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7:15-29 읽기

전도서 7:15-29 읽기

전도자는 헛된 세월을 살면서 의롭게 살다가 망하는 의인도 보고, 악한 채로 오래 사는 악인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 너무 의롭게 살지도, 너무 슬기롭게 살지도 말라고 교훈한다. 과유불급이랄까 너무 의로운 것도 너무 슬기로운 것도 스스로를 망치는 길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너무 악하게도, 너무 어리석게도 살지 말아야 한다. 너무 악하고 너무 어리석으면 제 명도 다 못 채우고 죽는다.
양 극단을 취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한다.
지혜는 슬기로운 한 사람을 성읍을 다스리는 통치자 열 명보다 더 강하다.
좋은 일만 하고 잘못을 전혀 저지르지 않는 의인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남들이 하는 말에 마음을 쓰지 말아라. 네 종이라도 너를 욕할 수 있다. 너 또한 남을 욕한 일이 많다는 것을 너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나는 인생을 지혜있게 살려고 시험해 보았다. 지혜있는 사람이 되려고 결심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지혜가 나를 멀리하는 것을 깨달았다. 지혜라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멀고 깊다. 누가 지혜를 알 수 있겠는가?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지혜가 무엇인지 사물의 이치가 어떤지 연구하고 조사하고 이해하려고 했다. 사악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우매가 얼마나 미친 일인지 깨달으려고 정신을 쏟았다. 나는 올가미와 같은 여자의 마음이 덫과 같고 손이 쇠사슬과 같은 여자는 죽음보다 쓰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여자를 피하는 길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길 뿐이다. 죄인은 그런 여자에게 걸려들고 만다.
전도자은 자신이 깨달을 것을 말한다. 사물의 이치를 하나하나 찾아가도 아직 온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남녀를 불구하고 하나도 찾기 힘들다. 다만 전도자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평범하고 단순하게 만드셨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과유불급을 피한다. 양극단을 피한다. 내 고집이 극단을 취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단순하게 지으셨다. 태양이 떴다 졌다를 반복하듯, 바람이 향방없이 부는듯하여도 멈추지 않듯이, 강물이 흘러흘러 바다로 들어가듯이, 자연만물은 하나님이 지으신대로 정직하게 행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한 예외가 없다. 메뉴얼대로 움직이니 고장이 없다. 그런데 오직 사람만이 꾀를 낸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라고 핑계를 대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지으신대로 단순하게 살지 않겠다는 불순종이다. 메뉴얼대로 살지 않으니 항상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길은 하나님께서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다. 지혜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정작 내뜻대로 행하면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만다. 메뉴얼대로 하자.

전도서 7:1-14 읽기

전도서 7:1-14 읽기

명예가 값비싼 향유보다 더 낫다.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더 중요하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 가는 것보다 더 낫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왜야하면 얼굴을 어둡게 하는 근심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을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룬다고 고린도 성도들에게 말한다.)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잔치집에 가 있다.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더 낫다. 어리석은 사람의 웃음소리는 가마솥 밑에서 가시나무 타는 소리 같다. 이 또한 헛되다. 탐욕은 지혜로운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 뇌물은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일은 시작할 때보다 끝낼 때가 더 좋다. 자만할 때보다 참을 때가 더 낫다. 급하게 화내지 말아라. 분노는 어리석은 사람의 품에 머문다. 구관이 명관인 이유를 묻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지혜는 유산을 받는 것만큼 좋다. 이 세상에 살면서 그 덕을 보기 때문이다. 돈이 사람을 보호하듯, 지혜도 사람을 보호한다. 그러나 지혜가 돈보다 더 좋은 까닭은 지혜는 그 사람의 목숨을 살려준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이 구부려 놓으신 것을 펼 사람은 없다. 좋을 때 기뻐하고 어려울 때는 생각해라. 하나님은 좋은 때도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 인간사새옹지마다. 사람은 제 앞일을 알지 못한다.

//지혜와 돈모두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나 지혜가 돈보다 더 좋은 까닭은 지혜는 사람의 목숨을 살려주기 때문이다. 이런 통찰력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진리를 깨달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잔치집보다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전도자는 말한다. 하나님께서 인생길을 구부려 놓으셔서 사람으로 하여금 일희일비하게 하신다. 그러니 좋은 때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나, 어려울 때는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 인간사 새옹지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면 구원을 얻고 세상근심은 사망을 이룬다. 이 지혜가 돈보다 낫다.

