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9:40-20:14 읽기

40-43 바르실래의 아들 김함도 다윗을 따라 요단을 건너왔다.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 절반이 다윗을 따라 요단 강을 건너갔다. 그런데 늦게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에게 와서 유다 족속이 자신들과 의논하지 않고 다윗을 빼돌려 요단을 건넌 이유가 무엇인지 따졌다. 유다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친족이라 그렇지 다윗에게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다 사람에게 자신들은 다윗에게 요구할 권리가 열배나 더 있다고 말하면서 무시하지 할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먼저 다윗을 다시 모셔와야 한다고 마을 꺼냈다고 반문했다. 유다 사람도 이스라엘 사람의 말에 지지 않았다.

20:1-2 세바라는 불량배가 있었다. 그는 베냐민 사람으로 나팔을 불며, 다윗에게서 얻을 몫이 없다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온 이스라엘 사람은 세바를 따라 갔다. 그러나 유다 사람은 예루살렘까지 다윗을 따랐다.
3 다윗은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온 뒤, 왕궁을 지키라고 남겨 두었던 후궁 열명을 방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생과부로 지내게 했다.
4-7 다윗은 아마사에게 유다 사람을 사흘 안에 모아 오라고 명령했다. 아마사는 사흘 안에 군사를 모으지 못했다. 다윗은 아비새에게 세바가 요새로 피하지 전에 그를 뒤쫒아 가라고 명령했다. 요압의 부하들,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과 다윗의 용사들이 아비새를 따라 세바를 뒤쫓아 갔다.
8-14 아비새 일행이 기브온 큰 바위에 이르렀을 때 아마사가 합류했다. 요압은 아마사에게 입맟추며 인사하면서 칼을 빼어 아마사의 배를 단 번에 찔러 죽였다. 그런 다음 요압은 아비새와 함께 세바를 쫓아갔다. 요압의 부하는 아마사의 시체옆에서 요압을 지지하고 다윗쪽에 선 사람은 요압을 따르라고 외쳤다. 병사들은 아마사의 시체 곁을 차마 지나갈 수 없었다. 요압의 부하가 아마사이 시체를 옷으로 덮어 큰 길에서 치우고 나서야 군인들이 요압을 따라 세바를 뒤쫓아 갔다.

//압살롬의 반역을 제거하고 요단을 건넜지만 다윗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반역이었다. 세바는 다윗왕국이 유다왕국이라며 열지파를 꼬득이는데 성공했다.다윗을 다시 왕으로 세우기로 했던 이스라엘 지파들은 다윗이 유다를 중심으로 나라를 추스리자 세바를 따르기로 했다. 이랬다 저랬다의 전형이다. //다윗은 아마사를 새로운 군대장관으로 삼아 세바를 치기로 했다. 그러나 요압을 따르던 병사들은 아마사에게 쉽게 합류하지 않았다. 아마사는 결국 요압을 찾아가(협조를 구해)야 했다. 요압은 아마사를 환대하는 척 하면서 결국 아마사를 죽이고 말았다. 사촌간의 비극이다. 다윗이 아마사에게 군대장관을 준 것도 잘못이지만, 요압 밑에 있었던 아마사가 군대장관을 덥썩 받아들인 것도 이해가 안 된다. ////요압, 이인자콤플렉스인가? 위대한 이인자인가? 요압은 다윗의 자리를 노리지 않는다. 왕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것을 철두철미하게 실천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인자의 자리는 결코 내려놓지 못했다. 오늘날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요압과 같은 위대한 이인자 노릇을 하려고 한다. 주님의 종이라고 자처하면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일을 하려고 한다. 자기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피를 흘린 다윗은 살인자 요압을 어찌할 수 없었지만, 우리 주님은 우리의 행함에 따라 심판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자기 뜻대로 하는 주님의 이인자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와 다름 없다. (주님의 이인자라면 더욱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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