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1-13
예수께서 배를 타고 다시 자기 마을에 돌아오셨다. 사람들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께로 날라왔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기운을 내라, 아이야,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율법학자들이 듣고,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속으로 말했다. 예수께서 그들이 속으로 하는 생각을 아시고 그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거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에 어느쪽이 더 말하기 쉬우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들이 알게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중풍병자에게 “일어나서, 네 침상을 거두어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하셨다. 그는 일어나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무리는 이 일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런 권한을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예수께 그곳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태는 예수를 따라갔다. 예수께서 식사중에 많은 세리와 죄인이 오자, 예수와 그 제자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자리를 같이 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과 어울려 음식을 드시오?”하고 따졌다. 이것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하고 말씀하셨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2/01/
//’집으로 가거라’ vs ‘나를 따라 오너라’ – 친구들의 믿음으로 죄 용서를 받은 중풍병자에게는 ‘침상을 거두어 집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신 예수께서, 죄인들의 친구라고 불리는 세리 마태에게는 ‘나를 따라 오너라’ 부르셨다. 성도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과 특별한? 일에 부르심을 받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말씀에 대한 순종에는 차이가 없다. ‘가라’ 하시면 가면되고, ‘오라’ 하시면 오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속으로 이런 저런 악한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도 율법학자들은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권위’를 보지 못한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저들은 예수께서 만나는 사람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한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미 이런 태도는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가르치시지 않았던가?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라는 말씀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는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 곧 순종의 삶을 살아내는,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글깨나 배운 마태가 이제 세관 장부 대신에 복음서를 쓰게 된것에 주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