람이며, 백성은 양떼일 뿐이고, 백성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 자신과 자기 집안을 쳐달라고 간구했다.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에게 벌을 내리시려고 다윗의 과시욕을 사용하셨다. 주님이 왜 다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주님은 주님 대신 군사력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시려는 것 같다. 다윗도 어느새 주님 대신 군사력을 의지했던 모양이다. 요압과 다윗의 용사들은 자신들의 군사력이 병사의 수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스라엘의 등불이라던 다윗은 잠시 눈이 어두워졌었다. //인구조사 후,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주님께 용서를 구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벌하셔야 했다. 자연에 의해 벌을 받을 것인가, 사람의 손에 의해 벌을 받을 것인가, 재앙에 의해 벌을 받을 것인가? 셋 모두 주님이 내리시는 벌이지만, 다윗은 주님의 손에 의한 벌이라는 가장 확실한 표징이라고 생각되는 전염병을 택했다. //주님이 내리신 전염병으로 이스라엘 전역에서 칠 만이 죽어나갔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도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을 때, 주님은 멈추셨다. 아마 다윗의 죄의 고백과 백성에 대한 중보가 먼저 있었을 것이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 다윗 왕도 온 이스라엘 백성도 왕국으로 자리잡아가는 나라를 보고 ‘이제 됐다’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방의 원수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내신 분은 주님이신데…태평성대는 “주님을 모른다” 하기 쉽다.

////”바로 내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바로 내가 이런 악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이태원 희생자들은 양떼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나와 한국교회를 쳐주십시오.” (삼하24:17)

사무엘하 23:18-39 읽기

사무엘하 23:18-39 읽기

18-19 다윗의 세 용사에 이어 삼심인 특별부대의 우두머리인 요압의 동생 아비새가 언급된다. 그러나 아비새는 첫 세 용사에는 미치지는 못하였다. 20 세용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도 공적을 많이 세운 용사로 소개된다. 브냐야도 삼십인 특별부대의 뛰어난 장수였다. 다윗은 브나야를 경호대장으로 삼았다. 24-39 삼십인 특별부대에 속한 용사들: 요압의 아우 아사헬, 도도의 아들 엘하난 (아마도 세용사의 하나인 엘르아살의 형제?), 하롯 사람 삼마와 엘리가, 발디 사람 헬레스, 드고아 사람 이라,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 후사 사람 므분네, 아호아 사람 살몬,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헬렙, 베냐민 자손 기브아 사 잇대, 비라돈 사람 브나야, 가아스 시냇가 사람 힛대, 아르바 사람 아비알본, 바르훔 사람 아스마웻,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 야센의 아들들, 요나단, 하랄 사람 삼마, 아랄 사람 아히암, 마아가 사람의 손자 엘리벨렛, 길로 사람 엘리암, 갈멜 사람 헤스래, 아랍 사람 바아래, 소바 사람 이갈, 갓 사람 바니, 암몬 사람 셀렉,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무기를 들고 다니는 브에롯 사람 나하래, 이델 사람 이라와 가렙, 헷 사람 우리야까지 모두 서른 일곱 명 (삼십인 특별부대에 적힌 이름은 31 + 야센의 아들들).

//사무엘서 사관은 다윗의 세 용사에 이어서 삼십인 특별부대 서른 명이 넘는 모든 이름을 열거한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가 또다른 세 용사이자 삼십인 특별부대의 우두머리로 언급되고, 일찍 전사한 막내 아사헬로 삼십인 특별부대 용사에 포함된다. 그러나 다윗의 스루야의 첫째, 군대장관이었던 요압의 이름은 브에롯 사람 나하래를 수식할 때 언급 될 뿐이다. 총사령관이었던 요압이 군사적으로는 다윗 왕과 대등한 지위를 가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역사를 기록한 사관의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일까? 하여간 요압은 다윗의 용사의 회중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앞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이인자에 집착한 나머지 저지른 요압의 악행들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관은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헷사람 우리야를 포함시킨 것도 하나님이 영감에 감동된 사관의 작품일 것이다. 삼십인 특별부대에 이름을 올린 수가 서른보다 많다. 아사헬처럼 일찍 전사한 자리는 다른 용사가 대신 했을까? 그리고 후대 사관(역대상)과 달리 야센의 아들들과 요나단이 구분되어 있다. 이렇게 서른을 채우고서도 마지막에 헷사람 우리야의 이름을 굳이 집어 넣은 것은 삼십인 특별부대의 구성이 다윗이 택하고 뺀 조직이 아니라, 다윗이 마지막으로 고백하듯이 (5절) 다윗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신 결과다. 다윗에게는 흑역사로 기억될 이름이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는데 우리야를 사용하셨다. //몇몇 용사는 이름과 함께 무용담도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름만으로 감사하자. 하늘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로된 것으로 기뻐하자. 성도 권용승. 허다한 성도들 사이에서 가나다 순도 아니고 알파벳 순서도 아니고 내 이름을 찾을 방도가 없을 것이다. 검색창에 타입하면 나오는 이름으로가 아니라 다른 성도들과 어우러져 있기에, 하나님나라 시민으로 살아가기에, 이렇게 말씀 앞에 서기에 내 이름을 확인한다.

