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9:15-23

민수기 9:15-23

이스라엘 자손이 성막을 세우자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 저녁이 되자 성막 위의 구름은 불처럼 보였다. 이 구름이 늘 성막을 덮고 있었으며 밤에는 불처럼 보였다. 구름이 성막 위로 걷혀 올라가면 이스라엘 자손은 길을 떠났고, 구름이 내려와 성막 위에 머물면 이스라엘 자손은 그 자리를 중심으로 진을 쳤다. 주님은 이렇게 성막 위의 구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지시하다. 구름은 저녁부터 아침까지만 머물 때도 있었고 한 달 또는 여러 달 씩 머물 때도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렇게 주님의 지시에 따라 진을 쳤고, 주님의 지시에 따라 길을 떠났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분부하신 대로 주님의 명령을 지켰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7/03/16/

//구름기둥을 따라 가는 삶! 나의 방향과 속도가 아니라 주님의 방향과 주님의 속도에 맞춰 살라고 하신다. //성도는 말씀을 따라 산다. 그러나 밤에 구름기둥이 잘 안보이듯 말씀이 항상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다. 말씀이 분명하지 않을 때는 보혜사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보혜사 성령께서 말씀이 기억나게 해주시고 말씀을 가르쳐 주시니, 결국 성도의 삶을 인도하는 구름기둥이 된다. //성도는 말씀/성령이라는 구름기둥에 공동체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개인적인 묵상에서 그치면 안 된다. 구름을 향해 서 있는 곳에 따라 구름 진행 방향이 앞뒤좌우가 다를 수 있다. 개인적이면 앞뒤좌우나 동서남북이나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공동체가 바라볼 때는 동서남북은 불변이지만 앞뒤좌우는 서로 반대 방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간의 말씀의 교제가 중요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은 공동체적으로 받아야 한다.

민수기 9:1-14

민수기 9:1-14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이듬해 첫째 달에 주님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은 정해진 때에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정해진 때는 첫째 달 십사일이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했고, 첫째 달 십사일 해거름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은 순종했다.
그런데 시체에 몸이 닿아 부정해진 사람은 유월절을 지킬 수 없었다. 그들이 모세와 아론 앞에 나와서 자신들이 부정하게 되었다고 유월절 제물을 바치지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모세는 주님께 들은 후 답을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부정해서, 혹은 먼길을 떠나 있어서 첫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 예식을 행하지 못한 사람은 그 다음 달 십사일에 유월절 예식을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한달을 미뤄 유월절 모든 규례대로 유월절을 지키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정결한 사람이나 먼 길을 떠나지 않은 사람이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면 주님의 백성에서 끊어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은 정해진 때에 드려야하며, 정해진 때에 드리지 못한 잘못에 대해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살고 있느 외국인이 주 하나님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할 때에도 같은 율례와 규례가 적용된다. 외국인에게나 본토인에게나 같은 율례가 적용되어야 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7/03/15/

//광야에서 유월절(1월 14일)을 행한 다음에 인구조사(2월1일)를 했다.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면 주님의 백성에서 끊어진다. 곧 유월절을 준수함으로 주님의 백성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세었다고 할 수 있다.

민수기 8:1-26

민수기 8:1-26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아론에게 등잔을 어떻게 밝힐 지 말씀하셨다. 아론은 주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등잔을 밝혔다. 등잔대는 금을 두드려, 주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견본대로 만들었다. 주님은 모세에게 레위 사람들을 정결하게 하라고 명하셨다. 레위 사람을 정결케 하는 의식을 알려주셨다. 이 정결의식을 마친후 이스라엘 손이 레위 람들에게 안수해야 레위 사람이 주를 섬기는 일을 맡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속죄제물과 번제물을 바쳐 레위 사람의 죄를 속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모세에게 일러 레위 사람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 앞에 세우고 주 하나님께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그들을 바치라고 하셨다.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레위 사람을 주님의 것으로 따로 갈라 세우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셨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레위 사람은 그들이 맡은 일을 하러 회막에 나아갈 수 있다. 이렇듯 레위 사람은 온전히 주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다. 장자들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레위 사람들 주님의 것으로 삼으셨다. 주님은 사람뿐만아니 짐승의 첫태생도 주님의 것으로 구별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을 이들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접근할 때 재앙을 받지 않게 하셨다.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주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레위 사람들에게 해 주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레위 사람들은 스물 다섯살에 회막에 들어와서 맡은 일을 시작하여 쉰 살부터는 회막 일에서 은퇴한다. 쉰 살이 넘으면 동료들이 회막에서 맡은 직무를 수행할 때에 그들을 도울 수는 있어도 그들이 직접 그 일을 맡아서 하지는 못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7/03/14/

