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1-12
분봉왕 헤롯은 예수의 소문에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 부활하여 이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했다. 헤롯은 자신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차지한 일을 옳지 않다고 요한이 말하자, 차마 요한을 죽이지는 못하고, 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마침 헤록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춤으로 헤롯을 즐겁게 하자, 그만 헤로디아의 딸에게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헤로디아의 딸은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하였고, 헤롯은 괴로웠지만 자신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보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했다. 헤롯은 약속대로 요한의 머리를 헤로디아의 딸에게 주었고, 헤로디아의 딸은 요한의 머리를 헤로디아에게 가져갔다.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의 시체를 수습하여 장사하고 예수께 이 사실을 알렸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2/20/
//세상 임금 헤롯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으면서 요한의 부활을 떠올렸다. 요한의 부활의 능력이 예수님 안에서 역사한다고 생각했고 신하들에게도 말했다. 그러나 오늘 핵심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남, 즉 부활이 아니라 요한의 죽음이다. 선지자 중의 선지자요,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라도 죽는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졌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는 영생한다. 영생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서로 안다는 것은 사귐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삼위 하나님과 사귐이 없는 사람은 죽은자요 사귐이 있는 자라야 영생하는 자다. 영생하는 자는 이미 하나님나라에서 사는 것이다. //요한은 죽었다. 세상적으로보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킹메이커로 자처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요한은 철저하게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살았다.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자 요한은 물러나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여야 한다.” (요 3:30 공동번역) 라고 자신의 삶을 마무리 했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하고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요한처럼 작아지고, 내가 예수님을 따라 도리어 섬기려고 할 때, 나의 죽음에서 부활의 능력을 떠올리지 않을까? ////목이 베여 쟁반에 오르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시는 모습은 얼마나 허망한가? 그러나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살아간 것이다. 성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허망한 죽음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