사무엘 23:1-17 읽기

사무엘 23:1-17 읽기

1-7 다윗의 마지막 말. 곧 유언이다. 사관은 다윗을 이새의 아들, 높이 일으켜 세움을 받은 용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이라는 칭호와 함께 이스라엘에서 아름다운 시를 읊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다윗이 아름다운 시를 읊는 사람이 된 것은 주님의 영이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시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 다윗의 혀에 담겼기 때문이다. 결국 다윗의 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으랴. 다윗의 마지막 유언은 시편 1편의 결말과 같다. 악인의 길은 망한다.
8-12 다윗의 세용사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의 용맹을 소개한다.
13-17 다윗의 세용사가 블렛센 진이 있는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 온 무용담을 소개한다. 다윗은 세용사가 길어 온 물을 마시지 않고 주님께 부어드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건이다.

//다윗의 유언과 세용사의 이야기를 같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윗의 존재는 혼자로 설명되지 않는다. 삼총사와 달탄냥과 같은 스토리가 있다. All for one, one for all. 주님 안에서의 연합이다. 하나님께서 아름답다고 하신 형제의 동거다. 다윗이 노래하듯이 하나님께서 다윗과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만사에 아쉬움 없이 잘 갖추어 주시고 견고하게 하셨다. 그러니 다윗이 노래하는 구원과 소원은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구원은 의인의 회중이 누리는 것이요, 악인들은 결코 들어갈 수조차 없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나에게는 다윗의 세용사와 같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허다하다. 이들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이겨주었기에 내가 살아남았다. 그들도 나를 자신들의 형제로 여겨줄까?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한다. 의인의 회중에 참여하는 것이요 구원을 이루는 길이다. 예수 안에서 독불장군은 없다. 오늘도 예수의 피는 물보다 진하다. ////생의 마지막에 남겨야 할 것은 주님과 믿음의 형제자매들뿐이다. 하나님의 나라다.

사무엘하 22:26-51 읽기

사무엘하 22:26-51 읽기

29 아, 주님, 진실로 주님은 나의 등불이십니다. 주님은 어둠을 밝히십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다윗은 어둠에서 헤맸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님은 어둠을 밝히셨고, 다윗은 어둠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다윗에게는 주님이 등불이셨다. 시인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다” 하고 노래한다. 주의 말씀은 삶의 방향, 목적을 알려주는 빛인 동시에, 한 걸음 한 걸음 안전하게 발을 딛을 수 있도록 비추는 손전등 역할도 한다. 멀리 빛이 보여도, 한치 앞 발 딛일 곳이 보이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시인은 주의 말씀이 손전등이라고 노래한다. “아, 주님, 진실로 주님은 나의 등불이십니다. 주님은 어둠을 밝히십니다.” 다윗의 노래를 함께 부르게 된다. 나의 노래가 된다. //참 빛이신 하나님께서 빛으로 세상에 오셔서, 매일의 삶을 빛 가운데서 행할 수 있게 해주셨다. 바로 주 예수다. 이보다 더 큰 하나님의 자비는 없다. “아, 주님, 진실로 주님은 나의 등불이십니다. 주님은 어둠을 밝히십니다.” 다윗의 노래를 함께 부르게 된다. 나의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