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1-10

민수기 14:1-10

가나안 백성이 자신들보다 강해 쳐올라갈 수 없다는 열 정탐꾼의 말에 소동이 일어났고, 온 이스라엘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했다. 그리고 “차라리 이집트에서 죽었더라면, 아니 이 광야에서라도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라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모세와 아론에 대한 원망은 “주님은 왜 우리를 이땅으로 끌고 와서 칼에 맞아 죽게 하시는가? 왜 우리 가족을 포로로 잡히게 하시는가?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하며 주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 대신 새로운 우두머리를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선동하기 시작했다.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호 엎드렸다. (모세와 아론마저도 온회중 앞에 사죄하려는가?)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슬픔에 겨워 자신들의 옷을 찢으며 온 회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탐지하고 온 땅은 매우 좋은 땅입니다. 주님게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제발 주님을 거역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의 방어력은 사라졌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이스라엘 온 회중은 그들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다. 그러자 주님의 영광이 회막에서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타났다.

//매우 좋은 땅 –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말씀하신 그런 좋은, 아름다운 땅이다. 목자가 양들을 인도해서 들어갈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다. 그런데 땅을 보지 않고 거주민을 보고 불평을 하는 것은 목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양들의 태도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어떻게 지나왔는지 새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푸른초장 쉴만한 물가와 다름 없이 매우 좋은 땅이 아니었던가? 가짜 뉴스에 좋은 땅이 사람을 삼키는 땅이 되어버렸다.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홍해)바다가 이집트를 삼켰듯이, 어떤 땅이든 사람을 삼킬 것이다. 그러니 핵심은 그 땅이 문제가 아니라, 그 땅의 거주민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함의 여부다. 만사가 그렇다. 주님과 함께 할 때가 가장 좋은 때요, 주님과 함께 하는 곳이 가장 좋은 땅이다.
//우리의 밥 –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가나안이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밥이었다. 그런데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그 땅의 사람들에게 밥이 될까 두려웠다. 술에 취하할까봐 전혀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태도랄까? 이런 두려움은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들의 종착역이다.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면 먹어야 할 밥에게 먹힐 일이 없다. 술에 취하지 않는 것보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을 바로 알 수 있다. 주님을 알 때 두려움은 사라진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좋은 예다.

https://quietwaters.blog/2017/03/25/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1,32]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가치관을 따라 살지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나라의 가치관을 가지고 이땅을 살려고 하면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온 회중의 마음과 같을 것입니다. 두려움이 앞설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10:2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아니 약 600,000:2가 맞겠죠)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적은 무리에 속하고 싶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를 따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며 살고 싶습니다.

민수기 13:21-33

민수기 13:21-33

열두 정탐꾼은 가나안 땅을 샅샅이 탐지했다. 그들은 에스겔 골짜기에서 포도 한 송이가 달리 가지를 꺾어서 두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둘러 메었다. 석류와 무화과도 땄다. 그들은 사십일 만에 바란 광야 가데스로 돌아왔다.
열두 정탐꾼은 가져온 과일을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에 보여주면서 정탐 결과를 보고했다.
[정탐한 땅을 샅샅이 탐지했다. 그곳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다. 가져온 과일이 증거다. 그렇지만 그 땅에 살고 있는 백성은 강하고 성읍들은 요새처럼 견고하고 크다. 그곳에서 아낙 자손도 보았다. 네겝지방에는 아말렉 사람이. 산악지대에는 헷 사람, 여부스 사람, 아모리 사람이 살고 있다. 바닷가와 요단 강가에는 가나안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러나 적용은 달랐다.)
갈렙은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키며 “올라갑시다. 올라가서 그 땅을 점령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그 땅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하고 격려했다.
그러나 다른 정탐꾼들은 “우리는 도저히 그 백성에게로 쳐올라가지 못합니다. 그 백성을 우리보다 더 강합니다.” 하고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악담했다. [가나안 땅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키는 땅이다. 그 땅에 사는 백성은 키가 장대 같고, 또 그곳에 네피림 자손의 한 갈래인 아낙자손오 보았다. 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다. 아마 그들의 눈에도 우리가 메뚜기 같이보였을 것이다.]

