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10:1-11 읽기

전도서 10:1-11 읽기

향수에 죽은 파리가 빠지면 향수에서 악취가 나듯이 아주 작은 일로도 지혜를 가리고 명예를 더럽힌다.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옳은 일 쪽으로 기울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그릇된 일 쪽으로 기운다. 어리석은 자는 길을 갈 때, 생각 없이 자기의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통치자가 화를 낼 때, 자리를 지켜야 한다. 침착하면 큰 잘못을 막을 수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
전도자는 세상 통치자들에게서서 큰 허물을 본다. 어리석은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히고 존귀한 사람을 낮은 자리에 앉힌다. 종은 말을 타고 상전은 종처럼 걸어서 다니는 일도 있다고 한다. 자기가 판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담을 허물어 뱀에게 물릴 수가 있다. 석수는 돌에 다칠 수 있고, 목수는 나무에 다칠 수 있다. 도끼가 무딘데도 그 날을 갈지 않고 쓰면 힘이 더 든다. 그러나 지혜는 사람을 성공하도록 돕는다. 뱀을 부리지 못하고 뱀에게 물리면 땅꾼으로 쓸데가 없다.

//전도자가 깨닫는 것은 평범한 사람도 다 아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양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지혜로운 길을 가기보다 어리석은 길을 택한다.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바퀴로 가는 자전거….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 도 에드벌룬 떠있건만 독사에게 잡혀 온 땅꾼만이 긴혀를 내민다.” 김광석의 번안곡 가사와 같은 세상이다. 포수가 잉어를 잡고 태공이 참새를 잡는 세상. 석수가 돌에, 목수가 나무에 다치듯이,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이다. 소위 전문가가 넘쳐나도 옳은 일 쪽으로 마음을 쓰는 지혜로운 사람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을, 아니 이웃을 섬기기보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줄 모르고 다들 자기 배를 섬기기 때문이다. ㅠㅠ

전도서9:11-18 읽기

전도서9:11-18 읽기

전도자는 빠른 사람이 항상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고, 용사라고 해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며, 지혜가 있다고 해서 먹을 것이 생기는 것도, 총명하다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며, 배운 사람이 늘 잘 되는 것도 아니요, 불행과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그런 때가 언제 자기에게 닥칠지 모른다.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고 새가 덫에 걸리는 것처럼 사람들도 갑자기 덮치는 악한 때를 피하지 못한다.
전도자는 지혜로운 사람이 겪는 일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작은 성에 사는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그의 지혜로 그 성을 힘 센 왕의 공격으로부터 구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 가난한 사람을 오래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지혜가 무기보다 낫다고 말했왔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의 지혜가 멸시를 받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의 말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전도자는 어리석은 통치자의 고함치는 명령보다, 차라리 지혜로운 사람의 조용한 말을 듣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지혜가 전쟁무기보다 더 낫다. 그러나 죄인 하나가 많은 선한 것을 망칠 수 있다. (미꾸라지 한 미리가 물을 흐리고, 누룩이 만죽 전부를 푸풀린다.)

//공은 둥글다. 그래서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이기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때가 언제 닥칠지 모른다. 카타르월드컵에서 독일도, 스페인도, 브라질도 악한 때를 피하지 못했다. 평소 백패하더라도 월드컵 때 전승하면 얼마나좋을까? ㅎㅎ //축구에 관한한 한국은 가난한 나라다. 아시아에서는 알아준다고… 그러나 한국 축구를 알아주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은 우리만 기억한다. 기록에만 남아 있는 4강이지, 축구로는 이번 월드컵 예선도 통과하지 못한 이탈리아 명성에도 훨씬 못미친다. //지혜가 멸시를 받는 것일까? 아니면 가난이 멸시를 받는 것일까? 전도자는 가난한 사람의 지혜가 멸시 받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받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부자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자랑해도 멸시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수치심도 모르고 정의도 모르니 이보다 악한 때가 있을까? //죄인 하나가 선한 것을 망칠 수 있다면 의인 하나가 악한 것을 정결케 할 수도 있다. 예수께서 오신 이유다. 우리가 이땅에서 예수를 따라 살아야 하는 이유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미꾸라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후자가 더 낫다. 하나님 보시기에 더 좋다.