전도서 6:1-12 읽기

전도서 6:1-12 읽기

전도자는 세상에서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잘못되고 억울한 일을 본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와 재산과 명예를 원하는 대로 다 주시면서도 그 사람이 그것들을 즐기지 못하게 하시고 엉뚱한 사람이 즐기게 하시는 것이다. 전도자는 이것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요 통탄할 일이라고 한다. (과연 그런가?) 전도자는 자녀를 백명이나 낳고 장수하면서도 그 재산으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죽고, 죽은 다음에 제대로 묻히지 못한다면 사산되어 나온 아기만 못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물론 사산되어 나온 아기처럼 뜻없이 왔다가 어둠속으로 사라져 영원히 잊혀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세상을 보지 못하고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해도 그 아이는 산 사람보다 더 편하게 안식을 누린다! 천년씩 두번을 살아도 자기 재산으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별 수 없는 인생이다. 결국 죽는다.
사람이 먹으려고 수고하지만 식욕을 채울 길은 없다. 슬기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보다 나은 것이 있을까? 가난한 사람이 세상 살아가는 법을 안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생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헛되다. 자족하는 것이 욕심에 사로잡혀서 헤매는 것보다 낫다. 해아래 새것이 없듯이 인생이 무엇인지 이미 알려졌다. 사람은 자기보다 강한 이와 다툴 수 없다. (하나님을 이기려고 대적하지 말아라)
말이 많으면 빈말이 많아진다. 많은 말이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그림자처럼 지나가고 짧고 덧없는 인생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누가 알까? 사람이 죽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사람은 죽음 앞에 공평하다. 지혜는 이것을 아는 것이다. 가지려는 물욕이나 먹으려는 식욕을 채울 길은 없다. 그렇다고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는 것, 내가 가진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것을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에 사용하는 것이야 말로 즐거움을 누리는 가장 좋은 길이다. 사람이 자기보다 강한 이와 다투지 않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이기려고 대적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인생은 짦고 덧없다. 누구나 죽는다. 죽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아는 것은 내 뜻대로 살면 내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다. 하나님의 뜻대로, 곧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것이요 영생이다. 내게 주어진 것에 자족하고, 선한 일에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고, 말씀을 내 마음에 두어야 한다.

전도서 5:8-20 읽기

전도서 5:8-20 읽기

전도자 시절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보고 놀라지 말라고 말한다. 옛적부터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법과 정의를 짓밟는 것, 다른 사람을 감독하려는 욕구가 있었다. 한 나라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왕이다. 가장 높은 왕이 법과 정의를 지킬 때, 가난한 자들을 선대할 때, 백성은 마음놓고 농사를 짓는다.
돈 좋아 하는 사람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한다. 부자도 만족하지 못한다. 결국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헛되다. 재산이 많으면 씀씀이도 많아진다. 그러나 많은 재산도 선하게 쓰지 않으면 눈요기에 지나지 않으니 아무 소용이 없다.
적게 먹든지 많이 먹든지, 막일을 하는 사람은 잠을 달게 잔다. 배가 부른 부자는 잠을 편히 못잔다. 전도자는 아끼던 재산이 그 임자에게 오히려 해를 끼치는 일을 비참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재난을 만나 재산을 잃는다. 자식을 낳아도 그 자식에게 아무것도 남겨 줄 것이 없다. 사람은 모태에서 맨몸으로 나와서 맨몸으로 죽은다. 수고해서 얻은 것을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다. 사람이 온 그대로 돌아가는 것도 비참한 한 일이다.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에 아무 보람도 없다. 평생 어둠 속에서 먹고 지내며, 온갖 울분과 고생과 분노에 시달리며 사는 인생은 비참할 뿐이다.
우리의 인생은 짦고 덧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인생이다. (따라서)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는 것이 마땅하고 좋은 일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몫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에 부와 재산을 주셔서 누리게 하신다. 정해진 몫을 받게 하시며, 수고하며 즐거워하게 하신다. 희노애락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신다. 덧없는 인생살이에 크게 마음쓰지 말라고 하신다. (곧 자족하라고 하신다.)

//전도자가 본 세상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고 법과 정의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굽은 세상이다. 모두가 왕이 되려고 한다. 높아지고 더 가지려는 경쟁이 미덕인 이런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까지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시고 그렇게 사셨다. //사람은 자족을 모른다. 가진자는 더 가지려고 한다. 더 높은 자리에서 갑질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지위가 섬김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듯이 부도 섬김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사람은 맨몸으로 나와서 맨몸으로 죽는다. 기껏 수의 한 벌을 몸에 더 걸칠뿐이다. //서로 섬기면, 사랑하면 권력도 부도 쌓지 않게 된다.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나누면, 수고한 것이 즐겁고 보람이 된다. 인생의 희노애락(애오욕)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누려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자족함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맛보며 사는 것이다. 짧은 인생살이를 염려하지 말고 영원한 나라를 기억할 때 자족할 수 있다.

전도서 5:1-7 읽기


//예배, 기도, 서원 모두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행위다. 들음은 기본적으로 순종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제물을 드리는 것이 예배의 본질인 들음을 방해하는 악이 된다. 나의 필요를 아뢰는 것이 기도의 본질인 하나님의 뜻을 듣는 시간을 빼앗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약속과 감사의 서원을 갚을 수 없어 서원을 미루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내 생각이 많아서다. 하나님이 주신 꿈 대신 내 꿈을 꾸기 때문이다. ////성령이 부어주시는 꿈을 꾸자. 말씀을 주야로 묵상 (듣고 실천)하자. 그러다 보면 복 있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