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2:1-25 읽기

사무엘하 22:1-25 읽기

21 내가 의롭게 산다고 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상을 내려 주시고, 나의 손이 깨끗하다고 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보상해 주셨다. 25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내가 의롭게 산다고 하여, 나에게 상을 주시며, 주님의 눈 앞에서 깨끗하게 보인다고 하여, 나에게 상을 주셨다.

//다윗의 ‘의인관’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바울의 의인관과 차이가 나는 것일까? 다윗이 어찌 피로 물든 자기 손을 깨끗하다고 노래할 수 있으랴. 다윗이 어찌 간음에 살인을 저지른 자신이 주님 보시기에 깨끗하다고 노래할 수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감히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지 않았다고 노래하고, 흠 없이 살면서 죄 짓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지켰다고 노래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자신의 간구와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심을 알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언제나 자신을 포악한 자와 원수들에게서 건져 주시는 분이심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로워서가 아니라, 의로우신 하나님께 나아갔기에, 하나님 편에 섰기에 이렇게 노래한다. 다윗은 자신의 의로 하나님 편에 선 것은 결코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이다. 다윗을 찾으시는 주님 앞에 다윗은 겸손히 섰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있었다. ////성도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 거하지 않으면서 의롭게 되는 수는 없다.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 안에 예수가 계신다는 것이고, 내 안에 예수가 계신다는 것은 내 안에 주님의 말씀이 있다는 뜻이다. 결국 돌고 돌아 주의 말씀에 지배받는 사람이 성도다. 이렇게 예수 안에 사는 것이 의롭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에 오늘도 하나님이 기뻐하시 삶을 살아내야 한다.

사무엘하 21:15-22 읽기

사무엘하 21:15-22 읽기

15-17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다윗이 군대를 거느리고 블레셋 사람과 싸웠다. 다윗은 싸움에 몹시 지쳐있었다. 거인족의 자손인 이스비브놉이라는 사람이 삼백 세겔이나 되는 청동창을 들고 허리에는 새 칼을 차고 다윗에게 덤볐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이스비브놉을 쳐죽이고 다윗을 보호했다. 다윗은 부하들에게 다시는 싸움터에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은 이스라엘의 등불이시니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18-22 블레셋이 곱에서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 후사 사람 십브개가 거인족 자손 삽을 쳐죽였다. 곱에서 또 전쟁이 일어났다. 이번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을 죽였다. 골리앗의 창자루는 베틀 앞다리 같이 굵었다. 가드에서 또 전쟁이 일어났다. 그 때도 손가락과 발가락이 여섯 개씩 모두 스물넷인 거인이 나왔다. 그가 이스라엘으 조롱하자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쳐죽였다. 이스비브놉, 삽, 골리앗 그리고 손가락과 발가락 합니 스물넷인 거인은 모두 가드에서 태어난 거인족이었지만 다윗과 그 부하들에게 모두 죽었다.

//온 이스라엘은(19:9)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 이스라엘을 구한 임금이라고 인정했었다. 그런데 블레셋이 다시 꿈틀거렸다. 한 동안 전쟁에 나가지 않았던 다윗이 친히 부하들을 거느리고 전장에 나갔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쉽게 지쳤다. 다행이 다윗 주변에는 거인족도 쉽게 물리칠 수 있는 부하들이 있었다. 결국 부하들은 다윗에게 싸움터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고 다윗은 부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빨 빠진 사자가 된 다윗의 이스라엘에 블레셋은 가드출신 거인족을 앞세워 지속적으로 쳐들어 왔다. 그러나 다윗의 용사들, 아비새, 십브개, 엘하난, 요나단이 거인족을 쳐죽이고 이스라엘을 지켰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자. 하나님은 다윗만 들어 쓰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면 누구나 의의 병기요 용사가 된다. //사무엘하가 시간순서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면, 다윗이 전장에 나가지 않고 궁정을 거닐었던 까닭이 밝혀진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추앙받던 다윗이 어둠을 더 사랑했다는 것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아비새, 십브개, 엘하난, 요나단이 거인족에게 주눅들지 않고 싸워 그들을 쳐죽였다. 다윗이라는 만군의 주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롤모델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예수가 계신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 성도는 거인 같은 세상에게 주눅들 이유가 없다. 이미 세상을 이기지 않았던가.

