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삼서 1장 읽기

요한삼서 1장 읽기

장로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편지한다. 요한은 가이오를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가 영혼이 평안함 같이 모든 일이 잘 되고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요한은 신도들이 와서 가이오가 진실되게 진리 안에서 살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고 적는다. 요한에게는 믿음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가이오는 신도들, 그것도 낯선 신도들까지 충성스럽게 섬겼다. 요한을 방문한 신도들이 가이오의 사랑을 증언했다. 그들은 가이오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낯선 신도들을 잘 보살펴서 보냈다고 증언했다. 낯선 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이방 사람에게선 아무것도 받지 않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했다. 따라서 신도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낯선 신도들을 돌보아주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왜냐하면 신도들이 서로 돌보는 것은 신도들이 진리에 협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이미 자신의 가름침을 (그) 교회에 써 보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교만한) 디오드레베는 요한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한은 교회를 방문해서 디오드레베가 하는 일을 밝히겠다고 편지한다. 디오드레베가 악한 말로 요한 일행을 헐뜯고, 자신이 (낯선) 신도들을 돌보지 않을뿐만 아니라 (낯선) 신도들을 돌보려는 사람들까지 방해하고, 그들을 교회에서 내쫓는다고 경고한다.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가 디오드레베의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당부한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고 악한 일을 하는사람은 하나님을 뵙지 못한 사람이라고 분명히 한다. 한편 요한은 데메드리오는 진실한 삶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소식에, 자신도 데메드리오를 좋게 평가한다고 증언한다. 요한은 가이오도 데메드리오에 대한 평가가 옳다는 것을 안다고 전제한다.

요한은 편지보다 얼굴을 맛대고 보기를 바란다. 평화가 가이오에게 있기를 바란다. 요한과 함께 있는 사람들도 가이오에게 문안한다. 그리고 가이오 친구들에게도 안부를 전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10/24/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10/25/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지 말라고 하신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으뜸이 되려는 것도 악한 일이지만, 교회적으로 으뜸이 되려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형제사랑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 만연한 개교회주의에 대한 경고로 들린다. 어떠한 형편이든지 서로 연합해야 한다. 삼위하나님이 사랑으로 교제하시듯, 삼위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한 성도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친하든 친하지 않든, 색깔이 다르다고 해도, 성도는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성도로 연합해서 임마누엘을 누려야 한다. 예수만 으뜸이 되고 나와 우리 교회는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요한이서 1:7-13 읽기

요한이서 1:7-13 읽기

속이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타났다. 속이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부인한다. 이런 자들이 속이는 자요 그리스도의 적대자들이다. 요한은 독자들에게 스스로 삼가서 믿음의 수고로 맺은 열매를 잃지 않고 충분히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권면한다.
과유불급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시지 않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모시고 있는 사람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과 교제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나님의 가르침에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과 인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가르침에 머룰러 있지 않는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요한은 믿음의 자매와 그의 자녀들에게 쓸 말이 많지만, 글로 쓰기보다는 만나서 얼굴을 마주보고 말하기를 원한다. 얼굴을 맛대고 교제하는 기쁨을 넘치게 하고 싶다고 편지를 마무리한다. 요한은 택하심을 받은 믿음의 자매의 자녀들의 문안도 전한다.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칫하여 그리스도의 종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내 뜻대로 그리스도를 섬기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요한은 이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씀과 깨닫게 하심에 철두철미하게 피동적이 되어야 한다. 순종에 내 뜻이 들어가면 과유불급이 된다. 하물며 하나님의 가르침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하나님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세상 가르침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모신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삼위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당부한다. 삼위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믿음의 형제들과 얼굴을 맛대고 교제하는 것이다. 형제사랑이 영원하신 삼위 하나님과 잇대어 살게 한다. 임마누엘!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10/23/

요한이서 1:1-6 읽기

요한이서 1:1-6 읽기

요한은 자신을 장로라고 소개한다. 장로로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믿음의 자매와 그 자녀들에게 글을 쓴다. 요한은 독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자신만이 아니라 진리를 깨달은 모든 사람이 독자들을 사랑한다고 선언한다. 요한이 독자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요한과 진리를 깨달은 모든 사람들 속에 영원히 함께하시는 진리 때문이라고 밝힌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자비와 평화가 진리와 사랑으로 서로에게 있기를 기원한다.
요한은 믿음의 자매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그런데도 요한은 믿음의 자매에게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고 강권한다. 서로 사랑하자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요한이 처음부터 가르치던 내용이라고 말한다. 요한은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거듭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처음부터 들은 대로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 요한은 독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자신만이 아니라 진리를 깨달은 모든 사람들이 독자들을 사랑한다고 선언한다. 왜? 사랑이야말로 믿음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의 원동력을 진리를 깨달은 모든 사람들 속에 영원히 함께 하시는 진리 때문이라고 밝힌다. 이 임마누엘의 능력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자비와 평화다. 이 은혜와 자비와 평화가 성도에게는 진리와 사랑으로 임한다. 진리는 말씀이요 사랑은 들은 말씀의 실천(순종)이다. //믿음의 자매는 누구일까? 요한이 장로로 아비처럼 믿음을 가르쳤다면, 믿음의 자매는 요한의 가르침을 받아 어미처럼 믿음이 어린 성도들을 돌보는 자로 이해하면 될까?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말씀으로 양육하는 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사랑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보다 더 좋은 교훈 없다. 그래서 요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고 강권한다. 복음의 첫 가르침이 사랑이며, 사랑이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사는 증거라고 거듭 강조한다. //요한은 첫 편지에서 형제사랑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믿음의 증거라고 말했다. 둘째 편지에서도 사랑이 임마누엘의 증거라고 말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10/22/

요한일서5:13-21 읽기

요한일서5:13-21 읽기

요한은 독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담대할 수 있다. 무엇이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서 들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구한 것들을 우리가 받는다.
우리는 어떤 교우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가 아니면, 죽을 죄는 짓지 않은 그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죽을 죄도 있다. 불의한 것은 모두 죄지만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도 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죄를 짓지 않는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신 분, 곧 예수께 그 사람을 지켜주시기 때문에 악마가 그를 해치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온 세상은 악마의 세력하래 놓여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진리이신 그분을 알 수 있도록 이해력을 성도에 주셨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그 참되신 분, 곧 진리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시다. 믿음의 자녀라면 우상을 멀리해야 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8/12/22/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혹 죄를 지어도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마지막에 죄란 우상숭배라고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요한은 끊임없이 믿음의 증거를 제시한다. 오늘은 보혜사 성령께서 주시는 이해력으로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진리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 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것을 요한은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는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다. 하나님과 이 사귐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하나님 아는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이 우상이요 죽을 죄다. 우리는 우상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요한일서5:1-12 읽기

요한일서5:1-12 읽기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났다. (하나님이 만드셨다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낳아주신 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분이 낳은 다른 사람을 (형제자매를) 사랑한다. 요한이 거듭 강조하는 형제자매 사랑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 계명을 지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곧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 곧 형제자매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사랑보다 경쟁을 강조하는) 세상을 이긴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물과 피를 거쳐서 오셨다. 물로써만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셨다고 성령이 증언하신다. (예수께서는 세례 받으실 때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실 때도 하나님의 아들로 증명받았다. 성령께서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신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아들로 증언하신다.)성령은 곧 진리다. 증언하시는 분은 셋이다. 곧 성령과 물과 피다. 이 셋의 증언은 일치한다. 이 증언은 하나님의 증언이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에게 관해서 증언하셨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8/12/21/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께 잇대어 사는 것이 영생이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