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8:11-20
//잃은 양 한 마리와 아흔아홉 마리 양들의 가치를 비교하는 것은 넌센스다. 경제적으로 아흔아홉 마리가 백배 가까이 더 크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잃은 양을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한 마리가 경제적으로 더 가치가 크기 때문이 아니다. 잃은 것을 찾았기 때문이요, 아흔아홉에 하나가 더해져 온전해졌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잃었다’ 라는 단어는 범죄하게 하는 신체의 일부를 ‘내버리다’ 라는 단어와 같다. 그렇다면 잃은 양을 찾았다는 것은 빼버리거나 잘라버려야 할 신체의 일부를 도로 찾은 것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이어지는 범죄한 형제를 대하는 방법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형제가 범죄하거든 이렇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곧 형제를 잃어버릴, 찍어내버려야 할 경우가 생기면 해야할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먼저 개인적으로 만나 권면해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두세 사람과 함께 타일러야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차원에서 말을 해야 한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신다. //교회(공동체)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충격이다! (실족케 하는 사람에게는 연자 맺돌 목에 달고 스스로 물에 빠져 죽으라고 하셨는데) 실족당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을 찍어버리라고 하지 않으신다. 원수라도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해야 하듯이, 가라지를 미리 뽑지 않듯, 이방인과 세리와도 친구가 되라고 명령하시는 것 같다. //교회공동체가 매고푸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임마누엘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해야하는 일이 바로 잃은 양을 찾는 것이다.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들은 잃어버린 양과 같다. 찍어 내버려야 할 지체가 아니라 도로 찾아야 할 지체다. 찍어버리는 도끼는 오직 농부이신 하나님의 손에 있다. 우리가 휘둘러야 할 기도는 잃은 양 한마리를 찾기 위한 기도여야 한다. 그곳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이요 하나님의 나라다.
////18절의 말씀은 16장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하신 말씀과 같다. [예수님은 또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고 하신다. 천국 열쇠란 무엇인가? 어렵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세례요한이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이듯이 베드로 또한 천국에서 세례요한만큼 작은 자라는 의미다. 천국 열쇠를 가지고 천국 문을 열고 닫는 일을 해야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는 바리새인들이 천국문 앞에서 마치 열쇠를 가지고 있는 듯이 행세를 했지만 예수님은 저들을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라고 책망을 하신다. (마23)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는 열쇠가 없었다. 천국열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결국 천국열쇠를 주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고 예수님이 함께 하셔서 천국 열쇠를 담당하는 자로 살 것이다. 결국은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삶이다. 그러니 열쇠를 받았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문을 열어주고 닫는 일이 권세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번에는 베드로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합심하여 기도하는 두 사람에게도 (여기서 무엇이든지는 가장 좋은 것, 가장 필요로 한 것을 의미한다) 천국열쇠를 주신다고 하신다.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바로 그 곳에 주님이 함께하신다고 선언하신다. 임마누엘이다. 16장 묵상을 확인시켜 주신다. 주님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천국열쇠다. 내가, 우리가, 교회가 임마누엘임을 보여줄 때 천국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