사무엘하 21:1-14 읽기

사무엘하 21:1-14 읽기

1-9 다윗 시대에 세 해 동안 흉년이 들었다. 다윗이 주님 앞에 나가서 그 이유를 물었다. 주님은 사울과 그의 집안이 기브온 사람을 죽여 살인죄를 지은 탓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윗은 기브온 사람을 불러다가 조사했다. 다윗은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편파적으로 사랑한 나머지 기브온 사람들을 몰살 시키려고 했다는 것을 알았다. 다윗은 기브온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다윗에게 사울의 기브온 학살은 돈(보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의 자손 가운데 일곱명을 넘겨주면, 사울의 고향 기브아에서 그들을 매달겠다고 말했다. 다윗이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의 맹세를 기억하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일곱명에서 빼놓았다. 다윗은 사울이 아야의 딸 리스바와 낳은 아들 둘과 사울의 외손 (사울의 딸 메랍이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과의 사이에서 낳은) 다섯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일곱을 산에 있는 나무에 매달아 처형했다.
10-14 아야의 딸 리스바는 굵은 베로 만든 천을 가져다가 시신을 지켰다. 다윗이 이 소문을 듣고, 길르앗 야베스로 가서 사울의 뼈와 요나단의 뼈를 찾아와, 일곱의 뼈와 함께 베냐민 지파의 땅이 셀라에 있는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무덤에 합장했다. 사람들이 다윗이 지시한 모든 명령을 따라한 뒤에야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그 땅을 돌보아 주셨다.

//흉년이라는 문제가 발생하자 다윗은 주님 앞에 그 이유를 묻는다. 물론 자연재해가 꼭 죄에 따른 벌은 아니다. 주님은 사울의 (민족주의와 국수주의적) 편파적 사랑이 불러온 기브온 사람에 대한 집단학살이 때문이라고 알려주셨다. 다윗은 당사자 기브온 사람에게 해결책을 물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물질적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은 생명으로 갚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브온은 상징적인 완전수 일곱에 해당하는 사울의 후손을 요구했고 다윗은 기브온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이렇듯 잘못에 대한 보상은 당자자에게 이뤄져야 한다. 주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에서 끝낼 수 없다. 물론 보상요구가 터무니 없는 것이라면 주님께 다시 물어야 하겠지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사울의 아내 리스바가 아들 둘과 손자 다섯의 시신을 지킨다는 소식에 시신의 뼈들을 거두고, 길르앗 야베스에 묻힌 사울과 요나단의 뼈까지 거둬,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무더에 합장 해주었다. 하나님은 기브온 사람들의 한 맺힌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다. 그렇다면 리스바의 한 맺힌 소리에도 귀를 기우리실 것이다. 다윗이 이번에는 소문을 듣고 발빠른 대처를 했다. 죄에 대한 마땅한 댓가가 치러지고, 한이 풀려야, 하나님은 그 땅을 돌봐 달라는 기도도 들어주신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죄에 대해 마땅한 댓가를 치를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땅에 그리스도로 오셨다.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이웃들의 한 맺힌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 땅에서 한을 풀어주고 위로하는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아니면 불신자들에게 한 맺히게 하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사무엘하 20:14-26 읽기

사무엘하 20:14-26 읽기

14-22 세바는 요압의 추격을 피해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로 두루 다녔다. 세바가 아벨지역과 벳마아가 지역과 베림의 온 지역까지 이르렸다. 요압의 군인들은 벳마아가의 아벨을 포위하고 세바를 공격했다. 세바가 있는 성읍에 성벽높이의 둔덕을 쌓아 성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그 성읍에서 슬기로운 여인하나가 요압 장군을 만나기를 요청했다. 여인은 요압장군에게 이스라엘에서 어머니와 같은 아벨 성읍을 멸망시키려고 하는지? 왜 주님께서 주신 유산을 삼키려고 하는지 물었다. 요압은 아벨을 삼키거나 멸망시켜려는 의도는 없다고 대답했다. 다만 세바가 다윗 왕에게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 사람만 내 주면 물러가겠다고 대답했다. 여인은 세바의 머리를 성벽 너머로 던져주겠다고 말하고 아벨 주민에게 돌아갔다. 그 여인은 주민을 슬기로운 말로 설득시켜, 세바의 머리를 잘라서 요압에게 던져 주었다. 요압은 공격을 멈추고 아벨에서 물러났고 군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23-26 요압은 (다시) 온 이스라엘의 군대 사령관이 되었다.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으로 이루어진 경호부대의 지휘는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맡았다. 아도니람은 부역 감독관이 되었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역사기록관이 되었다. 스와는 서기관,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었다.