//“오십 세부터는 그 일을 쉬어 봉사하지 아니할 것이나 그의 형제와 함께 회막에서 돕는 직무를 지킬 것이요 일하지 아니 할 것이라.”[25, 26] 레위 사람이 직무를 시작할 나이는 서른에서 스물다섯으로 (그리고 솔로몬 때에는 스물로) 낮아졌다. 그런데 은퇴 나이는 구약에서 일관되게 쉰살로 규정하고 있다. 오십세. 주로 육체적 노동으로 회막일을 지원하던 레위인들에게 있어서 적당한 나이일지 모른다. 이때쯤되면 제사장의 지시를 들을 필요조차 없을지 모른다. 소위 눈감고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노하후가 쌓였을 것이다. 다만 육체적으로 힘이 부칠뿐. 그러나 회막일은 끝까지 제사장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 일이다. 능력/힘보다 순종이 필요한 일이다. //쉰. 지금으로 하면 몇살 일까? 예순이나 일흔? 하여간 은퇴후에는 돕되 일하지 말라고 한다. 도와라 그러나 일하지는 말아라. 선임자나 연장자는 자신의 경험과 경륜으로 후임자나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을 막아서는 안된다. 다만 하나님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도록 도우면 된다. 늙은 양이 목자의 음성을 잘 알아 들을까? 눈과 달리 사람은 자신의 귀가 어두워 지는 것을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주위 사람은 금방 안다고 한다. 영적인 귀가 어두워 지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영적 보청기가 필요하다면 은퇴해야 한다. 신실한 믿음의 후배요 자녀가 나의 영적 보청기임을 알아야 한다.

민수기 7:12-89

민수기 7:12-89

각 지파의 지도자들이 한 사람씩 십이 일에 걸쳐 제물을 바쳤다. 제일 먼저 유다 지파 나손이 바쳤다. 은쟁반 하나 은대접 하나, 그리고 이 두 그릇에 기름으로 반죽한 곡식제물, 십세겔 나가는 금잔에 가득한 향,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 일 년 된 새끼 숫양 한마리, 숫염소 한마리, 황소 두 마리, 숫양 다섯마리, 숫염소 다섯마리, 일 년 된 새끼 숫양 다섯 마리를 바쳤다. 둘째 날에는 잇사갈 지파 느다넬이 나손과 같은 제물을 바쳤다. 이렇게 세쨋 날에는 스블론 지파 엘리압, 네쨋 날에는 르우벤 지파 엘리술, 다섯째 날에는 시므온 지파 슬루미엘, 여섯째 날에는 갓 지파 엘리아삽, 일곱째 날에는 엘리사마, 여덟째 날에는 가말리엘, 아홉째 날에는 베냐민 지파 아비단, 열째 날에는 단 지파 아히에셀, 열한째 날에는 아셀 지파 바기엘, 열두째 날에는 납달리 지파 아히라가 같은 제물을 바쳤다.
제단에 기름을 부어서 제단을 거룩하게 하던날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바친 제단 봉헌 제물은 모두 은쟁반 열둘, 은대접 열둘, 금잔이 열둘이요, 이들 은은 성전 세겔로 모두 이천사백 세겔이고, 향을 가득 담은 금잔의 금은 모두 백이십 세겔이다.
번제물로 수송아지 열두 마리, 숫양 열두 마리, 일년된 숫양 열두 마리와 곡식제물. 속죄제물로 숫염소 열두 마리, 화목제물로 황소 스물네 마리, 숫양 예순 마리, 숫염소 예순 마리, 일년 된 숫양이 예순 마리였다.
모세는 주님께 말씀드릴 일이 있을 때마다 회막에 갔다. 그때마다 모세는 증거궤와속죄판 위, 곧 두 그룹사이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주님과 모세는 대화했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7/03/13/