//정탐꾼 보고서를 한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탐한 가나안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데, 그곳을 차지하고 사는 사람은 거인이다.] //이 보고에 따른 적용은 둘로 갈린다. 갈렙은 그 땅으로 올라가 점령할 수 있다고 말했고, 다른 사람은 그 땅 백성이 우리보다 강하니 점령할 수 없다고 단정지었다. //갈렙은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였고, 다른 사람은 자신의 판단에 따랐다. 갈렙의 반대편은 가짜뉴스까지 퍼뜨렸다. //보고에 따르면 가나안 땅에 아낙자손이 사는 것은 맞는듯 하다 그러나 갈렙의 반대편 정탐꾼은 거기에, 가나안 사람들이 모두 키가 크다고 말하며, 아낙 자손을 네피림의 후예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메뚜기와 같은 존재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침소봉대가 또 있을까 싶다. 이렇게 가짜뉴스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순식간에 백성들을 삼킬지도 모르는 저주의 땅으로 소문났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짜뉴스에 속은 이유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도가 두 마음을 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야고보는 편지1장에서 이런 사람은 주님께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런 사람은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다. 순종없이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 방법은 없다. 아니 순종이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유일한 방법이다. 암송만으로는 안 된다.

https://quietwaters.blog/2017/03/24/

////메뚜기 한마리 한마리는 열명의 반대의사처럼 거인과 대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땅을 덮은 ‘메뚜기 떼’에는  애굽땅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작습니다. 뭐 메뚜기라 불려도 됩니다. 그러나 저는 ‘메뚜기 떼’에 속한 한마리, 한명이라는 것을 압니다. 수많은 믿음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믿음의 위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믿음의 선진 선배들이 있습니다. 다들 각각 유니크 하지만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이들과 함께라면 메뚜기 같은 저도 하나님나라를 능히 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 하나님의 약속만 의지한다고 추상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를 개인적으로 불러 주셨지만 하나되라고 불러 주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3:1-20

민수기 13:1-20

주님은 모세에게 지파마다 한 사람씩 선정하여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보내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주님의 분부대로 바란 광야에서 열둘을 파견했다. 이 열둘은 각 지파의 지도자였다. 예로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모세의 후계자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던 눈의 아들 호세아가 파송되었다. 모세는 호세아를 여호수아라고 불렀다고 호세아와 여호수아가 동일인물임을 확실히 기록한다.
모세는 열둘을 보내면서 가나안 땅 구석구석을 잘 살펴보고 오라고 말했다. 어떤 백성이 사는지, 얼마나 사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땅인지, 기름진 땅인지 메마른 땅인지, 민둥산지인지 아닌지 살펴보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담대하게 행동하고, 그 땅의 과일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열둘을 보낼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무렵이었다.

//약속의 땅을 굳이 정탐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부동산 계약으로 말하자면, 이미 잔금까지 다 치른 집을 살펴보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래서 (주인처럼?) 담대하게 행동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번 정탐은 보지도 않고 계약한 집에 들어가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방배정은 어떻게 할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집주변 환경도 미리 알아두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각 지파의 지도자급을 파견했다. 이사가서 서로 큰방을 차지하겠다고 싸우지 않도록, 미리 조정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위해서다. 살 수 있는 집인지 아닌지는 정탐목적에 포함되지 않았다. 폐가라 해도 어차피 고쳐서 살아야 할 집이었다. 물론 현재 그 집에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를 어떻게 내보내느냐의 문제가 남아있기는 했지만 집 자체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다지파의 정탐꾼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다. 여분네는 근본이 없는 인물이다. 유다의 족보에 나오지 않는 인물이다. 족보가(혈통이) 분명하면 좋겠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는다. 하나님으로부터 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혈통을 중요시 하는 유대문화에서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유다 지파의 지도자/대표가 되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놀랍지 않은 이유다. //민수기 1장에 각지파의 지도자들의 이름이 한 번 열거되었다. 그런데 이들과 오늘 본문의 이름들은 완전히 다르다. 출애굽과 정탐꾼 파견까지 얼마 지난 것도 아니니 열두 정탐꾼은 차세대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출애굽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물러가고 약속의 땅으로 이끌 지도자들이 뽑혔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둘을 제외하고 나머지 열은 불신으로 죽는다.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

https://quietwaters.blog/2017/03/23/

민수기 12:1-16

민수기 12:1-16 – 안과 밖

(읽기)
모세가 구스 여인을 데리고 왔다. (어디서?) 미리엄과 아론은 모세가 구스여인을 아내로 맞았다고 해서 모세을 비방했다. 미리엄과 아론이 “주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하면서 꿍시렁 대는 것을 주님이 들으셨다. 저자(모세)는 모세가 땅위에 사는 모든 사람가운데 가장 겸손한 사람이라고 토를 달았다.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과 미리엄을 당장 회막으로 부르셨다. 셋이 회막으로 나갔다. 주님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 내려오시어 장막 입구에 서시어, 아론과 미리엄에게 한 걸음 앞으로 나오라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나가 서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 예언자들에게 나는 환상이나 꿈으로 말을 해 주지만,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모세는 나의 온 집을 충성스럽게 맡고 있다. 나는 그와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말한다. 명백하게 말하고 모호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나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 주님이 둘에게 진노하시고 떠나가셨다.
구름이 장막 위에 걷혔다. 미리암에게 악성 피부병이 내려, 미리엄은 눈처럼 하얗게 되어있었다. 아론이 미리엄을 살펴보니 악성 피부병이 확실했다. 아론은 모세에게 자신들이 어리석었다며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벌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누이 미리엄을 악성피부병에 걸린 채로 두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모세가 주님께 미리엄을고쳐달라고 부르짖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미리암을 이레 동안 진 밖에 가두었다가 그 뒤에 돌아오게 하라고 대답하셨다. 미리암은 이레 동안 진 밖에 갇혀 있었다. 백성은 미리암이 돌아올 때까지 행군을 하지 않았다. 미리엄이 돌아온 후 백성은 하세롯에서 떠나 바란 광야로 가 진을 쳤다.