//온 이스라엘을 규합하여 다윗을 대적하려고 했던 사악한 세바는 요압을 만나고 돌아간 아벨 성의 슬기로운 여성에 의해 머리가 잘리고 만다. 이 여인은 불량배(사악한) 세바로 말미암은 재앙으로부터 아벨 성을 지키기 위해 (담대히) 성을 나가 요압을 맞이 했다. (어리석은 나발이 불러일으킨 재앙으로부터 포도원을 지키기 위해 다윗을 마중나간 아비가일이 떠오른다.) 요압이 다윗의 군대장관이라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아미 아는 바였다. 하여간 요압은 이렇게 다시 온 이스라엘 군대장관의 지위를 차지했다. //삼하 8:15-18 비교하면, 여전히 요압, 여호사밧, 사독, 아비아달, 스와(스라야), 브나야가 변함없이 다윗 통치의 요직을 맡고 있다. 다만 다윗의 아들들 대신 야일 사람 ‘이라’가 다윗의 대신(제사장, 재판관)을 맡았다. 이라에 대해서는 야일 사람이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게 없다. 하여간 더 이상 다윗의 아들들이 지도자로(대신으로, 제사장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다윗의 왕위는 제왕수업을 받는다고 이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교훈한다.

사무엘하 19:40-20:14 읽기

40-43 바르실래의 아들 김함도 다윗을 따라 요단을 건너왔다.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 절반이 다윗을 따라 요단 강을 건너갔다. 그런데 늦게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에게 와서 유다 족속이 자신들과 의논하지 않고 다윗을 빼돌려 요단을 건넌 이유가 무엇인지 따졌다. 유다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친족이라 그렇지 다윗에게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다 사람에게 자신들은 다윗에게 요구할 권리가 열배나 더 있다고 말하면서 무시하지 할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먼저 다윗을 다시 모셔와야 한다고 마을 꺼냈다고 반문했다. 유다 사람도 이스라엘 사람의 말에 지지 않았다.

20:1-2 세바라는 불량배가 있었다. 그는 베냐민 사람으로 나팔을 불며, 다윗에게서 얻을 몫이 없다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온 이스라엘 사람은 세바를 따라 갔다. 그러나 유다 사람은 예루살렘까지 다윗을 따랐다.
3 다윗은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온 뒤, 왕궁을 지키라고 남겨 두었던 후궁 열명을 방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생과부로 지내게 했다.
4-7 다윗은 아마사에게 유다 사람을 사흘 안에 모아 오라고 명령했다. 아마사는 사흘 안에 군사를 모으지 못했다. 다윗은 아비새에게 세바가 요새로 피하지 전에 그를 뒤쫒아 가라고 명령했다. 요압의 부하들,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과 다윗의 용사들이 아비새를 따라 세바를 뒤쫓아 갔다.
8-14 아비새 일행이 기브온 큰 바위에 이르렀을 때 아마사가 합류했다. 요압은 아마사에게 입맟추며 인사하면서 칼을 빼어 아마사의 배를 단 번에 찔러 죽였다. 그런 다음 요압은 아비새와 함께 세바를 쫓아갔다. 요압의 부하는 아마사의 시체옆에서 요압을 지지하고 다윗쪽에 선 사람은 요압을 따르라고 외쳤다. 병사들은 아마사의 시체 곁을 차마 지나갈 수 없었다. 요압의 부하가 아마사이 시체를 옷으로 덮어 큰 길에서 치우고 나서야 군인들이 요압을 따라 세바를 뒤쫓아 갔다.

//압살롬의 반역을 제거하고 요단을 건넜지만 다윗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반역이었다. 세바는 다윗왕국이 유다왕국이라며 열지파를 꼬득이는데 성공했다.다윗을 다시 왕으로 세우기로 했던 이스라엘 지파들은 다윗이 유다를 중심으로 나라를 추스리자 세바를 따르기로 했다. 이랬다 저랬다의 전형이다. //다윗은 아마사를 새로운 군대장관으로 삼아 세바를 치기로 했다. 그러나 요압을 따르던 병사들은 아마사에게 쉽게 합류하지 않았다. 아마사는 결국 요압을 찾아가(협조를 구해)야 했다. 요압은 아마사를 환대하는 척 하면서 결국 아마사를 죽이고 말았다. 사촌간의 비극이다. 다윗이 아마사에게 군대장관을 준 것도 잘못이지만, 요압 밑에 있었던 아마사가 군대장관을 덥썩 받아들인 것도 이해가 안 된다. ////요압, 이인자콤플렉스인가? 위대한 이인자인가? 요압은 다윗의 자리를 노리지 않는다. 왕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것을 철두철미하게 실천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인자의 자리는 결코 내려놓지 못했다. 오늘날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요압과 같은 위대한 이인자 노릇을 하려고 한다. 주님의 종이라고 자처하면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일을 하려고 한다. 자기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피를 흘린 다윗은 살인자 요압을 어찌할 수 없었지만, 우리 주님은 우리의 행함에 따라 심판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자기 뜻대로 하는 주님의 이인자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와 다름 없다. (주님의 이인자라면 더욱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