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14-22

마태복음 8:14-22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니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 손에 손을 대시니 베드로의 장모는 일어나서 예수께 시중을 들었다. 날이 저물었을 때 마을 사람들이 귀신들린 사람들을 많이 예수께 데려왔고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셨고, 병자들도 모두 고쳐주셨다. 마태는 이것이 ‘그는 몸소 우리의 병약함을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다.’ 라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이라고 해석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갈리리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셨다. 그때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예수께서 그 율법학자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은 ‘주님, 내가 먼저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그에게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어라’ 하고 대답하셨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1/30/

//장모라는 단어는 신약에 몇번 나오지 않는다. 구체적인 사람을 가르키는 경우는 베드로의 장모가 유일하다. 베드로의 장모가 베드로 때문에 아프기 전부터 예수님을 수종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베드로의 장모이기 전에 예수님을 따르며 수종든 많은 여인들 중의 한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역발상을 한다면 베드로의 회심에 장모의 역할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 예수님은 치유에도 주도권을 가지셨다. 나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려는 예수님의 뜻이다. 천국은 이런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천국을 이땅에서도 맛보는 삶이 제자의 삶이다. 한 서기관의 고백처럼 내가 따르겠다고 결심한다고 따를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니다. 제자의 삶은 이 땅에서는 거처가 없는 삶이다. 예수 안에 거처를 삼는 삶이다. 또 다른 제자의 바람처럼 이땅에서 상속을 받고자 하는 삶도 아니다. 하늘 아버지의 상속자가 되는 삶이다. 오히려 부모도 함께 하늘 아버지의 상속자가 되도록 인도하는 삶이어야 한다. 예수를 따르는 삶이다.
“너는 나를 따르라.”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가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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