전도서 9:1-10 읽기

전도서 9:1-10 읽기

전도자가 깊이 생각하고 깨달은 것은 의로운 사람들과 지혜로운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나님이 조종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들과 지혜로운 사람들의 사랑과 미움까지도 조정하신다. 사람은 아무도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일을 알지 못한다.
의인이나 악인이나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깨끗한 사람이나 더러운 사람이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나 드리지 않는 사람이나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 착한 사람이라고 죄인보다 나을 것이 없고, 맹세를 하든 안 하든 차별이 없다.
모둑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잘 못된 일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은 마음에 사악과 광증을 품고 살다가 결국에는 죽는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 개라고 해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 살아 있는 자는 적어도 자기가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든다.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보상이 없다. 사람들은 죽은 이들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죽은 이들에게는 사랑도 미움도 없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한 일에도 다시 끼여들 자리가 없다.
전도자는 하나님이 좋게 보아주실 때, 즐거이 음식을 먹고 기쁜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한다. 옷을 깨끗하게 입고 머리에는 기름을 바르라고 권한다. 세상살이가 헛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리라고 권한다. 가정이 세상에서 애쓴 수고로 받는 몫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어떤 일을 하든지 힘을 다해서 하라고 권한다. 죽은 후에는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다

//전도자가 아무리 깊이 생각하고 깨달았다고 하여도 그것은 잠깐의 덧없는 생의 결론이다. 그래서 의인이나 악인이나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깨끗한 사람이나 더러운 사람이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나 드리지 않는 사람이나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삶은 다르다. 세상에서 보기에는 똑같이 죽음으로 마감하는 삶인데, 임마누엘의 삶은 영원하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어찌 죽은 후의 일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예수께서는 영생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전도자는 하나님이 좋게 보아주실 때를 경험한다. 먹고 마시고 옷을 단정히 입고 기름을 바르며 사랑하는 아내와 즐거움을 누리며 가정을 위해 애쓰는 수고를 하나님께서 주신 몫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 후에 대해 아는 것이 1도 없어도 하나님을 알기에 영생을 맛보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일상의 소소하 기쁨을 영원하신 하나님과 잇대어 누리라고 하신다. 잠깐의 삶도 영생으로 바꾸라고 하신다. 임마누엘.

전도서 8:9-17 읽기

전도서 8:9-17 읽기

전도자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다고 말한다. 특별히 권력을 쥔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들에게 고통받은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도 알았다. 전도자는 악한 사람들을 묻고 돌아 오는 길에 사람들이 ㅡ 악한 사람을 칭찬하는 것도 보았다. 이런 모습에 전도자는 허탈한 마음을 가눌 수 없다고 말한다.
전도자는 사람들이 서슴지 않고 죄를 짓는 이유를 악한 일을 하는데도 바로 벌이 내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형통하고, 악한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하는 일이 잘 될리 없고 일찍 죽는다’ 하고 말을 하지만, 전도자가 보기에는 악한 사람이 백번 죄를 지어도 여전히 살아있다.
전도자가 보기에는 악한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을 오히려 의인이 받고, 의인이 받아야 할 보상을 악인이 받는다. 그러니 저도자가 어찌 헛되다고 말할지 않을 수 있을까?
전도자은 인생을 즐기라고 권한다. 먹고 마시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세상에 없다. 이것이 하나님께 허락받은 한 평생을 기쁨으로 사는 것이다.
전도자는 땅위에서 밤낮 수고하는 사람의 수고를 살펴보면서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구했다. 전도자는 아무도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다고 주장할 수 있고 지혜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그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고, 정말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의 뜻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는 권선징악을 가르치고, 사필귀정을 말하지만,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이렇지 않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고 가르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처세로 이 땅에서 형통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횡행하는 시대다. 우리도 전도자처럼 이런 세상에 허탈해하고 헛되다고까지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라고 노래까지 한다. 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전도자는인생을 즐기라고 권하지만 성도는 하나님을 즐겨야 한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밖에 없다. 성도라고 하나님의 섭리를 모두 깨달아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깨달을 수 없어도 창조주 하나님편에 서야하는 것이 인생이다.

전도서 8:1-8 읽기

전도서 8:1-8 읽기

어떤 사람이 지혜있는 사람인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누구인? 저자는 지혜는 사람의 얼굴을 밝게하고 굳은 표정을 바꿔준다.
전도자 왕의 명령에 복종하라고 권한다. 왕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이 싫어하는 일은 고집하지 말고, 왕 앞에서 물러나야 한다. 왕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왕의 말이 곧 최고의 법이다. 따라서 왕에게 따져서는 안 된다. 왕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이 안전하다. 지혜있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왕에게 순종해야 하는지 안다.
사람이 미래를 몰라 크게 고통을 당한다 해도, 모든 일에는 알맞은 때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래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바람을 다스려 그치게 할 수 없듯이, 자기가 죽을 날을 피하거나 연기시킬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전쟁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행악자는 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왕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다들 왕처럼 산다. 미래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생각에 옳은대로 산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모든 일에 알맞은 때와 방법을 알 수 있으랴. //성도는 자기 왕권을 내려놓고 주님을 나의 왕, 나의 주로 모시는 사람이다. 왕이신 주님께 나의 소견으로 따져서는 안 된다. 주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이 안식을 누린다. 지혜란 어떻게 주님께 순종하는지 아는 것이다. //전도자는 결국 왕중의 왕이신 창조주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교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