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5:22-41

민수기 15:22-41

(22-31) //실수냐 고의냐 – ‘죄’라는 단어는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빗나갔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양궁에서 화살을 과녁 가운데를 맞히면 10점이다. 가운데서 벗어날 수록 점수는 차감된다. 과녁을 벗어나지 않는 한 점수가 주어진다. 올림픽 양궁에서 사선에 선 선수는 과녁 중앙을 노린다. 그러나 모든 화살이 10점은 아니다. 9점도 8점도 있고 더러는 6점도 심지어 과녁에서 빗나가 0점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관중의 입장에서 선수가 일부러 0점을 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람의 영향이든 관중의 소음이든, 선수가 극도로 긴장을 해서든 실력이 아니라 안타까운 실수라고 생각한다. 부지중에 저지른 죄는 이런 실수다. 과녁의 정중앙을 노렸지만 맞히지 못한 경우다. 이런 죄는 속죄를 통해 용서받는다. 그러나 고의로 지은 죄는 다르다. 성도가 지은 죄는 용서받고, 불신자가 지은 죄는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과녁을 놓친 죄는 용서받고, 잘못된 과녁을 향해 의도적으로 지은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 하나님나라의 원리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데는 10점도 있고 심지어 빵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스리면 10점을 맞혀도 다른 사람의 과녁을 맞추었기 때문에 빵점처리된다. (올림픽 사격 결승에서도 이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2004년 아테네에서도 2020년 도쿄에서도. 물론 그들은 고의로 다른 사람의 과녁을 맞춘 것은 아닐 것이다.)
(32-36)//안식일에 일을 한 사람에 대한 판례다. 안식일 준수는 십계명에 포함된 명령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안식일에 나무를 한 사람에 대해 즉결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심지어 모세도 이 사건의 결정을 주님께 묻고 판결했다. 실수일까 고의일까를 따졌던 것일까? 그만큼 사람의 생명을 취하는 판결은 신중해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실수로 죄를 지었는지, 고의로 죄를 범했는지 알 수 없다. 죄를 지은 당사자와 주님만 알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죄)를 판단할 때는 주님께 맡겨야 한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라도 주님께 묻고 결정했다. 우리 중에 죄 없는 자가 누구랴. 우리는 자비와 긍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자비와 긍휼을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37-41) //옷에 술을 다는 것은 주의 말씀(명령)을 기억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다. 주의 명령을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마음 내키는 대로 따라하거나, 우리 눈에 좋은 대로 따라하게 된다. 방탕하게 된다. 성경을 들고 다닌들 뭘하랴! 주의 말씀은 부적과 다르다.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말씀을 암송하는 것만으로는 약간의 유익이 있을 뿐이다.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한다. 실천을 해야 주님 앞에 거룩하게 된다고 분명히 선언한다(40절). 우리의 하나님, 곧 주님의 말씀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7/03/30/
////히브리어 단어는 참 재미있다. 고의라는 히브리 단어는 19, 20, 21 에서 세번 반복된 제사 방법, ‘거제’와 연관되어 있다.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20] 에서 ‘들어 드리다’와 ‘고의’는 같은 단어라고 한다. ‘고의범죄’는 하늘을 향해 주먹을 드는 (팔뚝질 하는 욕) 비방이 되니 ‘거제’ 즉 ‘하늘을 향해 헌물을 드리는 제사’의 반대행위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