//오늘 본문 대부분은 이스라엘 열두 지도자가 드린 헌물에 대한 반복적 기록이다. 이렇게 획일적인 헌물을 열두번이나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머리에 남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한가지의 헌물로 한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인상이다. 십이일 반복해서 드려진다. 결국 매일 열두 지파 모두 같은 제사에 참여한 것이다. 너와 나의 예배가 다르지 않다. 우리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 성도가 기름부음을 받아 거룩해 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같다. 비록 그 받은 은사가 다르다고 해도 하나님께는 하나로 드려진다. 하나의 교회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세와 하나님과의 대화하는 방식이 짧게 기록된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껫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89] 말하러 들어간 사람은 모세다. 그런데 실제로 말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모세와 하나님의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가 화자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누가 청자인지 명확히 밝혀주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기도하러 (하나님께 뭔가 말하려 할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내말만 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ㅠㅠ. 때론 나의 넋두리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지만 (그러니 결혼하라. 아내에게는 남편이 남편에게는 아내가 그런 좋은 친구다. 물론 하나님께도 넋두리를 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좋다. 때론 오늘 본문처럼 길고 질리도록 반복되지만 들어야 한다. ////나는 선한목자의 목소리를 아는가? 반가운 목소리의 전화를 받으면 오래 수다를 떨지만, 목소리를 모른다면 수화기를 냉큼 내려놓게 되지 않던가?

민수기 7:1-11

민수기 7:1-11

모세는 성막을 세우고 나서, 성막에 기름을 부어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했다. 제단과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에도 기름을 부어 그것들을 거룩하게 했다. (먼저) 각 지파의 인구조사를 담당했던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제물을 바쳤다. 그들은 수레 여섯 대와 황소 열두 마리를 바쳤다.
주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바친 제물을 받아 레위 사람에게 주어 회막 일에 쓰도록 하라고 명령하셨다. 게르손 자손에게 수레 두 대와 황소 네마리, 므라리 자손에게 수레 네 대와 황소 여덟 마리를 주어 맡은 일에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성소의 기구를 나르는 고핫 자손에게는, 그들이 맡은 거룩한 임무가 어깨로 메고 다니는 일이었기 때문에 수레도 황소로 주지 않았다.
제단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던 날, 지도자들은 제단 봉헌 제물을 제단에 바쳤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루에 지도자 한 사람씩 제단 봉헌 제물을 가지고 오라고 명하셨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7/03/12/

//거룩한 물건이어서 기름을 부은 것이 아니라 기름을 부으니 거룩해졌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거룩해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서 거룩해진다. //물건은 기름을 부으면 거룩하게 구별되지만, 성도는 기름부음에 순종함으로 거룩해진다. //우리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다. 요한은 첫번쩨 편지에서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요일 2:27] 하고 교훈한다.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우리도 기름부음으로 거룩해 졌다. 우리의 거룩은 기름을 부으신 주께 근거가 있다. 나의 거룩함은 기름부음이 가르쳐주신 대로 주 안에 거하므로 유지된다. 외적으로는 내가 (우리가) 의를 행하므로 내가 (우리가) 주안에 거하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된다. //지도자들이 바친 수레와 황소가 필요에 따라 레위 세 가문에 나뉘어지듯, 성도도 필요에 따라 은사를 받는다. 많이 받는 사람도, 적게 받는 사람도 심지어 특정 은사는 아예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름부음의 결과, 곧 성령의 열매는 다르지 않다. 주께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헌신이 모여 공동체의 예배로 드려진다. 사람마다, 매일 드려지는 삶이 다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