(생각)
//밖에서 안으로 – 구스 여인은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출애굽 때 따라 나왔을까? 광야에서 우연히 만났을까? 다 늙은 모세는 왜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을까?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다고 번역하지만, 그냥 갈 길 없는 이방 여인을 이스라엘의 진영으로 받아들였다고 해석하면 안 될까?
//안에서 밖으로 – 모세의 권위 도전했던 미리암과 아론. 이들의 불평을 들은 주님은 결국 진노하시고 미리암에게 악성피부병을 내리셔서 벌하셨다. 대제사장 아론에게는 면책특권을 주신 것일까? 아니면 누나 미리암에게 연장자의 책임을 지운 것일까? 아론은 누나의 중보자가 되어 모세에게 나아갔고, 모세는 아론의 중보자가 되어 주님께 나아갔다. “주님께서 우리와도 말씀하지 않았느냐?” 미리암과 아론은 이런 마음을 가졌지만, 정작 미리엄에게 악성피부병이 내리자 주님과 직접 대화하러 나가지 못했다. 그 둘과 주님 사이에 여전히 모세라는 중재자가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가장 (온유)겸손한 모세 – 주님께서는 모세를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하는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치켜올려 세우셨다. 정작 모세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낮췄는데 말이다. 예수께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온유와 겸손은 그냥 모세의 성품을 운운한 단어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낮췄다. 모세보다 더 온유/겸손하신 분이 예수시다. 성자 예수께서는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다.
//진 안과 밖 –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이 복이다.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모시는 것이다. 구스 여인이 이스라엘 안에 머무르게 된 것을 이것에 비유하면 안 될까? 반면 미리암은 이레지만 진 밖에 머물러야 했다. 진 밖에 갇혔다고 표현한다.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없는 상태다. 이보다 더 큰 벌은 없다.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 머무는 것이 복이다. 집 떠나면 고생에 그치지만,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떠나면 벌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7/03/22/

// 진 ‘밖’에 갇혔다. 보통은 안에 가두지 밖에 가두지 않는다. 안이 속박이고 밖은 자유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주님 ‘안’에 자유가 있고 ‘밖’에 속박 (죄에게)이 있다. //미리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이레동안 구름을 머물게 하셨다는데서도 발견할 수 있다. (백성들이 이레동안 행진하지 않음으로 구름을 묶어 놓았을까?) 하나님께서는 때론 기다려 주신다. 내가 깨끗해 지도록, 내가 쓸 수 있는 그릇이 되도록

성령의 바람

민수기 11 (2017-03-21)

칠십인의 노인들 중 엘닷과 메닷이 있었다. (히브리어로 이들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사랑’ 과 ‘깊은 애정’이라고 한다.) 이 둘은 하나님의 영이 칠십인에게 임하였을 때 장막에 있지 않았고 진영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둘에게도 영이 임하였고 진중에서 예언했다.

이 사실이 모세에게 전해졌다.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즉각 모세에게 엘닷과 메닷을 말리라고 보고하지만 오히려 모세는 하나님의 영이 모든 백성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기원한다.

// 모세는 문제의 본질을 알았고 여호수아는 아직 멀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었다. 만약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영이 주어진다면 이 문제는 단숨에 해결될 것이다.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 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큐빗쯤에 내리게 한지라…”[31]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의 손이 크심을, 아니 전능하심을 보이셨다. 그당시 하룻길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 그래도 한 사람이 모은 열호멜의 고기 양을 부피로 따지면 약 2 큐빅정도라 하니 (대충 2톤) 그 양이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다.

// 31절의 ‘바람’은 모세와 칠십인 장로에게 임한 ‘영’과 같은 단어다. 하나님은 ‘영’으로 일하신다. 우리에게 ‘영’으로 힘을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내 힘으로 순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혜의 샘이 되어야 할 그곳이 욕망의 무덤이 (기브롯 핫다아와) 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람’이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거리와 두 큐빗쯤 높이로 충만했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고기’만 보았다. 오직 ‘고기바람’만 났으니, 고기에 온통 정신이 팔렸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보일리 만무다.

당신은 무슨 바람이 났는가? 혹 춤바람 아니면 술바람

이왕이면 ‘성령의 바람’이 나면 어떨까?!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7,18]