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2:1-11 읽기

요한일서 2:1-11 읽기

요한은 독자들을 자녀로 대한다. 자녀라는 것은 상속자를 뜻한다. 물론 믿음의 상속자요, 궁극적으로는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된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아비 된 요한은 자녀 된 독자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편지를 한다. 죄를 지으면 상속권을 잃기 때문이다. 물론 성도는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승율 100%의 의로우신 예수그리스도가 계시다. 이미 우리의 연약함, 죄성을 아시고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주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변호사로 선임할 수 있을까?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진리로) 알고 있는 증거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요, 그 속에 진리가 없다고 단언한다. 계명을 지킨다고 하니 행위구원론처럼 들린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해야 한다. (이미하신 말씀을 법조문처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하시는 말씀에 청종해야 한다. 곧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한다.) 그 속에 진리가 있는 사람은, 곧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사람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이것으로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안에서 사신 것과 같이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요한이 강조하는 계명은 무엇인가? 요한이 말하는 계명은 법조항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다. 요한은 주님의 가르침을 율법에 반하여 새계명이라고 부른다. 새계명은 옛계명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께도 독자에게도 참되다. 곧 진리다. 요한은 복음서에서 말씀이신 예수께서는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빛 가운데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곧 예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삼가는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사람을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변호해 주신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행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어둠이 그의 눈을 가렸다.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으니 그분의 중재를 따를 수도 없다. //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8/12/15/

전도서 12:1-14 읽기

전도서 12:1-14 읽기

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인생의 희노애락을 깨달았다고 착각하기 전에, 마지막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 사람은 금방 늙고, 죽는다. 그러니 죽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하신다. 육체가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숨(생명)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라. 전도자는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고 선언한다. 모든 것이 잠깐이다. (아침이슬같이 잠깐이다.)
전도자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백성에게 자기가 아는 지식을 가르쳤다. 잠언을 짓고 연구하고 정리했다. 전도자는 기쁨을 주는 말을 찾으려고 힘썼다. 참되게 사는 길을 가르치는 말을 찾아 바르게 적어놓았다.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찌르는 채찍같고, 수집된 잠언은 잘 박힌 못과 같다. 이 모든 것은 한 목자가 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나의 아이들아 조심하여라. 책은 아무리 읽어도 끝이 없고 공부만 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한다.
결론은 이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 심판하신다.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든 은밀한 일을 다 심판하신다.”

//헛되고 헛되고 모든 것이 헛된, 곧 짧고도 짧고 아주 짧은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온다는 시편 110편 시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전도서를 떠올린다.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는 새벽이슬은 짧고도 짧은 아주 짧은 생명력을 노래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해도 인생은 짧다. 이 짧은 인생, 전도자의 마지막 결론에 귀를 기울이자.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 (선악간에) 심판하신다. 영원에 잇대어 사는 길은 영원하신 하나님께 잇대어 사는 길 외에는 없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인생이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으니,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그런데도 인생이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따르지 못하니, 그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다. 임마누엘의 신비다. 전도자는 온전히 알지 못한 임마누엘의 신비다.

전도서 11:1-10 읽기

전도서 11:1-10 읽기

돈은 무역에 투자하여 이윤을 남겨라. 투잘할 때 재난을 만날지 모르니 일곱이나 여덟로 나누어 투자하라. 물을 머금은 구름이 비가 되어서 내린다. 나무가 쓰러지면 그대로 있는다.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간 씨 뿌릴 시기를 놓친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면 추수할 때를 놓친다. 사람은 바람이 다니는 길을, 생명이 잉태되는 길을 알수 없듯이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한다.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부지런히 일을 해라. 이것이든 저것이든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빛을 보고 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해를 보고 산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장수해도 즐겁게 장수해야 한다. 그러나 인생에 어두운 날도 많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가올 모든 것은 어차피 헛되다. 젊은이는 젊음을 즐겨야 한다. 마음과 눈이 원하는 길을 따라 행하지만,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네 마음의 걱정과 육체의 고통을 없애라. 혈기왕성한 청춘은 덧없이 지나갈 것이다.

//인생에 어두운 날도 많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더욱 중요한 깨달음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잠깐의 인생길은 깜깜한 터널을 지나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한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열차에 탔다면 즐겨야 한다. 달걀도 사먹고, 김밥도 사먹고, 바나나 우유도 사먹고. 함께 앉은 사람과 나눠먹고 얘기도 나누고 하면 좋지 않은가? 가난한 자들이 보이면 그들에게도 사주고… 열차가 목적지까지 잘 갈지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남들보다 먼저 가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르다. 열차에서 행한대로 하나님은 판단하신다.

전도서 10:12-20 읽기

말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지혜로운 말을 하면 덕을 본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한 말로 망한다.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어리석음으로 시작해서 사악한 광기로 끝난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는 말을 하고 또 한다. 알지도 모르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어리석은 자는 떠들어 댄다. 어리석은 자는 제집으로 가는 길조차 못찾는다. (천국이야 말로 우리가 찾아가야 할 집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일을 해도 피곤하기만 하다.
어린 왕을 제대로 보필하지 않고 대신들이 주색에 빠져 있는 나라는 저주 받은 나라다. 술은 건강을 위해서만 마시는 대신들이 있는 나라가 복을 받은 나라다. 게으른 자들은 집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잔치는 기뻐하려고 벌인다. 포도주는 인생을 즐겁게 한다. 돈은 만사를 해결한다.
마음 속으로라도 왕을 욕하지 말아라. 잠자리에서라도 존귀한 이를 저주하지 말아라. 낮 말을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지혜로운 말은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 형제를 미워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어리석은 말은 말씀을 듣고 행하지지 않으면서도 ‘주여 주여’ 하고 부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떠드는 말이다. 알지도 모르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떠드는 것이다. 전도자는 이것을 제 집으로 가는 길 조차 못찾는다고 비유한다. 전도자는 어리석은 자들의 나라를 술취하고 게으른 (방탕한) 나라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자들의 나라는 성령충만의 나라다. 성령충만의 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나라다. 보혜사 성령께서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해주신다. 성령충만의 나라가 곧 하나님의 나라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낮 말을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만사에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불만’이라고 누군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