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2:15-31 읽기

사무엘하 12:15-31 읽기

15-23 나단은 주님의 말씀을 다윗에게 전하고 돌아갔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 우리야의 아내와 다윗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치셨다. 아이가 몹시 앓았다. 다윗이 그 아이를 살리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금식했다. 다윗은 왕궁에 돌아와서도 밤을 새며, 맨 땅에 누워서 잠을 잤다. 다윗을 섬기는 늙은 신하들이 다윗을 땅바닥에서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다윗은 일어나지도 않았고 함께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이레가 지나자 그 아이가 죽었다. 신하들은 아이가 죽었다고 다윗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했다.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다윗의 건강에 해로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윗은 신하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아이가 죽은 줄 짐작했다. 다윗이 신하들에게 아이가 죽었느냐고 물었다. 신하들이 아이가 죽었다고 대답했다. 다윗은 땅바닥에서 일어나 목욕을 하고 몸에 기름을 바르고 옷을 갈아 입은 후, 성전으로 들어가서 주님께 경배했다. 그는 왕궁으로 돌아와 음식을 먹었다. 신하들이 다윗에게 왕자가 살아 있을 때에는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시더니, 왕자가 죽자 임금님께서 일어나셔서 음식을 드시니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다윗은 아이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 내가 금식하면서 운 것은 혹시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그 아이를 살려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제 그 아이가 죽었으니 금식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은 죽은 아이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은 죽어 그 아이에게 갈 수 있지만 그 아이는 자신에게 올 수 없다고 말했다.
24-25 다윗이 자기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다. 다윗은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고 하였다. 주님께서도 그 아이를 사랑해 주셔서, 예언자 나단을 보내 주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뜻으로 솔로몬에게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붙여주셨다.
26-31 요압이 암몬 사람의 도성 랍바를 쳐서 점령했다. 요압은 다윗에게 출전하여 도성 랍바를 친히 점령해서 다윗의 이름이 승리자의 이름을 기록되게 하라고 전령을 보냈다. 다윗은 모든 군인을 불러 모으고 랍바로 가서 요압의 뜻대로 그 도성을 점령했다. 다윗은 암몬 왕의 머리에서 금관을 벗겨 왔다. 그 금관은 금 한 달란트나 나갔고, 금관에는 보석이 박혀있었다. 다윗은 그 금관을 가져다가 자기가 썼다. 다윗은 암몬의 도성에서 아주 많은 전리품을 약탈했으며, 그곳 백성을 포로로 잡아와 노역자로 삼았다. 다윗은 암몬 사람의 모든 성읍에서도 이와 같이 행한후에 모든 군인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우리야의 아내와 다윗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죽어갔다. 그런데도 다윗은 아이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과 씨름했다. 아비로서 당연한 모습이었을까? 아이 곁을 지키는 것이 더 옳지 않았을까? 아이가 죽은 후 자신은 죽은 아이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다윗. 그러나 주님께서는 죽은 아이들 다시 살려내실 수 있는 분이시다. 단, 그 아이의 죽음은 주님께서 이미 하신 말씀의 성취다. 어쩌면 다윗의 기도와 금식은 자기 의에 기반을 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그럼에도 주님은 다윗을 사랑하신다. 사관은 비로소 밧세바를 다윗의 아내라고 칭한다. 그리고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솔로몬/여디디야가 태어난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에 다시 평화를(샬롬을) 주시기를 원하는 다윗의 바람이 담김 이름이었다. 하나님은 나단을 보내 사랑으로 응답하셨다. //그렇다고 죄악의 여파가 끝났다는 것은 아니다. 요압은 다윗에게 암몬 점령의 영광을 돌겠다고 전령을 보냈고, 다윗은 주님의 말씀이 아닌, 요압의 말을 듣는 사람이 되었다. 주님께 묻지 않으니, 세상 임금들처럼 왕관을 좋아하게 되었다. 다윗은 주 하나님이라는 왕관을 쓰고 다스려야 하는데 금과 보석으로 만들어진 왕관을 썼다. 주변 나라들과도 평화해야 하는데 칼과 채찍이 앞섰다. ㅠㅠ 무력에 의한 평화(샬롬)는 오래가지 않는다. 불순종의 여파는 심각하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무슨 감투를 쓰고 살아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